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어둠의 마법 방어술의 그 보가트가 맞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루핀 교수는 첫 수업에서 보가트를 가져온다.
보가트란 보는 이에 따라 형체를 바꿀 수 있는 생물로, 마주하는 이가 제일 두려워하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하여,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보가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여 마주할 때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난다. 통상적으로 제일 두려워하는 형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보가트를 마주하는 이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지만 '리디큘러스'라는 주문을 통해 보가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웃음소리로서 보가트를 제압한다.
보가트라는 똑같은 생물을 마주했음에도, 해리는 디멘터를 만났고, 론은 거미를 만났으며, 네빌은 스네이프 교수를 만났다. 이후로 해리포터는 디멘터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 디멘터로 변하는 보가트를 상대로 '페트로누스' 마법을 연습하고, 결국 아버지의 것과 같은 '수사슴' 페트로누스를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해리포터 속 보가트 이야기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불안이 되고, 불안이 심해서 몸에 증상이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겪은 나에게 불안장애는 보가트와 같이 느껴졌다. 사실 몸과 마음이 건강했을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증상들이 매일 하루의 문을 열 때마다 형체가 있는 불안으로 나타났다. 자율신경계가 흐트러져, 구체적으로 교감신경이 너무도 올라가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옷장 속 보가트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먹고, 자고, 숨 쉬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 피하려고 해도 피할 방도도 없었다. 내게는 아침에 눈을 뜨는 자체가 보가트가 들어있는 옷장 문을 여는 것이었다.
첫 번째 보가트
처음에 약 부작용으로 인한 입마름 때문에 순간 '꺽'하며 깼을 때는 자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 밖에 있다가도 저녁쯤 집에 들어갈라 치면, 점점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그때부터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잠이 온다는 명상, 음악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를 잠을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채로 보냈을 때의 그 느낌이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냥 '잠 안 오면 안 자면 되지', '오늘은 잠이 안 오네'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잠자리나 잠자는 자세를 바꾸어가며 어쩌다 잠이 들어도 금방 깨고, 다시 잠에 들기도 힘든 데다, 5~6시 즈음에는 다시 잠에 들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긴장이 돼서 또 불안해진다. 신경안정제를 먹고, 운동을 하고(신기하게도 스쿼트를 10분씩 한 날부터 더욱), 몸과 마음이 전반적으로 조금씩 나아지면서 잠자는 것 역시 조금씩 나아졌다. 약을 먹기는 하지만, 지금은 자는 게 두렵지 않고, 자기 전에 피곤하면 하품도 하며, 금방 잠에 든다. 새벽에도 한 시간마다 깨던 것이 세네 번으로 줄었고 지금은 한두 번으로 또 줄었다.
두 번째 보가트
음식을 잘못 먹고 속이 완전히 뒤집히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으며 기능성 위장장애가 생겼다. 보통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하면 위산이 너무 많이 나와 속이 쓰리거나 해서 문제라고 하는데, 위산이 문제가 아니라 위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죽도 못 넘길 지경이었다가,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아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을 먹어도 명치에 걸리는 느낌에, 밥을 먹으면 목과 식도에서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고, 무거운 트림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항상 배 위쪽에 팽팽하게 가스가 차서 숨을 쉬기가 답답했다. 인터넷에서 역류성 식도염, 기능성 위장장애와 관련된 수많은 글을 정독했다. 뭐는 먹으면 되고, 뭐는 먹으면 안 되고, 어떤 자세로 자야 되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한다는 등 정보가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말 그대로 먹는 것이었다. 일단 역류성 식도염 환자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엄청나게 제한적이었으며, 혼자 사는 자취생이 그 식단을 삼시세끼 시간 지켜가며 꼬박꼬박 먹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엄마는 딸을 걱정해 '오늘 점심은 뭐 먹어?', '오늘 저녁은 뭐 먹어?'라고 물었지만 내게는 그 질문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현재 밥 1/3 공기는 먹어도 크게 힘들지 않을 정도로 소화력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결국 회사에 몇 주간 휴가를 내고 부산 집에 내려가기로 했다.
