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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Feb 07. 2022

불안한 정신, 그리고 약. 그 관계에 대하여

정신(Mental)과 정신건강의학과약 말이다.

(아래 글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라고 하겠다)에 가는 것이 1차 거부감이라면, 그보다 더 세게 멘탈을 후려치는 것이 바로 정신과에서 처방해주는 약이다. 정신과에 발걸음 하기까지도,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기까지도, 의사 앞에서 울며불며 증상을 설명하기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대부분은(첫 방문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99.9%) 모두가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진짜 먹어야 하나요?"

"안 먹고 나을 수 없나요?"


정신과 약에 대한 거부감은 정말 크다. 이 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라는 것에 대한 절망, 중독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 매번 시간 맞춰 챙겨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 등. 나도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이건 정신의 문제니까, 내가 좀 더 굳게 마음먹으면 되지 않을까? 약을 먹지 않고 나아질 수는 없겠냐는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나아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더 심해질 수도 있죠. 신체 증상이 몸에 각인되면 나중에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의사는, 특히 정신과 의사는 100%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때 선생님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환자의 거부감을 알면서 약을 강하게 권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아예 권하지 않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우선 처방은 받아왔다. '받아놓고, 정 힘들 때만 먹으면 되지.'


가능한 선생님의 처방 지시 대로, 정해진 시간 때 정해진 용량으로 약을 먹어야 했지만, 나는 내 상태를 임의로 판단하며 띄엄띄엄 먹었다. 하루 걸러, 혹은 이틀 걸러. 반 알으로, 혹은 두 알으로. 하지만 약을 먹지 않았을 때보다 크게 나아진 점이 없었다. 오히려 약을 먹는다는 스트레스가 더해졌다. 어찌어찌 첫 약을 그렇게 먹었는데, 두 번째 처방에서는 약이 더 늘었다. 알고 보니 정신과에서는 초반에 본인에게 맞는 약을 최소 용량으로 찾아보고, 어느 정도 치료 효과가 있다 싶을 때 증량한다고 한다. "이러면 약은 언제 끊어요?" 하는 물음에 선생님은 "우선 먹어 보고요."하고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두 번째로 약 처방을 받았다는 말에 엄마는 그거 꼭 먹어야 되냐며 신경질을 냈다. "네가 약해서 그래.", "그거 나중 되면 못 끊어."


낮에는 회사에서 울고, 밤에는 집에서 울었다. 인터넷 카페 속 공황장애, 불안장애로 7년, 15년을 고생하고 있다는 남의 얘기가 내 미래일 것 같았다. 가장 믿고 사랑하는 가족마저 이해해주지 못하는 밑바닥에서 나는 믿을 구석이 필요했고, 마침 가방 속 구겨진 약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약이 나를 무조건 낫게 해 줄 것이라는 맹신까지도 아니었다.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하고 정해진 시간, 정해진 용량으로 꼬박꼬박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약을 먹으면서 뭐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마음으로 여러 노력(운동, 식사, 상담, 마음가짐 바꾸어보기 등)을 함께 이어갔다. 아주 느린 속도로 안오던 잠이 오고, 마르던 침이 돌고, 없던 식욕이 생겼고, 어느새 약을 처음 먹은 때로부터 7개월 만에 약 먹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꽤 빠른 편이라고 했다.


공황, 우울, 불안, 강박... 이들의 발병은 선천적으로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나서일 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처해진 상황이 나를 극도로 몰아붙여서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정신적, 나아가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약으로 어느 정도 증상 완화가 가능하다. 약을 먹음으로써 단기간에 공황장애를 완치한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약을 먹음으로써 근본적으로 신경계를 조절하고 이와 더불어 나타나는 증상(우울, 심장 두근거림, 불면, 소화불량, 두통 등)을 완화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완화'다. '완치'에 목매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감기에 걸렸을 때 동네 병원에 가서 3일 치의 약을 처방받아 온다. 보통의 경우, '내가 이 3일 치의 약을 먹으면 감기가 무조건 완치되겠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먹으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약을 먹는다. 그렇게 하루, 이틀, 더 길어지면 다시 처방을 받아 약을 먹는다. 그러다 콧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기침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약을 먹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콧물과 기침이 없는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정신병도 비슷하다. 약을 먹다 보면 정신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이 점차 완화된다. 그와 더불어 근본적인 정신적 문제(외부 환경, 지나치게 예민한 사고방식)를 함께 개선해 나간다면 점차 나아질 수 있다. 물론 정신과에서 내어주는 약은 감기약보다 인체에 미치는 정도(금단현상 등)가 좀 더 세고, 장기간 복용해야 된다는 점에서는 다르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틀린 것 같기도 하다. 감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힘든데, 감기처럼 내 상태, 외부 환경에 따라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완치 개념이 없는 질병이라는 점은 결국 똑같다.


가능하면 약 먹기를 추천한다.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기까지, 그리고 끊기까지 최소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리겠지만 이왕 먹는 거 마음 편히 먹기를 권한다. 아주 똑똑한 사람들, 쉽게 손해보지 않는 약은 제약회사들이 만든 약이라서 몇 번 먹는다고 아주 큰일이 벌어지진 않고, 나와 안 맞으면 다른 약으로 바꾸면 된다. 찾다 보면 잘 맞는 약을 찾아 얼마간 먹으면서 증상이 점점 완화되고, 결국 먹는 용량이 줄어들고 먹는 간격이 멀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약을 먹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때가 올 수 있다. 정 아니더라도 불편을 감수하고 오랜 기간, 혹은 평생 먹으면 된다. 암이나 당뇨 같은 기타 질병도 여생을 편히 살기 위해 다소 불편하더라도 꾸준히 관리하고 치료하는 것처럼.


이 과정을 내가 남에게 '100%'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지옥보다는, 먹으면서 아주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도 가지는 것이 낫지 않나. 누군가 나에게 '너는 지금 나아서 그렇게 쉽게 말한다'라고 얘기한다면, 맞다. 나는 지금 나아져서 이렇게 쉽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 말은, 당신도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영화 <  >에서 지구 종말을 얘기하다 화가  TV 토크쇼 촬영장뛰쳐나가버린 제니퍼 로렌스를 두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 신경안정제를   그랬네요.'라고 얘기하자 진행자들이 '혹시  떨어지면 얘기하세요. 신경 안정제 먹으면 만사가 편해지죠.'라며 웃어넘기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일이어서 한편으로 부러웠다. 약은 약일뿐이라고 깔고 가는 그들의 가벼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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