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수라 세상과 덕순이의 모빌

92년생 엄마의 장난감, 첫 번째 이야기

by 덕순


나는 올해 서른 하나, 1992년생이다.


이 말이 뭐냐 하면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과도기를 모두 겪은 세대라는 것이다.



어릴 적엔 집집마다 전화기가 있었고, 친구와 놀이터에서 만나려면 전화번호를 빼곡히 기록한 노트를 뒤져 친구 집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이 친구 **인데요, **이 좀 바꿔주세요.'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딱지치기나 공기를 했다.

가끔 인기 있는 만화책을 누가 가져오면 앞다퉈 빌려 읽었다.

(그 당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최고로 인기가 많았다.)


동네 만화방에서는 만화책을 권 당 200원에 빌려 읽었다.

엄마와 찜질방을 가는 날에는 마음껏 만화책을 읽을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핸드폰이란 것을 가졌다.

40화음의 화려한 벨소리가 나오는 최신 핸드폰이었다.

그 후 나의 핸드폰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유행을 따라가며 바뀌었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신입생 시절, 친구들이 하나둘씩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이 뭔지도 몰랐는데, 나 빼고 다들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한다니.

엄마를 졸라 서둘러 스마트폰을 샀다.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전송할 때에는 가끔 먹통이 되는 좀 모자란 스마트폰이었지만,

그 당시 나에겐 충격적인 신 문물이었다.


그 뒤로 10년이 훌쩍 지났고 항상 세상이 변하는걸 바짝 쫓아오던 나는,

어느새 나이를 먹고 새것보단 헌 것이 익숙하고 편한 느림보가 되어 버렸다.




덕순이는 올해 두 살, 2021년생이다.


9월생이라 억울하게 나이를 먹어서 두 살이지, 글을 쓰는 지금 오늘은 태어난 지 152일 밖에 되지 않았다.


덕순이에게 펼쳐진 세상은 화려하다 못해 정신이 없다.

시시각각 유행이 변하고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온다.

뒤쳐질세라 넋 놓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것들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바보가 되어 있다.




문명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생겼고,
식사를 차리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간편식이 생겼고,
걷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가 생겼다.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새로운 기술 덕분에 간편해지자
남은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새로운 오락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새로운 문명을 마음껏 누리려면 사람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평생 일을 해야만 한다.

결국 현대인은 본인이 몸 담고 있는 일은 평생 쉬지 못하고,
그 외의 일들을 아무것도 모른 채 게으름을 피우는 외발 인생을 살아간다.

누군가 한평생 바쳐 만들어낸 문명을 손쉽게 누리지만,
그것을 위해 어느 기계의 작은 나사처럼 보잘것없이 고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소비하며 영문도 모른 채 늙어간다.




아수라 같은 세상이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내 삶 역시 어느 톱니바퀴에 걸려 보잘것없는 나사처럼 돌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나는 덕순이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지 수도 없이 고민해왔다.

적어도 덕순이는 나보다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길 바라기 때문이다.




부족한 글 실력 때문에 이야기가 너무 지나치게 무겁게 흘렀지만

지금 내가 쓰는 이야기는 덕순이의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아침, 거실에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모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에서 깨고 첫 수유를 마친 덕순이가 하루 중 기분이 가장 좋은 시간.

이 시간 동안 나는 서둘러 집안일을 한다.


덕순이는 쿠션에 누워 모빌을 빤히 쳐다본다.

노랫소리와 함께 빙그르르 돌아가는 모빌이 참 신기한지, 꽤나 오랫동안 가만히 본다.


나는 매일매일 모빌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모빌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껏 밥을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걱정이 앞선다.


'엄마랑 눈도 안 마주치고 한참을 저 모빌만 보게 내버려 두는 게 과연 맞을까?

TV를 안 켰을 뿐이지 TV를 보여주는 거랑 다를 바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아침에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없으면 사서 하고

그래도 없으면 옆 집에 꿔서라도 하는 성격이다.

알아서 잘 놀고 있는 덕순이를 볼 때에도 지금 내가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조금만 더 크면 알아서 스마트폰을 사달라 조를 테고,

나보다 더 이것저것 유행을 빠르게 쫓아갈 테지만

적어도 내 품에 있는 이 시간만큼은 이 아수라 같은 세상을 안 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덕순이의 무료함을 달래고 나에겐 잠깐의 자유 시간을 주는 고마운 장난감들에 대한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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