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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Mar 28. 2019

아이 마음속 클래식 씨앗 심기

아이와 함께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위하여

    대학 시절에 한 친구가 소개팅을 나갔다 오더니 소개팅에 나온 남자에 대해 한숨을 쉬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 해서 자신도 음악을 좋아하니 대화가 되겠다 기대했는데 갑자기 클래식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흐의 무슨 곡, 무슨 장조, 작품번호 몇 번이라고 하는데 바흐만 알아듣고는 그 다음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교양 없어 보일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다는 친구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 당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교과서에 실린 곡이나 광고나 영화에 삽입된 몇 곡들뿐이었다. 사실 안다고도 할 수 없고 들어 봤다고는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클래식을 듣거나 연주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고상해 보이기도 했지만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악기를 다루거나 클래식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나도 내 돈 주고 연주회 티켓을 사서 가본 적도 없었고 어쩌다 티켓이 생겨서 연주회를 가게 되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했다. 가만히 앉아서 연주를 듣고 남들이 언제 박수를 치는지 눈치를 살피다가 박수를 치면 나도 감동받은 듯 열렬히 박수를 쳐야 했다.


  클래식은 나와는 동떨어진 먼 세상의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일 아침을 유쾌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시작했었다. 그런데 좋아했던 DJ가 그 프로그램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이리저리 주파수를 돌리며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을 전전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KBS 클래식 FM을 만나게 되었다. 마땅히 주파수를 맞출 곳이 없어서 그냥 틀어놔 보자라는 생각에 며칠 클래식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했다. 이전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활기차지는 않았지만 바쁘고 힘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나름 클래식과 함께 아침을 맞이 하는 것이 괜찮았다. 그렇게 클래식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내가 아침마다 클래식을 듣게 되었고 점점 클래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도 거의 매일 클래식 라디오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임신을 하면 태교로 클래식을 들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사실 꼭 클래식을 들을 필요는 없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아이 머리가 똑똑해진다는 것도 잘못된 연구결과로 결론이 났다. 클래식을 듣는 것이 곤욕이라면 억지로 들을 필요는 없다. 엄마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행복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는 것이 더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을 들을 수 있다면 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18세기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21세기의 사람들과 여전히 소통된다는 것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 속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감정들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으로써 클래식의 사전적 정의는 고전음악이지만 그것 이외에도 대표적인, 최고 수준의, 유행을 타지 않는 등의 의미로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사용된다. 클래식 음악은 이 모든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아침마다 클래식을 들으니 우리 아이도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아이가 듣고 있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후 26개월이 지나가던 어느 날 바이올린만으로 연주되는 곡을 틀었더니 대뜸 '엄마, 이건 무슨 소리예요?'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이건, 바이올린 소리야'라고 대답을 해주었더니 나름 감상을 하는 것 같았다. 또 어떤 날은 '이건 노래가 없네?'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아마 동요처럼 가사가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건, 악기 소리만 있는 노래야'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젓가락 행진곡'을 틀고 곡명을 말해주니 '행진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설명하기가 힘들어 진짜 젓가락을 들고 음악에 맞춰 젓가락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밌어 보였는지 자기도 해본다며 내 손에 있던 젓가락을 빼앗아 갔다. 아이는 '젓가락 행진곡' 음악에 맞춰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즐거워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는 클래식보다는 동요를 더 좋아한다. 앞으로도 동요, 더 성장해서는 대중가요를 더 좋아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클래식을 듣지 않아도 사실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내가 클래식을 듣고 나서 보니 클래식을 듣지 않는 삶보다는 클래식'도' 즐길 수 있는 삶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마음속에 클래식의 씨앗을 싶어 두고 싶어 졌다.



우리 아아가 자라면서 클래식이라 하면 고지식하고, 졸리고, 특별한 취향의 사람들만이 듣는 음악이라는 편견을 갖지 않고 그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클래식으로 삶이 더 풍요로워지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음악적 지식 없이도 마음속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클래식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좋아지면 저절로 알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이제야 나도 조금씩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연주회도 가보고 싶어 졌다. 최근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주회도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어떤 클래식 곡을 들어볼까 고민하다가 비발디 '사계'의 봄 1악장을 선택했다. 이제 봄도 오고, 창문 너머 목련꽃이 만개한 모습을 보니 이 곡이 제격일 것 같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이며 우리 몸과 마음이 따뜻한 햇살을 받고 기지개를 켜는 듯한 느낌이다. 아이는 비발디 '사계'의 봄이 흐르는 거실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 아이의 마음속에 봄기운을 가득 실은 씨앗 하나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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