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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Mar 02. 2019

(남긴) 밥 잘 먹는 예쁜 엄마

아기가 남긴 밥도 이제 아무렇지 않게 먹어요

- 지효 엄마는 지효가 남긴 밥 먹어요?

- 네, 먹어요 (하하하)

- 저도 먹어요 (호호호)


  사실 누가 남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가족 간이라도 말이다. 그런 내가 밥을 먹다 남기면 우리 엄마는 아깝다며 드셨다. 


- 엄마, 그냥 버려요~ 얼마 남기지도 않았는데...

- 버리긴 왜 버려, 아깝게. 내가 먹으면 되는데...


  그때 나는 내가 남긴 그 한 숟가락이 뭐가 아까울까,  반찬이며, 내 침이며, 다 묻었는데 비위도 좋으시다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순간 나도 내 아이가 남긴 밥이며 반찬을 싹싹 긁어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못 먹었다. 아니, 먹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이가 남긴 밥은 이것저것 묻고 다 식어서 맛도 없어 보였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가 아이가 남긴 밥을 먹고 있는 걸까? 게다가 아이가 뱉어낸 것도 날름 먹어버린다. 그 모습을 본 신랑은 깜짝 놀라며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엄지를 세운다. 도대체 왜 나는 아이가 먹던걸 먹는 거지?  


  예전에는 엄마가 해주는 밥, 음식점에서 나오는 밥, 그냥 나 혼자 대충 한 끼 만들어 먹는 밥을 먹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상황은 달라졌다. 요리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이 살아온 나에게 가장 힘든 미션이 생긴 것이다. 바로 매일매일 아이의 하루 세끼를 해결하라! 였다. 그것도 영양소까지 생각하며 골고루!


  이럴 줄 알았으면 요리 좀 하면서 살 것을... 식재료 선택에서부터 손질 방법, 요리방법까지 무지의 상태에서 하나씩 터득하자니 시험을 코앞에 두고 벼락치기하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식은 정말 쉬운 것이었는데도 그때는 요리책을 두 세권 사서 밑줄을 쳐가며 공부했다. 이유식을 지나 유아식으로 넘어오자 더 큰 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유아식 요리책을 다 섯권이나 사서 보기 시작했다.(원래 요리 못하는 사람이 이 책  저 책 많이 산다) 그렇게 이유식 만들기도 1년이 넘어가니 조금씩 요리에 눈이 떠지고 융통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맛은 모르겠다. 아이가 말을 제법 하기 시작하면서 가끔 '맛없어요', '이상한 것이 있어요'라고 당황스러운 말을 한다. 허허. 아마 진짜 맛없어서 하는 말은 아닐 거야.

  내가 매일 아이를 먹이기 위해 차리는 밥상은 그동안 요리와 사투를 벌이고, 공부하고, 연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 이 밥은 나의 피, 땀, 눈물이다. 그러니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남긴 밥을 싹싹 긁어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불어 식재료 자체의 정보나 어떻게 재배되는지도 알게 되니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쌀 한 톨이 만들어져서 우리 밥상에 오기까지 많은 노고가 담겨 있으니 싹싹 긁어먹으라고 하던 옛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일본 유명 작가 다나베 세이코가 쓴 에세이 중 그 당시(아마도 80년대) 일본 오십 대 여성들의 일탈(망가짐)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그녀는 식습관의 붕괴를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음식을 버리는 것이 그녀들에게 이렇게 큰 의미일 줄이야...

  예로부터 지켜오던 알뜰함,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교육, 도시락 먹을 때 뚜껑에 붙은 밥풀부터 먹어야 된다는 것이 오십 대 여성의 교양이었는데 남은 음식을 버리기 시작한 순간, 마지막 남은 긍지와 신념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은 아닐까.
                                           .........
  왜 나만 이렇게 궁상맞게 살아야 해. 이젠 나도 몰라. 그렇게 눈 딱 감고 음식을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브레이크였던 것이 둑이 무너지듯 붕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오십까지 남은 밥을 먹고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어 둘진 모르겠으나, 그리고 그것이 교양있는 여성이라는 척도가 될 만큼 고귀한(?) 정신으로 자리 잡을 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남은 밥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아 졌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나는 남긴 밥도 잘 먹는 예쁜 엄마들을 응원하고 싶다. 단, 남긴 밥 먹고 내 밥까지 잘 먹다간 어느 순간  허리살이 한 줌 더 잡히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으니 내 밥은 적당히 조절합시다.


책으로도 만나보세요!!!

http://naver.me/56Izi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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