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실례가 아니게 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일주일 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나요?’
‘일주일 새 무기력감이 든 적이 있었나요?’
설문지 속 몇십 개 문항들을 체크해 나갔다. 바로 앞에는 내 손을 잡고 이곳까지 와준 회사 후배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는 익숙한 회사 근처 백화점과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보였다. 평소라면 듣지 않았을 얌전한 클래식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잡지를 읽거나 핸드폰을 보며 순서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첫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풍경이었다.
3월 3일, 회사에 출근한 오전에 과호흡이 오고 점심에 약한 공황발작이 연달아 왔다. 두 번째 공황발작이 왔을 때 내가 본능적으로 찾았던 병원은 그동안 문턱이 닳도록 다녔던 이비인후과나 내과가 아니라 정신과였다. 그 당시 어떻게 정신과까지 생각이 닿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 가봤자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직감했던 것 같다.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렸는데 모두 초진은 당일 예약이 안될뿐더러, 오늘은 예약이 꽉 차 넣어줄 수가 없다는 이야기만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침착하게 후일 예약을 잡고 기다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곳에 무작정 찾아갔다. 내 상태를 설명하고, 기다려도 좋으니 잠깐이라도 빈 시간에 진찰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겨우 허락을 구하고 우울증 등과 관련된 여러 설문지를 작성한 뒤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이름이 불렸다. 복도 끝 작은 방이었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진료실 가운데 책상이 놓여 있었고 건너편에는 여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다른 병원과 똑같았는데, 하나 다른 점은 책상 위에 갑 티슈가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던진 첫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울음이 터졌기 때문에 알게 된 점이었다.
앞서 겪은 상황들을 이야기했다. 너무 불안하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고, 밥이 안 넘어가고, 잠이 안 오고, 침이 마르고, 심장이 아플 만큼 과하게 뛰고, 오늘 아침엔 과호흡과 죽을 것 같은 느낌(그때는 공황발작인지 몰랐다)까지 왔다는 눈물, 콧물까지 섞은 두서없는 이야기에 선생님은 컴퓨터에 기록을 하거나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선생님은 내가 너무 예민하고 불안한 상태라 그것이 신체 증상으로 발현이 된 것이라고 했다. 마치 놀란 토끼 같은 상태인데, 심각하지는 않지만 신체 증상이 나타나고 그것이 길어지면 좋지 않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약 부작용이 심한 것으로 보아 약에 굉장히 예민한 것 같으니 약 용량을 최소한으로 처방해주겠다며 우선 먹어보고 3일 뒤에 보자고 했다. “약을 안 먹고는 안 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지금 당장 너무 힘들지 않아요? 안 먹고 나을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엄청 오래 걸릴 거고 계속 반복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나는 약봉지를 받아 들고 후배와 함께 회사로 돌아왔다.
사실 사람들의 편견과 정신의학의 발달 등으로 정신과를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정신과라는 이름이 익숙한 그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섦에는 틀림없다.(정신건강의학과가 길어서 아래부터는 줄여서 정신과로 쓰겠다.) 보통 1) 괴성을 지르거나 혼잣말을 하는 심각한 정신질환 병자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나, 2) 아예 관련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사실 이전에는 길을 다니면서 정신과 간판을 본 적 조차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정신과를 가게 된 이후로 주변에 정신과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서 깜짝 놀랐다. 높은 빌딩이 많지 않은 동네임에도 창문에, 간판에 ‘ㅇㅇㅇ 정신건강의학과’가 간간이 보였다. 이 동네에 안과는 하나인데, 그조차 별로여서 옆동네에 원정까지 가야 되는데 정신과는 대여섯 개나 있었다. 그만큼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여기니 조금 묘하기도 했다.
첫 병원을 시작으로 8월인 지금까지 1차 병원 세 군데, 3차 병원 한 군데(엄청 유명한 선생님이었는데 4달 후 예약이 잡혔다. 운 좋게 취소 건이 생겨서 2달 후에 진료받을 수 있기는 했지만)까지 총 4곳의 정신과를 방문했다. 분위기는 대부분 비슷했고, 선생님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진료하여 비슷한 진단을 내려주었다. 차이는 내 병증에 대한 설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준다거나, 호전과 관련된 팁을 더 주느냐 정도였다. 병원 방문 경험이 쌓이면서 나름 정신과와 관련한 지식이 생겼다.
1. 대부분의 정신과는 예약제로 이루어지며(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대기 시간이 길다), 초진은 시간이 많이 걸려 당일 예약은 잘 받아주지 않는다. 초진 시에는 신분증을 확인하고 우울증 등과 관련한 설문지를 작성한다.
