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 목 이물감, 기능성 소화장애, 입/목마름, 두통 그리고 강박
이비인후과 6곳, 신경정신과 2곳, 내과 1곳, 외과 1곳, 한의원 2곳
12군데 병원을 돌고, 카운트하지는 않았지만 상담치료까지 받고 나서 나온 결과는
자율신경 실조증(같은 것)과 강박증이었다.
2월 말, 음식을 잘못 먹고 장염을 심하게 걸려 위아래로 다 뿜은 이후로 뭘 먹어도 속이 갑갑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평소에 있던 비염 때문에 먹은 항히스타민 계열 약들을 먹고 나서 입마름이 심했다.
입마름이 심한 가운데 위 내시경을 받았는데, 받고 나서 목에 이물감이 엄청 심해졌다. 부은 느낌, 가래가 낀 느낌.
희한하게 예전부터 목에 뭔가가 걸리는 것에 대해 공포가 심해서 당장 이비인후과와 내과에 가서 약을 탔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비염으로 인한 가래라고 하면서 항히스타민제 및 거담제 등을 주었고, 내과에서는 내시경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으므로 신경성일 것이라 하며 항불안제를 주었다. 별 수 없이 두 약을 같이 먹었다.
3일 동안 삼시세끼 두약을 함께 먹었는데 목 이물감은 낫지 않았고, 오히려 입마름이 더 심해졌다. 그리고 4일째 되는 날 목이 갈라지고 목구멍이 조여질 정도로 목이 마르고, 입에 물기가 완전히 말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다가 마른 목이 막혀 잠에서 놀라 깼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목이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생각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병원을 갔다. 수액도 맞고, 후두내시경도 받고, 갑상선 초음파도 받고, 의사에게 구구절절하게 내 증상을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불편감, 불안감에 비해 정확한 병명을, 심각도를 얘기해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사를 믿고 약을 먹고 참아보기보다 병원을 바꿔 찾아가기를 택했다. 그렇게 그동안 간 병원이 세어보니 12곳이었다. 마치 사고 싶은 한정판 상품을 찾아 헤매는 프로 쇼핑러가 된 기분이었다. 듣고 싶은 병명을 말해주는, 하루만에 낫는 약을 처방해주는 병원을 찾아 헤맸다.
처음 증상이 나타난 후 딱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동안 ‘지옥 같았다.’라는 말이 뭔지를 처음으로 체감했다.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는 가운데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두통, 등 아픔, 목 조임, 분명 나는 아픈데 의사들은(특히 이비인후과) 심하지 않다고 했다. 후두 내시경까지 해가며 몇 번을 본 거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역류성 후두염이 원래 그래요. 그런데 심하지는 않네요. 약간 헐었어요.’ 전문가, 그것도 여러 전문가가 비슷하게 얘기하니 그런가 보다 싶었다, 아니 그런가 보다 해야 했다. 매번 다른 병원을 가니 주는 약들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분명히 나는 입마름이 심하다고, 부작용이 덜한 약을 달라고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증상들과 함께 여전히 입과 목이 말랐고, 이물감도 남아있었다.
부산에 있는 본가로 나름 요양을 가서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서 거의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입에 침이 나오고, 1주 반 동안 하루에 죽도 못 먹다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으니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3일도 서울에 있는 내 집에 머무른 적 없던 엄마가 1~2주씩 두 번이나 서울에 올라왔다. 내가 병을 되려 키운다며,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 병원에서 다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하는데 죽을병도 아니고 도대체 왜그러나며, 30년 동안 크게 속 썩인 적 없는 딸이 ‘차라리 죽을병은 끝이라도 있잖아’하는 말에 크게 울었다. 엄마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이해를 할 부분은 이해를 해주면서도 아니다 싶은 부분에는 세게 나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먹지 말라던 신경정신과 약을 먹는 것은 그러려니 해주었으나, 단호하게 병원과 약은 줄이자고 했다.
한 시간 넘게 거리에 있는 이비인후과와 그곳에서 준 제산제를 처음으로 끊었다. 사실 위가 기능을 하지 않는 소화장애였기 때문에 제산제가 필요하나 싶었다. 끊고 나서 확연히 좋아지지도 않았지만, 확연히 나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까지는 무거운 트림이 올라오다가 가벼운 트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다음은 역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한의원이었다. 침을 맞으러 다녔는데 처음 한 두 번은 크게 효과가 있는 것 같다가 이주가 지나니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침을 맞고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확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순간이었다.
사실 고백하지만, 엄마가 내려가고 혼자 있는 현재 어제까지도 나는 하루에 2곳의 병원을 갔다. 공황장애를 겪은 친구가 혹시 너 공황 아니냐며 신경정신과 한 군데 정도는 더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당한 핑계로 오전에는 동네에서 꽤 평이 좋은 신경정신과를 갔고, 오후에는 그제 뱉은 가래에서 약간 피가 나왔다는 이유로 이비인후과를 갔다. 결과는 역시 똑같았다. 그나마 나은 거라면 새로 간 신경정신과에서의 진단 방향이 기존 병원과 같다는 것과 ‘자율신경 실조’라는 그나마 구체적인 병명과 내 증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담해주어서 불안을 덜어주었다는 점이랄까. 이비인후과에서는 ‘편도가 약간 빨갛네요’ 하며 가글액과 시럽형 거담제를 주었다. 원한다면 소염제를 줄 수 있겠지만 약을 많이 먹는 건 좋지 않다고 하면서.
내 의지로 병원을 가지 않고 버틴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웃기는 말이다. 다 큰 성인이 병원을 가지 않기 위해 버틴다는 것이. 하지만 나는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남은 날들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마음속 불안과 싸워야만 한다. 정말로 아픈데도 병원을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병원을 가서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과 죄책감으로 문 앞을 서성이다 결국 들어가고 마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다. 지난한 노력이 필요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