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것 같았단 이십 대가 끝나갈 무렵부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가 와닿기 시작했다.
내가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술자리에서 서로 흑기사를 자청하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친구들은 이제 안부 인사조차 하기 어색해지고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으로만 근황을 확인한다.
지겹게도 지지고 볶고 싸웠던 엄마와의 사이도 거리를 두면서 겉으로는 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어릴 적 상처들이 깨끗이 아문 것도 아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해서 꼭 스티븐 잡스처럼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 다짐했지만 사원증을 꼬깃꼬깃 가방에 넣고 매일 졸린 눈을 비벼가며 출근을 한다.
친구도 가족도 모두 내 편이 없는 것만 같아 가장 외롭고 불행했던 내 십 대 시절, 나는 내가 지금은 힘들수록 미래에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딱히 화려한 삶을 살지도 않는다.
세상의 모든 불행들이 어린 나를 맘껏 갉아먹도록 놔두면서까지 바라 왔던 '훌륭한 사람'은 결국 이루지 못했고, 나는 지금의 나를 바라볼수록 허무해졌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없어도 공부만 죽어라 하면 뭔진 몰라도 성공할 줄 알았는데. 정신없이 살다가 결국은 영문도 모른 채 늙어가는구나.'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시렸다. 채워져야 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서른 살이 가까워지는 그 무렵, 나는 그렇게 잃어버린 내 삶의 조각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발길이 닿았던 곳은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책들이었다. 오래 묵은 상처들이 아물 것 같은 희망을 품고 그 이야기들 속을 정신없이 헤맸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하고 싶으면 변할 수 있다고 책들은 나에게 격려를 했지만 읽을 때 잠시나마 위로를 받았을 뿐, 책을 덮고 나면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소심했던 주인공이 점점 용기를 얻고 당돌해지는 성장드라마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소설일 뿐, 나는 그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준다는 온갖 책들이 나의 시린 가슴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발걸음을 거꾸로 돌렸다.
마치 오랫동안 수행하던 수도승이 끝끝내 번민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속세로 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내 마음을 살펴보는 대신 자본주의의 빠져나갈 수 없는 매트릭스에 대해 파고들었다.
먼 옛날처럼 사람의 신분과 계급은 여전히 있고 그것을 가르는 기준이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돈만이 나를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부와 명예를 얻고 싶어졌다.
돈만 마음껏 있으면, 어릴 적 내가 그토록 원했던 성공하는 삶을 얻을 테고 스스로 불행하다 여겼던 삶을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길은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사회의 가장 높으신 분들이 나와 같은 '하층민'들에게 원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타고나기를 하층민으로 태어난 나는 위험을 무릅쓰는 수밖에 없었다.
기똥찬 아이디어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발명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아니면 남이 발명하는 것에 올라타거나 (주식 등의 투자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없었다.
햄버거를 고를 때조차도 늘 먹던 것만을 먹는 나에게 도전이란 불가능해 보였고, 조금이라도 리스크를 갖느니 차라리 평생 이대로 사는 게 나은 것 같았다.
크게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은 삶.
무채색 같은 삶.
부와 명예를 얻기엔 부족한 능력을 일찍이 깨닫고 나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받아들였다. 용이 되지 못하고 개천에서 평생 머무르는 이 삶이 도전을 하지 못하는 대가라 생각했다.
다만 말 그대로 크게 실패하지도 않은 삶이라, 남들 하는 만큼은 다 하는 것에 감사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를 가고, 졸업 후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고, 승진도 해보고 결혼도 하고...
'하층민'치고는 꽤나 괜찮은 삶이라 생각했다.
인정을 했다고 내 안의 결핍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영원히 뻥 뚫린 가슴을 갖고 살 것 같았던 어느 날, 사랑스러운 아기가 찾아왔다.
태명은 덕 있고 순한 아이, 덕순이.
덕순이를 품었던 날부터 나는 예전과는 다른 작고 소소한 도전을 해 보았다.
매일매일, 매주 덕순이를 품은 그날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해보기.
(그 기록은 일 년이 지난 지금, <너를 품은 시간의 기록>으로 연재 중이다.)
그리고 덕순이를 만날 준비를 하기.
실질적인 기저귀 갈기부터 시작해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육아 가이드까지 전부 다.
못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나만의 작은 도전이었다.
그 덕분인지 나는 덕순이를 품은 열 달 동안 (밀리는 날은 많았지만) 꾸준히 매일매일의 느낌과 생각을 기록했고, (이론뿐이었지만) 육아 전문가라 자부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섭렵했다.
덕순이는 나에게 내 삶의 구원이자 기적이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덕순이를 품게 되면서부터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고,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 적다는 것에 분개하는 대신 '원래 세상이 이런 거지' 하며 복불복을 받아들였다.
그중 가장 큰 구원은 채워지지 않은 내 안의 결핍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었다.
임신 기간 동안 덕순이를 보다 올바르게 기르고 싶어서 참 많은 책들을 읽었다.