세 번째 보가트
나를 가장 힘들게 했으며,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목 이물감이었다. 사실 이번 시기 이 모든 불안감의 시작점이기도 한 목 이물감은 내시경을 받고 조금 안 좋았던 것이, 역류성 식도염을 거치며 후두염으로 증상이 심해졌다. 이물감을 고치기 위해 미친 듯이 병원을 가고 '오늘 하루만 자면 나을 거야', '그런데 왜 안 낫지?', '이게 평생 가면 어쩌지?'하고 나를 몰아세웠던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옛날부터 목에 무언가 걸리는 게 싫어서 생선도 안 먹던 나였는데, 이것이 실제로 느껴지는 증상으로 나타나 하루를, 한 주를, 결국 한 달을 넘게 나를 괴롭히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 좁은 목구멍 안에서도 후두 쪽이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또 어떤 때는 편도 쪽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 가래가 걸린 것 같은 때도 있었지만, 정말로 목이 조여드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면 약한 후두염이라며 '신경성'으로 모든 증상을 정리했다. 가래라도, 아니면 알 수 없는 뭔가라도 목에 들러붙어 있는 느낌이 확실한데 나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미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병원을 바꿔가면서도 똑같은 진단을 받으며,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두염 탓도 있기는 하지만) 처음의 두려움이, 불안함이 점점 커져서 내가 두려워하는 실체로 내 목에 들어앉은 것이라고.
그나마 몸의 전반적인 컨디션이 올라오면서 소화가 조금씩 되면서 증상이 조금씩은 나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담을 통해 '인지치료'를 끊임없이 연습하면서, 덜 불안하고, 덜 무서워하려 노력한다. 예전에는 목이 안 좋다는 생각이 들면 말 그대로 무언가가 척추를 찌리릿하게 타고 올라가 뒤통수가 당기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침착하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 내가 목이 불편하구나. 내가 좀 불안한가 보다. 그런데 괜찮아. 설령 이게 안 나아도 괜찮아. 별 거 아냐.'라고 계속 되뇌었다. 조금 컨트롤이 되자, 조금 더 생각을 줄였다. '아 내가 목이 불편하구나. 내가 좀 불안한가 보다.' 그리고 지금은 '아 내가 목이 불편하구나.' 끝. 물론 쉽지 않다. 정 마인드 컨트롤이 안되면, 밖으로 나가서 걷기라도 한다. 그러면 증상이 조금은 나아져 있고, 또 조금 덜 불안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보가트가 사람의 공포를 만나야 비로소 모습을 갖추어 실재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건강치 못한 내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공포를 만나 여러 실재하는 증상들을 만들어 냈다. 후회도 많이 했고, 괴로워도 많이 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힘들어할수록 그 실체는 커져서 나를 잡아먹을 듯했다. 까만 무언가가 나를 감싸 잡아먹히는 느낌에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위에 나열한 세 가지 이외에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던가, 삐-하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다던가, 여러 증상들이 나타났다.
이 불안과 증상들에 내가 스스로를 가두고 있어 이대로는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다. 다행히도 조금씩 몸이 나아지면서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것이 일시적인 내 증상들에 대해 집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그렇구나'하고 인정하고 지나가는 것, 밥 잘 챙겨 먹는 것, 걷기, 스쿼트 등 운동 열심히 하는 것, 신경 관련 약은 언제 끊을 수 있을까 조급해하지 않는 것. '단단한 일상'에서 조금 더 '의연하고, 담담하게' 사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주변의 모두가, 그리고 인터넷 카페에서 똑같은 증상을 겪고 나았다고 얘기하는 모두가 입 모아 얘기한다. '시간이 약이다.'라고. 하지만, 시간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를 결정하는 건 불안을 대하는 내 생각과 행동이다. 매 순간 조금 더 의연하고, 담담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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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해리포터에서 조금 더 팁을 얻어서 '리디큘러스'로 보가트를 덜 무섭게 느끼고, 웃음소리로 결국에 제압할 수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웃음들을 많이 찾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