2. 정신과에는 다른 과처럼 피검사라든가, 엑스레이라든가 하는 실체가 명확한(?) 검사는 없다. 4곳 중 검사가 없는 곳이 2곳, 나머지 2곳은 자율신경계 검사를 했다. 부교감신경과 교감신경의 밸런스, 심박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과 발가락에 집게를 꽂는 검사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검사가 크게 의미 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3. 결국 진료 중의 상담이 진단의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최대한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내 상태를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된다. 내가 어떤 감정인지, 어떤 신체증상을 겪고 있는지를 가감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할까 말까 하는 작은 부분까지도 이야기해야 선생님이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수 있다.
4. 내 감정과 증상이 진단의 기준이다 보니, 사실 다른 병원을 가도 비슷한 진단이 내려지는 것 같다. 두 번째 병원부터는 첫 번째 병원의 진단 및 처방이 적절했다고 이야기했다. ‘똑같은 걸 배우니깐요’라고 두 번째 병원의 의사가 얘기했다.
5. 하지만 진단이 비슷해도 종류나 용량같은 약의 처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의사의 친절도, 병증과 기타 여러 가지에 대한 설명의 구체적인 정도, 그로 인한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다른 병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한 군데 보다는 두 군데 정도는 방문하며 나와 맞는 병원(의사)을 찾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6. 정신질환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다. 잘 낫지 않는 질염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해도 2주 정도면 증상이 나아지는데, 나와 맞는 약을 찾는데 몇 주가 걸리고, 감약, 단약까지 몇 달이 걸리는 곳이 정신과다. 오래가야 하는 곳인만큼 가기 쉬운 곳, 가까운 곳을 추천한다.
7. 정신과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도는 1차 병원에서 펼쳐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대기실에서 울거나 소리 지르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병증이 중한 사람은 보통 폐쇄병동에 입원한다. 자살충동, 환각, 환청, 알코올 중독이 심해 폐쇄병동에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입원한 환우들의 경험담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도 병증이 심하지 않을 때는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 내면의 우울과 강박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8. 초진 이후로는 상담시간이 길지 않다. 이미 병에 대한 진단은 내려졌고, 약을 복용한 후의 내 상태를 기준으로 다시 약을 처방하거나 추가적인 소견을 덧붙이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상담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의 기타 방식의 치료를 하는 병원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병원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그런 치료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병원 경영의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으로 환자를 최대한 많이 보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9. 그래서 정신과에서는 약물치료를 주로 하고, 심리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은 상담센터에서 받는다. 정신질환이 유전이나 기타 생물학적인 요인으로 발발할 수도 있지만, 낮은 자존감, 부정적 감정, 불안한 심리, 왜곡된 인지 등이 병의 원인으로, 혹은 병의 결과로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전문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많은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고백,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 등으로 인해 정신질환, 그리고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편견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초반에는 별생각 없이 주변에 정신과에 다닌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이모가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너를 고정관념을 가지고 본다. 특히 회사에서는 그 사실이 어떻게든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이후로는 회사에서 친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혹시 모를 인사상의 불이익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더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굳이 감추지 않아서 가족과 친한 친구들은 이미 내가 정신과에 몇 개월 째 다니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히려 친한 이들에게는 치료 초반에 바로 이야기했는데, 첫째로는 현재 아프다는 사실을 밝혀야 굳이 내 감정과 상황을 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고, 둘째로는 나와 비슷하게 아픈 이가 있다면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신과에 다니는 사실이 왜 부끄럽고 감추어야 하는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위가 아프고, 심장이 아픈 것처럼, 정신이 아플 수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 심리, 인지구조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약물 치료로도 호전이 된다는 사실을 보면 결국 정신질환도 뇌와 신경, 그러니까 신체가 아픈 것이다. 단순하게 멘털이 약하고, 너무 예민해서의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게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멘털이 약하고 예민하면 뭐 어떤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모습, 성격,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남들보다 멘털이 약하고 예민한 게 왜 약점, 단점으로 비치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본인이나 타인에게 불편함, 피해를 끼치게 되면 치료를 통해 개선하면 될 일인데, 마치 성격이 악독하거나, 멍청해서 일을 너무 못한다와 같은 수준의 험담 거리로 비쳐서 속상하다. 흔히 ‘다르다’를 ‘틀리다’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내 경우에도 본래 가지고 있던 예민함, 완벽주의가 장점이 되어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등 좋게 작용한 적이 많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 심해져 지나치게 불안해지고, 신체증상으로도 나타나 병원에 가게 된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본인의 의지로 정신과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다닌다면 호전에 대한 의지가 있는 용감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정신과, 그리고 정신과에 다니는 누군가에 대해서 그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먹은 음식이 잘못되어서 내과에 가는 것만큼 흔치는 않겠지만, 그래도 누구나 어떤 이유로든 갈 수 있는 곳이 정신과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서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빌어먹을 코로나가 전 세계가 예측하지 못한 골칫덩이듯이, 나의 몸과 마음도 예측하지 못한 무언가로 인해 아프고 괴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