똑똑하고 게으른 육아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지만 어찌 됐든 나는 오늘 밤도 잘 자고 일어났고 지금 글을 쓰는 여유도 있다. 수면교육 안 한다고 죽진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곧 6개월에 진입하는 덕순이와 함께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순탄하진 않았다. 때로는 잘 다듬어진 길을 걷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가시밭길을 맨 발로 걷는 것처럼 고달픈 적도 있었다.
잘 잘듯 말 듯, 우리 덕순이는 밀고 당기기 고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생후 30일까지를 신생아라 한다.
신생아 시절 덕순이는 2시간마다 일어나 젖을 찾았다. 분유를 먹였다면 3시간에 한 번씩 깰 법도 했지만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더 자주 배고파했던 것 같다. (모유는 분유보다 소화가 빨리 돼서 금방 배고파한다.) 이 시기 동안 나는 덕순이가 깰 때마다 수유를 하느라 나는 두 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육아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밤에는 두 시간마다 깨느라 피곤하고, 낮에는 덕순이를 안고 재우느라 편하게 누워서 잠도 잘 수 없었다.
'그저 단 하루라도 내가 원할 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났으면...'
그것만이 유일한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영원히 고통받을 것 같은 이 시간들은 의외로 빨리 지나갔다. 덕순이는 백 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자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80일경부터는 한 번에 10시간을 넘게 잤다. 밤마다 젖이 차올라서 새벽에 한 번씩 유축을 하는 건 무척 귀찮고 힘들었지만 신생아 시절에 비할 바가 안되었다. 덕순이가 밤에 잘 때 나는 함께 자면서 체력을 비축하고, 낮에는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안아주었다.
'수면교육도 안 했는데 벌써 통잠을 자. 나 아무래도 육아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그저 아기를 믿고 안아달라면 안아줬을 뿐인데 덕순이는 다른 아기들보다 더 일찍 통잠을 잤다.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역시 내 방법이 옳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덕순이는 다시 밀당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쭉 통잠을 잘 것 같았던 덕순이가 갑자기 달라진 것은 태어난 지 4개월 무렵이었다.
어느 평범한 한 밤 중, 눕힌 지 두 시간여 만에 덕순이는 갑자기 잠에서 깨서 비명을 지르듯이 울었다.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강성 울음이었는데, 덕순이는 신생아 시절에 한 밤중에 깰 때도 그렇게 운 적이 없었어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디가 아픈가 살펴봐도 특별히 아픈 기색이 없었다. 나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잠에서 깬 덕순이가 다시 잠이 들 때까지 안아서 달래주었다.
덕순이는 겨우 잠이 들었지만, 두 시간여 만에 또다시 일어나 똑같은 울음을 터트렸다.
한 밤중에 두 시간마다 이 울음이 반복되었다. 이제껏 10시간이 넘는 휴식에 익숙해진 나에게, 다시 찾아온 이 불침번 생활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제 겨우 편해졌는데. 또다시 불침번이라니...'
나는 또다시 찾아온 이 시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맘 카페와 육아 동지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에 물어 물어 이유를 찾아보았는데 대부분 하는 말이 4개월 차에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아기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급성장하면서 유난히 칭얼거리고 잠들기 힘들어하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4개월 차에 겪는 성장통이 유난히 힘들어서 악명이 높다고 했다.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오직 아기가 잘 견뎌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아기를 달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늘 그래 왔듯이 덕순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혼자 이겨내야만 하는 시련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당직을 서는 마음가짐으로 덕순이 옆을 지키며 공포의 4개월을 하루하루 힘겹게 해쳐나갔다.
밤마다 두 시간이면 어김없이 깨서 비명을 지르듯이 우는 덕순이, 그리고 그 옆을 상시 대기하듯 지키며 얕은 잠을 자는 나. 1-2월 동안 이어진 추위만큼 혹독했던 4개월 차를 겪으면서 덕순이와 함께하는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덕순이와 내가 항상 함께 같은 시간,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덕순이는 원래 자기만의 침대에서 잠을 잤다. 작고 연약한 몸을 혹시라도 내가 자면서 얼떨결에 다치게 할 수도 있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매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 졸려서 칭얼거리는 덕순이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재우고 나면 덕순이의 침대에 조용히 눕히고 나는 살금살금 숨죽이며 거실로 나왔다.
내가 잘 때까지 아주 잠깐이지만 꿀 같은 자유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육퇴'였다. 행복한 육퇴이지만 잠이 많은 탓에 오래 즐기진 못하고 나도 일찍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덕순이가 깰 때마다 안아주고 젖을 물리고 달래서 다시 재웠고, 잠이 든 덕순이를 다시 덕순이의 침대에 눕혀주었다.
