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쭈쭈 마취총, 그것이 알고 싶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수면교육, 마지막 이야기

by 덕순

매일 밤 잠들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덕순이에게 나는 슬며시 가슴을 내민다.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소리를 지르는 덕순이가 이내 익숙한 엄마의 젖 냄새를 맡으면, 작은 입을 뻐끔뻐끔 거리며 입 안 가득 젖을 물 태세를 갖춘다.


'도킹 완료-.'


덕순이가 젖을 앙다물듯이 물어버린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이 나와 덕순이는 한 몸이 되고 덕순이는 이내 젖을 문 채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 작은 몸을 야생마처럼 허우적거리며 짜증을 발산하던 덕순이가 젖을 물고 나서는,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마치 마취총을 맞고 스르르 잠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머리는 '안돼'를 외치지만 지친 몸을 감당할 수 없는 가슴이 '돼'를 외치는 그것.

이름하여 쭈쭈 마취총이다.




아기가 젖을 물고 자는 습관을 엄마들 사이에선 줄임말로 '젖물잠'이라고 한다.

태어난 지 30일 이내의 신생아 시절 젖물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시기 아기들은 깨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시간에 잠을 잔다. 먹다가 자는 일은 흔하고, 젖병보다 힘이 더 드는 엄마의 젖을 빨 때에는 특히 더 잘 잔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두 가지만 하는 어린 아기들에게 젖물잠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아기가 자랄수록 젖물잠은 안 좋은 습관이 된다. 아기는 점점 깨서 노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이 시간 동안 먹은 것을 소화시키는 것이 좋다. 잠을 자는 동안 젖을 먹으면 마치 야식을 먹은 것처럼 아기도 속이 안 좋아진다고 한다.

먹고 놀고(소화시키고) 자고, 먹고 놀고(소화시키고) 자고.

이렇게 반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아기의 패턴이다.


나라고 왜 젖물잠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육아는 이론과 실전이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여기서 내가 쭈쭈 마취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변명들을 늘어놓고자 한다.




힘든 고비를 모두 넘기고 이제 쭉 통잠길만 걸을 것 같았던 덕순이는, 4개월 차에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깊게 잠도 못 들뿐더러, 한번 깨면 재우는 것도 고비였다. 아무리 안아주고 달래도 악을 쓰며 우는데 울음을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내 몸도 지칠 대로 지쳐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을 때, 젖물잠은 너무 달콤한 유혹이었다.

잠에서 깨어 우는 덕순이를 일으켜 안지 않아도, 그저 누은 채로 가슴만 내밀어주면 알아서 젖을 물고 다시 잠이 들었다. 워낙 편했던지라 열어놓은 가슴을 다시 집어넣기도 전에 나도 함께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사람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육아를 하다 보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같은 건 잠시 잊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젖물잠은 그 매력만큼 대가도 혹독했다.

나는 덕순이의 '인간 쪽쪽이'가 되어 버렸다.


쪽쪽이라 부르는 공갈 젖꼭지는 사실 아기들이 엄마의 젖꼭지를 물면 편안해하면서 잠이 드는 것을 따라 만든 것이다. 칭얼거리는 아기 입에 쪽쪽이면 갖다 대면 아기는 앙- 하고 물고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든다. 덕분에 엄마가 매번 젖을 물리는 수고를 덜어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다시 쪽쪽이가 하는 짓을 따라 한다.

칭얼거리는 덕순이 입에 젖을 흉내 내는 쪽쪽이 대신 진짜 젖을 갖다 대어 그대로 재워버린다. 말 그대로 인간 쪽쪽이다.


인간 쪽쪽이의 삶은 매우 고달프다.

우선 아기와 떨어질 수 없다. 매일 밤 덕순이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이 드는데 몸부림을 치면서 자는 덕순이의 발길질에 얻어맞기도 하고, 별안간 자다가 구레나룻을 뜯기기도 한다.

가장 힘든 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덕순이는 마음대로 움직여서 날 깨워도 되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서 덕순이를 깨워서는 안 된다. 덕순이는 나와 달리 한번 깨면 짜증 섞인 소리를 지르면서 다시 안 자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세를 바꾸는 것도 슬로우 모션을 찍듯이 살금살금 바꿔야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을 때면 정말 큰 결심을 하고 일어나야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동작이 가장 큰 소음을 유발한다.) 만에 하나 문을 열 때 삐그덕 거리는 소리라도 들렸다가는, 덕순이가 깰지도 모르기 때문에 심장을 부여잡고 좀도둑 마냥 도망쳐야 한다.




고달픈 인간 쪽쪽이의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명과 암이 너무나도 분명한 쭈쭈 마취총은 나처럼 초보 저격수에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 남발해서도 안되고 너무 아껴서도 안된다. 딱 필요할 때에만 치고 빠져야 한다.

그래서 쭈쭈 마취총은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어 적재적소에 명중시키는 특수부대 저격수만이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이다.


새총이나 들고 다녀야 할 법한 나 같은 초보에게 너무 강력한 무기였던 쭈쭈 마취총.

내 실력을 인정하고 포기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쭈쭈 마취총을 놓지 않았다.


아무리 젖물잠 때문에 엄마의 삶이 고달프고 아기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라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같은 아기들이 하는 행동들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 아닐까?'


덕순이가 자라면서 세상의 때가 점점 묻고 규율과 질서를 배우는 단계가 오면 내가 앞장서서 잘못된 행동을 교정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의 덕순이는 태어난 지 200일도 안된,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이다. 이런 아기가 원하는 것은 아마 가장 본능에 충실하고 생존에 직결되는 욕구가 아닐까란 의문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욕구라면 자연스럽게 해소되기를 기다리고 싶었다.


'지금 덕순이가 잠에서 깨면 젖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지 않을까?

언젠가 덕순이도 자연스럽게 젖을 떼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어차피 내 육아는 책에서 하라는 건 다 정반대로 하고 있다. 때로는 엉망진창이고 또 때로는 그래도 할 만 하구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처참하게 실패한 날이 더 많지만, 그런 힘든 날들이 있기에 어제보단 모래알만큼이라도 더 능숙해져 있다. 덕순이와 함께 할 날은 앞으로도 끝없이 펼쳐져 있고 나는 계속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를 반복하겠지.


그래. 덕순이처럼 나도 어제보다 컸으면 된 것이다. 이렇게 점점 육아의 스킬과 함께 내 마음의 여유도 크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쭈쭈 마취총이 어울리는 명사수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때가 될 때까지 나는 쭈쭈 마취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쭈쭈 마취총을 한 방 맞고 깊게 잠이 든 덕순이 옆에서 나는 또 다짐한다.

'기다려 덕순아. 네가 어제보다 한 뼘 키가 더 큰 것처럼, 엄마도 열심히 노력해서 쭈쭈 마취총이 어울리는 최고의 스나이퍼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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