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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May 04. 2021

잘 안 먹는 아이, 잘 먹는 아이

엄마가 잘못한 것도 잘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예요

 잘 안 먹은 첫째


  첫째 아이는 2.9kg으로 태어났다. 처음 아이를 보고 생각보다 너무 작아 깜짝 놀랐다. 신생아는 이렇게 작구나. 나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고 아이도 빠는 힘이 없어 한 달 정도 겨우 초유만 먹이고 분유로 돌아섰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분유를 잘 먹어주었고 한참 잘 먹을 때는 1,000ml까지 먹었다. 그렇게 분유를 먹이는 동안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성장지표도 50%가 넘었다. 하지만 이유식이 시작되면서 나의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6개월부터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아이는 처음부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2017년 첫째 처음 이유식 먹던 날

'뭐 처음이니까 아이도 생소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매일 조금씩 먹이기를 시도했지만 시간이 가도 아이는 이유식을 먹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양도 많이 먹어봤자 20ml 정도였다. 그래서 이리저리 이유식을 잘 먹게 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잘 안 먹는 아이를 위한 해결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숟가락을 바꿔봐라.' 그래서 숟가락을 열 개 넘게 사봤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숟가락은 없었다. 그것도 안되면 '그릇을 바꿔봐라' 이번에는 그릇을 여러 개 사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럼 '시판 이유식을 먹여봐라' 그래서 여러 업체의 이유식을 먹여 보았지만 아이가 특별히 잘 먹는 이유식은 없었다. 초기 이유식도 실패, 그러니 당연히 중기 이유식도 실패였다. 내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후기 이유식 정도를 먹게 되었을 때 '자기 주도 이유식'을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밥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그래서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게 이유식을 주기 시작했다. 이전 이유식보다는 훨씬 잘 먹고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먹는 양은 여전히 적었고 먹는 음식도 밥, 두부, 애호박, 김 등으로 한정되었다. 

  이유식은 대실패였고 그럼 유아식을 잘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유아식 레시피 책도 4권이나 사가며 아이가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메뉴를 주었다. 하지만 역시 음식에는 흥미도 없고 식탐도 없고 먹는 양도 적었다. 혹시나 해서 미국식 등 해외 유아식을 찾아서 줘봤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아식이 더 힘들었다. 차라리 이유식 시절이 좋은 시절이었다. 절대적인 식사 양이 적은 첫째는 결국 성장지표가 2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입을 벌려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난 잘 안 먹는 아이를 키우며 마음고생을 했다. 그런데 다 때가 있는 건가 보다. 

이제 엄마랑 카페에서 빵먹고 집에거서도 밥잘 먹는 아이

  현재 만 4세, 52개월인 첫째는 여전히 또래보다 식사 양이 작지만 개인적 기준에서는 식사 양이 많이 늘었다. 간식도 먹고 군것질을 해도 저녁밥을 잘 먹는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야 먹고 싶은 음식,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며 해달라고도 한다. 그럴 때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렇게 첫째 아이의 잘 안 먹는 시기가 끝이 났다. 조금 더 크면 식욕이 폭발하는 시기가 있다는데 기다려진다(주변에 어릴 때 잘 안 먹었다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초등학교 고학년쯤 식욕이 폭발했다고들 함) 밥과 사투를 버렸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잘 먹는 둘째


  둘째는 3.4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누나에 비해 처음부터 크게 태어난 둘째는 엄마 젖부터 빠는 게 달랐다. 누나는 빠는 힘이 없어서 못 먹었다면 둘째는 먹고 싶은 만큼 모유가 나오지 않아 짜증을 내는 바람에 분유로 갈아탔다. 분유 역시 잘 먹었다. 이유식을 먹일 시기가 다가오자 난 너무 떨렸다. '제발 이 아이는 잘 먹게 해 주세요. please...'

첫 이유식을 먹이는 날 아이 입 앞으로 수저를 가져다 댔다. 아이는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구강기 시기이므로 우선 입을 벌리긴 했다. 그리고 한 입 물더니 아주 신기한 표정을 짓고는 더 달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재빨리 입안에 다시 이유식을 넣어주었다. 또 달라고 입을 벌렸다. '오! 이렇게 잘 먹을 수가!' 주고 주고 또 주고 결국 준비한 양을 다 먹었다.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나 싶어 그만 주었다. 나에게도 잘 먹는 아이가 온 것이다. 초기 이유식을 거쳐 지금 중기 이유식을 먹이는 지금까지 둘째의 이유식 거부는 없었다. 둘째는 분유를 한 껏 먹고 나서도 디저트인 양 이유식을 먹고 숟가락만 가져가면 기계처럼 입을 벌린다. 게다가 마시는 건지 먹는 건지 먹는 속도도 빠르다. 완전 'eating  machine'이다. 그러니 몸무게는 성장발달지표상 97%요, 키는 85%다. 태어날 때 분명 양쪽 볼에 보조개가 있었는데 사라진 지 오래고 얼굴형은 분명 계란형이었는데 네모가 되었다. 뱃살은 물론 목살과 등살까지 접힌다. 분유를 끊게 되면 젖살이 빠지니 보조개를 다시 볼 날을 기다려봐야겠다.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둘째

   안 먹는 첫째와 잘 먹는 둘째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잘 안 먹는 것이 엄마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잘 먹는 것도 엄마가 잘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작게 태어난 첫째는 크게 태어난 둘째보다 소화기관이 작고 약하고, 삼키는 힘이나 씹는 힘도 약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도 자기는 목구멍이 작아서 많이 씹고 넘겨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 말 못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하다. 아무튼 잘 안 먹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잘 안 먹는 아이에 당첨되었으니 고생할 각오하고 최대한 열심히 먹이고 잘 먹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잘 먹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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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 3년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http://naver.me/56Izi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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