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둘을키우다보니매일듣는노래가동요다. 첫아이를낳고동요에입문한지 4년째인데, 생후 7개월 된 둘째까지키우고 있으니앞으로더동요의세계에서헤어나오지못할듯하다. 그런데동요를 듣기 시작한 후로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가요를들을수가없어진 것이다. 정확히말하자면가요를듣는것이불편해졌다. 어쩌다가요가 우리 집에 흘러나오면 재빨리 동요나 클래식으로 바뀌어 버린다.왜나는 가요를듣는것이불편해졌을까. 가요의어떤점이나를불편하게만드는지곰곰이생각해봤다. 그리고찾아낸이유는바로가사였다. 대부분의가요는사랑에관한노래이다. 성인남녀가사랑에빠진이야기, 사랑때문에힘든이야기, 이별한이야기등절절하고 애달픈 이야기들이다. 이제나와는상관없는내용으로 가사내용에전혀공감을못하게된것이다.
아이를낳기전에는매일 가요를 들었고, 플레이 리스트는 만들어 틈나는 대로 듣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떤 가요는가사가 나의이야기라며수천번반복해서들었고, 가사를듣다눈물을흘리는노래도다수 있었다. 누가뭐래도나는감수성이풍부한사람이었다.감수성제일가는가사는누가뭐래도이소라노래인데나는그녀의가사를너무도좋아하는사람이었다. 혼자서 아소라 콘서트에 갈 정도로 이소라의 노래를 좋아했다. 그런데지금은그런가사들이신경에거슬리는것이었다. 나의현실은그런절절함과애달픈감정에빠져있을 수가 없다. 나의 생활에 로맨스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남편에게나의고충 아닌고충을이야기했더니궁극의남자를만났기때문이란다. 내가이런유머 때문에이 남자와 결혼을했지. 어이없어웃긴 했지만맞는 말이긴 하다. ‘궁극’인지는 몰라도 평생 배우자를 만났고 아이까지 둘이나 태어났으니, 더 이상 사랑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이별 때문에 아파할 일도 없다. 매일 아이들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고 있으니 어느새 나는 감성에 젖을 이유 조차 없어지고 그런 감성에 어색한 사람이 된 것이다.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며칠 전 이소라의 온라인 콘서트가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제목이 ‘위로와 치유’였다. 코로나 시기에 맞는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소라의 음악 자체가 위로와 치유이기도 하다. 나의 불안하고 방황하던 학창 시절부터 가정을 이룰 때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위로하고 치유해준 노래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다시 이소라의 노래가 듣고 싶어 졌다. 다시 나의 감수성을 찾고 싶어 졌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육아가익숙해지고노련해지면서계절도느끼고, 날짜도기억하고, 무슨요일인지도생각하면서사는것 보니까내마음에도조금씩여유가생기기시작했나보다. 다가오는화이트데이에이소라콘서트를 라이브로는 못 보겠지만 VOD를 구매해서 아이들은 재우고 잠들어 있는 나의 감수성은 다시 깨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