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말보로 말만 들었지, 내가 살줄이야
“다행이다, 깨어있어서. 담배랑 이 내담자가 좋아할 만한 한국 음식 아무거나 사서, 지금 당장 와줘.”
“그분 병원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병원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려다가 쫓겨났대. 5150을 해야 하니까, 최소한 구급차라도 협조적으로 타게끔 설득해 줘.”
5051: 정신건강법 제5150조. 정신질환자가 본인 또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을 때, 72시간 강제 입원이 가능한 법적 조치.
시간은 새벽 6시. 상사의 목소리는 숨이 찬 채 다급했다.
바로 전날, 이 한인 내담자는 머물고 있던 보드앤케어(Board and Care)에서 다른 거주자들에게 위협적인 언행을 해서 쫓겨났었다.
보드앤케어(Board and Care): 노인, 장애인,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 등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소규모 주거형 요양시설.
그의 담당 심리 상담사였던 나는 밤 9시까지 설득 끝에 가까스로 그를 자발적으로 병원에 입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병원에서도 문제를 또 일으켜, 퇴원 조치가 내려진 것이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원래의 보드앤케어로 돌아갔지만, 그의 난동은 계속되었고, 결국 5150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이제 막 1년을 넘긴 신입이었다.
슈퍼바이저가 오기 전까지 내가 맡은 일은 단 하나. 난동 부리는 그를 진정시켜 경찰 도움 없이 구급차에 태우는 것이었다.
그가 몇 날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걸 떠올리며, 따끈한 덮밥과 담배를 사러 근처 한인 마트에 들어갔다.
“어떤 담배로 드릴까요?”
마트 직원의 물음에, 나는 멈칫했다. 담배를 사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그 직원은 묘하게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골드 말보로를 건넸다. 왠지 모를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드앤케어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상의도 입지 않은 채, 신발도 없이 양말 차림으로 밖에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쓰고 있던 안경도 없었고, 주먹을 꽉 쥔 채 허공에 욕을 퍼붓고 있었다.
그는 날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선생님! 나 보러 온 거예요?”
어제저녁 내내 같이 있어 준 걸 기억하는 눈치였다.
“날이 추운데 왜 옷을 안 입고 계세요.”
보드앤케어 직원이 챙겨준 그의 재킷과 슬리퍼를 내밀었다. 그가 순순히 겉옷을 입고, 신발을 신자 안도감이 들었다.
아직 온기가 남은 덮밥을 그에게 건네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습니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슈퍼바이저가 도착했고, 보드앤케어 관리자와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데, 그가 갑자기 식탁을 쾅 치며 고함을 질렀다.
“나 병원 안 간다고 했잖아! 너네 다 나쁜 새끼들이야!”
그가 먹던 덮밥을 손등으로 쳤고, 밥알과 고기가 바닥에 흩어져 나뒹굴었다. 난동이 시작되었다.
“일단 담배 한 개비 쥐여줘! 담배로 진정이 안 되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
슈퍼바이저가 다급하게 말했다.
내담자와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 담배 드릴 테니, 우선 진정하시고 뭐가 그렇게 속상한지 말씀해 주세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가 정말 무서웠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며 담배를 내밀었다. 담배를 받은 그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담배에 불 좀 붙여주세요.”
불쾌했다. ‘그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라이터를 받고 어디에 갑자기 불이라도 붙이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나는 세상 처음으로 남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몇 모금 피고 나서야 그는 차분해졌다. 그 사이, 그의 형과 형수가 도착했고 나에게 연거푸 사과하며 감사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가족들을 싸늘하게 바라봤다.
“악마 같은 놈들. 너넨 내 가족도 아니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난동을 피웠던 어젯밤, 나는 그의 형에게 상황이 심각하니 와서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형은 “내가 가봤자 도움 안 된다”라며 매정히 전화를 끊었다. 내담자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형은 말했다.
“며칠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동생의 조울증 증세가 더 심해졌어요. 우리 집엔 못 데려가요. 시설로 보내든지 하세요.”
그렇게 그는 또다시 혼자 남겨졌다. 나는 위기 상담(crisis intervention)으로 그를 진정시킨 후 그가 구급차에 협조적으로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가 겨우 차에 올라탔을 때,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아침 7시에 도착했으니, 7시간의 사투였다.
그 일이 끝난 줄 알았다. 그렇게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사라져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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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다음 내용은 [나는 청각 장애가 있는 심리 상담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