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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Aug 22. 2024

빛의 속도는 80억 가지다.

단위와 빛: 우리의 기준에 대한 고찰


어제 새벽, 한 가지 질문이 나를 깊은 생각에 빠뜨렸다. "왜 빛의 속도는 약 30만 킬로미터일까요?"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위들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빛의 속도에 대한 의문은 우리가 사용하는 길이와 시간의 기준이 과연 어떻게 정해졌는지를 되짚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영국식 단위들, 예를 들어 인치, 피트, 야드 등은 사람의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인치는 엄지손가락의 너비에서, 피트는 성인의 발 크기에서, 야드는 헨리 1세의 어깨에서 손끝까지의 거리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일 역시 원래 1000걸음(mille passus)을 의미하며, 이 또한 인간의 걸음 수에 기초한 단위다. 이러한 단위들은 그야말로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신체를 측정 도구로 사용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영국식 단위는 10진법이 아니라 더 복잡하다. 1마일은 1760야드다. (...)



반면, 오늘날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미터법은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정의되었다. 미터는 처음에 지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자오선 거리를 천만 분의 1로 나눈 값이 바로 1미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터는 더 정밀한 기준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결국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재정의되었다. 현재 미터는 진공에서 빛이 1초 동안 이동하는 거리의 299,792,458분의 1로 정의된다. 이는 현대 과학의 정밀함을 반영하며, 우리 일상에서 사용되는 단위가 얼마나 복잡한 계산과 관찰에 기초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 중 '초' 역시 지구의 자전 주기를 24x60x60으로 나눈 값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빛의 속도는 지구라는 특정 행성에 맞춘 상대적인 개념임을 깨닫게 된다. 만약 우리가 화성에서 살게 된다면, 화성의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에 따라 1초의 길이도 달라질 것이며, 그에 따라 빛의 속도 역시 화성의 기준으로 재정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즉,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초'라는 시간 단위조차도 지구라는 특정 환경에서 만들어진 개념에 불과하다.



1초라는 시간도 절대적인 단위가 아니다. 단지 지구의 기준일 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약 우리가 손에 잡히는 작은 단위, 예를 들어 한뼘을 기준으로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구 인구 수만큼 다양한 빛의 속도가 나오게 될 것이다. 이는 단위라는 개념이 얼마나 사회적 합의와 상징성에 기반한 것인지 보여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단위는 결국 인간의 경험, 역사, 그리고 자연 현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탄생한 약속이다. 이 약속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결정짓는다.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단위와 기준이 얼마나 상징적이고, 인류의 경험과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는 단순한 측정 도구가 아니라, 우리와 세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그것은 과거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반영하며, 또한 우리가 지금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결국, 빛의 속도를 묻는 단순한 질문은 단위와 시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하는가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들은 단순한 숫자나 수치가 아니라, 인류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의 일부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인식을 기반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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