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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25. 2019

좋아하는 모든 것은 조명이 된다

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 (5)


지금 내가 있는 공간에서 조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될까.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이 있을 것이고, 플로어 스탠드나 테이블 스탠드 조명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여태까지 말했듯 '창'도 매우 중요한 조명이 된다. 낮에는 풍부한 태양광이 들어올 것이고, 밤이라면 집 주변에 존재하는 가로등, 간판 등의 불빛이 조금씩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혹은 전기를 통한 램프로부터 집접 발광하여 나오는 빛을 모두 모아 조명으로 분류했다. 그럼 내가 있는 곳의 조명은 그게 다라고 볼 수 있을까?



이제 막 이등병 마크를 달고 열심히 자대 생활에 적응하던 시절, 처음으로 야간훈련을 나갔을 때 일이다. 강원도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었던 당시 우리 중대는 군장을 하고 늦은 밤 인근의 산을 올랐다. 아직 익숙지 않은 가파른 산세에 이등병의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겨울이었지만 방탄헬멧 안쪽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조용한 산속에 저벅저벅 군화소리와 새액새액 숨소리만이 나무 사이를 오갔다. 너무 힘들어 바닥만 쳐다보며 정신력으로 걷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바닥에 선명하게 내 그림자가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는 가로등 하나 없는 민통선 안 산속이고, 훈련이라 랜턴 하나 켠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선명한 그림자가 있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날은 가득 찬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꼭대기에 도착한 나는 쉬는 시간 한참 동안 그 달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달빛이 밝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시키는 달빛도 밤에는 훌륭한 조명의 역할을 한다.



달이 그렇게 밝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우선 인공조명의 발달로 달빛만을 느낄 기회가 그다지 없었던 것도 있겠지만, 달은 그저 받은 빛을 반사할 뿐 직접 빛을 내지 않는 존재라는 생각도 한몫했었을 것이다. 달은 이 땅에서 가장 큰 간접조명이다. 가장 멋진 직접 조명이 낮에 떠있는 하늘의 태양이라면, 달은 밤에 떠 있는 간접조명이다. 인공조명이 없었던 시대에 달은 어두운 밤 이 땅을 비추는 유일한 조명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과를 잡을 수는 있지만 사과를 볼 수는 없다] 편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물체를 맞고 나오는 빛이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물체는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램프처럼 스스로 발광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말이다. 빛을 직접 맞아 주변의 밝기보다 강하게 빛을 내는 물체가 있다면 그 물체는 그대로 조명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늘의 달처럼 말이다.



간접조명이라는 것은 단지 벽이나 천장을 비추는 것에 그 의미가 국한되지 않는다.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어떤 것이라도 조명이 될 수 있다. 벽과 천장뿐 아니라 벽에 걸린 그림, 넓은 잎사귀의 화분, TV 옆의 스피커, 찬장에 놓여있는 그릇, 거실의 소파와 침실 협탁 위에 놓인 화병까지도 모두 조명이 될 수 있다. 직접 조명만이 조명이라고 인식하는 공간은 효율적이나 노골적이고, 밝지만 재미없는 공간이 된다. 하지만 간접조명의 요소를 충분히 활용하는 공간은 차분하고 여유로우며, 무엇보다 집을 사용하는 사람의 취향과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매력 있는 공간이 된다.




벽에 페인트칠한 글씨도, 선반 위에 올려놓은 소품들도, 빛을 비추면 무엇이든 그 자체로 훌륭한 조명이 된다.




어떤 것이든 조명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좋은 빛으로 조명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챙겨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주변의 광원이 시야에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구로 벽을 밝힌다고 했을 때, 당연하게도 전구는 벽보다 밝다. 만약 광원이 벽과 함께 시야에 노출된다면 눈은 상대적으로 빛을 받아들이기에 벽을 밝다고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달이 아무리 밝다 하더라도 태양이 뜨는 순간 보이지 않게 되는 원리와 같다. 간접조명은 광원을 완벽히 가릴 수 있는 타입의 조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사용하는 스포트 조명, 할로겐 조명, PAR 램프 등이 간접조명을 만들기에 적합하다. 



집 안에 나만의 달을 띄워 보자



좋아하는 모든 것은 조명이 될 수 있다. 집 안에 나만의 달을 띄워 보자. 전원이 연결되어야지만, 램프가 장착되어야지만 조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는 빛을 낼 수 없는 달이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밤을 밝혀 왔듯이,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은 집안의 달이 되어 우리의 공간을 밝힐 수 있다. 저녁시간, 우리에겐 공간에 해처럼 밝은 조명보다 달처럼 부드러운 조명을 만들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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