하지만 앞서 해왔던 방식대로 매일 밤 두 시간여 마다 깨는 덕순이를 매번 안고 달래서 재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신생아 시절보다 몸무게가 두 배는 더 나가는 덕순이를 매번 안고 있으니 팔이 부러질 듯 아팠다. 젖을 물리는 금방 다시 잠을 자곤 했지만, 밤 중 수유를 줄여야 하는 시기가 온 지라 매번 젖을 물리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매번 일어나서 안아주는 게 너무 힘들어. 차라리 옆에 붙어서 자봐야겠다.'
너무 힘든 나머지 나는 내가 덕순이 침대에 새우처럼 몸을 굽혀 누워 잠을 자 보았다. 덕순이가 깰 때마다 옆에서 누운 채로 달래주고 싶어서였다. 별생각 없이 시도해 본 것인데, 의외로 덕순이는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잠에서 덜 깼다.
자면서 엄마 냄새를 맡아서였을까?
새벽에 이따금 깰 듯 말 듯 할 때 엄마의 옷을 더듬다가 다시 잠이 드는 덕순이를 보니,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다만 가로 150cm인 덕순이의 침대에서 키 160cm인 내가 다리를 굽히고 허리를 굽히고 자다 보니 온 몸이 뻐근했다.
'옆에서 붙어서 자는 게 효과가 있는데, 덕순이 침대는 너무 작아서 힘들어. 차라리 덕순이를 내 침대에 눕혀보자'
나는 그날로 바로 침대 가드를 사서 설치했다.
어른 침대에서 눕히면 혹여나 자면서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가드를 설치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밤 덕순이와 함께 누워 잠을 잤고 덕순이의 외마디 비명 섞인 울음소리는 시간이 해결해 준건지, 아니면 나와 함께 있는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차 나아졌다.
매일 저녁 8시에서 9시, 어김없이 덕순이가 졸리다고 칭얼거릴 때 나는 마음을 비우고 침대에 함께 누웠다.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면 덕순이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덕순이 옆에 가만히 누워 잠이 든 모습을 한참 보다가 9시가 되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다. 나에겐 육퇴가 곧 잠이 된 것이다.
새벽에 덕순이는 이따금 깨서 나를 찾았다. 어느 날은 내 옷을 한참 빨고 만지작거리다가 그대로 잠을 잤고, 또 어느 날은 배가 고픈지 한참을 칭얼거려서 밤 중 수유를 하고 잤다.
매일 밤 나는 덕순이가 잠을 잘 때 함께 잤고 덕순이에게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5개월도 끝나가는 지금, 덕순이는 새벽에 한번씩 깨서 젖을 물지만 예전처럼 집이 떠내려가라 울지 않는다. 악명 높았던 4개월 차 급성장기는 이렇게 졸업한 것 같다.
'수면교육은 덕순이가 아니라 내가 받은 것 같아. 덕순이가 잘 때 자고, 깰 때 깨고. 내 몸이 이제 그렇게 맞춰졌네.'
덕순이처럼 9시가 되기도 전에 졸린 나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제껏 내가 이론으로 접했던 수면교육은 모두 어른의 기준으로 아기를 맞추고 있었다.
'혼자서도' 잠을 잘 자는 아기.
잠을 잘 잔다면야 굳이 '혼자서' 잘 잘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아기 입장에서 엄마를 수면교육을 시킨다면 아기는 어떤 것을 원할까?
내가 스스로 잠을 잘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엄마? 그건 아닐 것 같다.
아기는 아마도 내가 스스로 잠을 잘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는 엄마를 원하지 않을까 싶다.
근 한 달간 덕순이에게 수면교육을 받은 나는 덕순이의 생활 패턴에 몸이 맞춰졌다. 덕순이가 졸릴 때 같이 졸리고, 일어날 때 눈이 떠진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너무 피곤해서 덕순이를 재워주다가 내가 먼저 자버릴 때가 있어. 그럴 땐 꼭 덕순이가 날 재워주는 것 같아.'
'자장자장 우리 엄마-.
내가 잘 때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서 함께 있어줘요.
내가 갑자기 깨서 무서워질 때도 옆에 있는 엄마를 보면 안심이 돼요.'
내 침대에서 나와 사이좋게 몸을 맞대고 새근새근 자는 덕순이의 마음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ps. 덕순이와 함께 자는 침대는 원래 남편과 내가 함께 쓰던 침대였다. 지금 남편은 옆 방에서 따로 3단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잔다. 친정 엄마는 그걸 보면 남편이 꼭 안방을 지키는 머슴처럼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덕순이는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