오은영 박사님의 책들을 주로 읽었는데, 그분의 이야기 중 '상처의 대물림'에 대한 조언이 가장 인상 깊었다.
어릴 적 양육자의 행동과 태도는 그 아이의 내면의 목소리가 된다. 아이의 마음에 안착한 내면의 목소리는 아이의 평생 동안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양육자에게 부정적인 언행을 많이 들었던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이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자식에게 표현한다. 결국 부적절한 부모의 언행은 그 자식, 또 그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그 악순환을 끊으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나의 내면의 목소리가 어떤지 알아야 하고, 그 목소리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나는 덕순이에게 나처럼 어두운 성격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바람이 무척 절실했다. 덕순이가 내 삶의 동기가 되자, 나는 다시 내 마음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왜 나는 어두운 목소리를 갖게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어두운 내면의 목소리가 밝게 변할까?
어떻게 하면 덕순이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끝에 운동장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어렸을 적 엄마가 나에게 해 주었던 슬픈 얘기가 있다.
엄마가 초등학생 시절, 준비물을 가져와야 했었는데 집안이 워낙 가난했던지라 사 올 수 없었다. 야박했던 선생님은 엄마를 이해해주지 않았고, 운동장에 혼자 나가서 서 있으라고 혹독한 벌을 주었다.
어렸던 엄마는 그렇게 운동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서러움을 삼켜야 했다고 했다.
엄마는 늘 얘기했다.
준비물 하나 챙겨주지 못하는 가난한 집에 장녀로 태어나,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부모로부터 사랑은커녕, 멋진 삶을 펼칠 기회조차 받을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속 상처는 늘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불쌍한 아이가 되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소녀가 가엾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웠다.
엄마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 소녀는 나를 몹시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는데...
너는 이렇게 아낌없이 뒷받침을 해주는데 왜 이것밖에 못하니?'
주변 친구들보다 못할 때마다, 점수가 낮을 때마다, 그리고 아무리 잘해도 엄마의 높은 기준에 못 미칠 때마다 엄마는 나를 탓했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기대를 따라가지 못했던 나를 향한 엄마의 분노는 그 소녀가 가진 서러움만큼 컸다.
수학 시험을 망쳤던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집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엄마에게 혼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계산 실수가 많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진짜 모르는 게 많았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말해도 혼이 날게 뻔한데 차라리 집이 두 개라면 다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는 나는 제 발로 집에 들어가 혼나는 수밖에 없었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대물림된다.
엄마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 소녀는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생채기를 냈고, 상처 투성이 내 마음속에는 어느덧 잔뜩 주눅이 들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집에 가던 그때의 어린아이가 머무르게 되었다.
'난 뭘 해도 틀렸어. 원래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어.'
내 마음속의 아이는 늘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그 아이를 품은 채로 어른 아이가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까지 되어 버렸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 마음속의 아이는 덕순이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덕순이의 마음속에도 서러운 기억의 단편이 새겨질 게 뻔했다.
나는 덕순이가 마음속에 잔뜩 주눅이 든 아이를 간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할지언정, 상처의 대물림은 나로서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모유수유, 천기저귀, 장난감으로 놀아주기, 수면교육...
무엇 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사소한 것들이라도 덕순이만큼은 세상에서 행복한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노력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더 고생스럽더라도, 내가 우리 엄마에게 듣고 싶었지만 못 들었던 말들을 덕순이에게 해주고 싶었다.
'괜찮아 덕순아. 엄마는 널 믿어.'
'지금은 못해도 돼. 나중엔 잘할 수도 있어.'
'꼭 완벽할 필요는 없어.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면 되는 거야.'
내가 굳이 사서 고생하는 육아를 고집했던 것도 이런 말들을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이 방구석 철학가 엄마가 덕순이에게 바라는 것들이 있었다.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씩씩한 아이가 되었으면...
완벽하지 않아도 가끔은 빈틈을 보일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삶이 아무리 험난하고 허무하게 느껴져도,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찾을 줄 알았으면...
세상 누구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기저귀 하나를 갈 때에도,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 놀 때에도 나는 늘 쓸데없이 진지하다.
진지하게, 절실하게 바라는 내 바람들을 담아 의미부여를 하다 보면 덕순이를 향한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진중해진다.
글을 쓰는 지금, 이제 겨우 6개월이 갓 지난 아기 덕순이.
엄마 아빠란 말도 못 하는 아기지만 나는 내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매일 남들보다는 조금 더 고생스러운 육아를 고집한다.
내 마음의 잃어버린 조각은 비록 되찾을 수 없었지만, 덕순이와의 나날들로 또 다른 색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그토록 채우고자 책 속을 헤매고 헤맸던 마음속의 결핍이 덕순이 덕분에 다시 차오르는 것이었다.
무채색 같던 내 삶의 새로운 목표이자, 도전이자, 희망이 되어버린 덕순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오늘도 전쟁 같은 육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