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에게 '혜원'과 같은 도피는 가능할까?
영화는 처음 본 날의 감정이나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가에 따라 많은 감상의 기복이 따른다. 일본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퇴근 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늦은 밤 혼자 집 앞 영화관에서 본 한국 영화로 <리틀 포레스트>를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도 나와 동년배인 것이 분명한 ‘혜원(김태리)’의 모습에서 지난 몇 년간 내가 겪은 인생의 몇 가지 순간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러닝타임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힐링 영화라는 평이 자자하지만, 나에겐 불가능한 현실도피를 보여주는 공상 과학 영화와도 같았다.
이십대 초반의 나는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일찍이 잘 실천하고 있던 나는 능력 이상의 꿈을 꾼 적도 없었고 그에 맞는 적당한 욕심과 나름 꾸준한 노력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물을 얻어내며 살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을 정도 규모의 지방 도시에서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 서울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성공을 이루어내야만 하는 의무를 동반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 인생은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렸다는 부모님의 정서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졸업과 동시에 당연히 좋은 직장을 얻게될 것이란 예상이 빗나가게 된 이후 성공 신화는 무너졌다. 하루 하루 조바심에 시달리며 동이 튼 후에야 잠이 드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성공적인 사회 생활의 첫걸음을 축하하는 자리일 줄 알았던 졸업식조차 취업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냉혹한 첫 갈림길이었다.
이십대 중반의 ‘혜원’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임용고시 준비생이다. 그리고 또 다시 불합격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도 남자 친구의 합격 소식과 함께 말이다. 출발과 동시에 성공의 땅에 한쪽 발을 디딘 것처럼 느껴졌을 서울 유학길의 끝이 연이은 임용고시 낙방으로 끝날 줄 누가 알았을까. ‘귀하의 우수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채용 인원으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불합격 소식을 연일 듣고 있던 나의 이십대 중반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을 ‘혜원’은 지긋지긋하고도 막막한 현실에서 도피를 택한다. 그리고 그 도피처는 그가 떠나왔던 고향의 품이다.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은 사계절을 함께 하며 어느덧 성공에 대한 욕심을 덜고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위로의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적어도 나에게 있어 ‘혜원’과 같은 도피는 허락되지 않았다. 자라왔던 고향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도전을 잠시 멈추고 쉬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잔인하게도 그러한 회귀는 나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도 같았다. 과장이 아닌 것이 나의 졸업과 동시에 부모님 주변에서는 취업도 잘 안 되는 현실에 구태여 딸을 서울에 보내 고생한다거나, 왜 안정적인 교대에 보내지 않았냐는 식의 간섭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듯하다. 짧은 평생을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인생에서 남보다 뒤처졌음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감정 기복도 크지 않고 스트레스에 그다지 취약하지도 않아 무던하다고 착각했던 나의 성격은 처음 맞는 위기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무너졌다.
물론 ‘혜원’에게도 고향은 완전한 최종 정착지가 아니었고 어쩌면 즉흥적이었던 선택 후 고향 땅에 발 붙인 자신의 처지가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고향 땅에 남아 부모님의 과수원을 운영하는 ‘재하(류준열)’를 아등바등 성공에 목숨 걸지 않아도 믿을 구석이 있는 복에 겨운 신세라 부러워 했을 수도 있다. 또는 고향 농협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을 일찍이 꿰찬 ‘은숙(진기주)’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음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이었던 부분은 내가 살아온 고장보다도 훨씬 좁은, 입소문이 더더욱 무서웠을 그 곳에서 불안한 미래를 견디며 긴 시간을 버텨냈다는 점이다. 인생에는 전진만 있다는 사회 관념 안에서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누구나 상상만 하는 ‘쉼’의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버틸 수 있었던 면모가 내가 ‘영화는 영화지’라고 느낀 지점이자 가장 부러웠던 부분이다.
‘혜원’에게 고향은 ‘위로’의 공간이자 이해의 장소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낭떠러지 끝에 섰을 때 실패를 인정하고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만약 내가 동일한 행동을 했다면 영화처럼 순수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친구들과 경쟁 없는 공간으로부터 안정을 얻고 지금보다 무던한 성격으로 욕심 없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때의 나에게는 그만한 용기도 믿음도 없었다.
‘혜원’은 지나왔던 과거와 마주하고 고향 땅으로부터 위로를 받았으나, 나는 그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경쟁을 뚫고 지나오면서 안정을 찾게 된 현실에 와서야 겨우 내가 받았던 위로의 말들이 담은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위기에 닥친 인간의 본성은 너무 잔인해서 나를 가장 걱정하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말들조차 거부감이 들었다. 지나고 보면 다 괜찮아질 것이란 말, 지금 잠깐의 실패가 오히려 남아 있는 긴 삶의 순간들을 더 감사하게 해줄 것이란 말들이 일년 반의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쳐 직장을 가지고 보니 정말 옳은 말이었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남은 기회 없이 주저 앉은 인생인 것처럼 볼멘소리만 해댔는지 모를 일이다.
‘위로’라는 단어는 악의 없는 선행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타인에게 건네는 위로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앞이 보이지 않는 이에게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 조언이나 힘을 내라는 위로는 무의미하다.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생각한 영화 속 여러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바는 ‘위로’는 말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물 다섯을 먹고서야 한 해 동안 가장 큰 좌절감과 성취감을 모두 경험했으니 다른 분야에서는 철이 일찍 들었을지 몰라도 나는 실패를 다루는 법에 있어서는 어린 아이나 다름 없었다. 나 자신이 위로받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진저리를 쳤으니 말이다.
최근 누가 봐도 능력이 출중하지만 취업문이 마음처럼 빨리 열리지 않아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지금은 위로의 말을 들어도 공감이 가지 않을 것이고 너에게는 버텨낼 충분한 힘이 있으니 그저 묵묵히 하루 하루를 견뎌내다보면 어느 순간 도착점에 와 있을 것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직장에 들어오면 더 이상의 막막함이 없을 것이란 생각도 스물 다섯 나의 착각이었고, 그저 힘든 순간 옆을 바라보았을 때 안정을 주는 존재들이 있어주는 것만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견뎌낼 수 있게 해준다. 실패를 이겨내는 법을 한 차례 배운 뒤 힘든 순간마다 감정을 지옥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며 자신을 압박하는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엔 다가올 결과를 덤덤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옥죄는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는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조금 더 풍성하게 채우는 하루 하루를 살기로 다짐한다. 비록 이전보다 조금 징징거리는 내가 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