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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28. 2019

어머님은 전구색이 싫다고 하셨어

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4)



조명디자이너가 되어 빛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후, 나는 집안의 램프를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주광색의 형광등 조명을 보다 따뜻한 전구색의 조명으로 말이다. 이미 있는 램프를 싹 다 바꾸기엔 비용도 비용이었거니와 아직 수명이 많이 남은 것 같은 램프를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론 내 방의 조명은 쿨하게 한 번에 바꿔버렸지만) 거실과 복도 등 집안의 램프가 깜빡거리면 나는 신이나 새로운 전구색 램프로 교체했다. 따뜻한 빛으로 바뀌어져 가는 집을 보니 흐뭇했다. 그런데 바뀐 조명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그다지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은 의지(?)로 하나둘씩 램프를 바꿔나가던 바꿔나가던 어느 날, 결국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노란색 조명이 눈이 침침해서 싫어



당시의 나는 그건 어머니가 너무 기존의 형광등에 너무 익숙해져 일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께는 왜 전구색 조명을 써야 하는지 열심히 설명하며 나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조명에 대해 더 공부하다 보니 어머니의 그 말씀은 단지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받아들이는 빛의 민감도가 달라진다. 여기에는 수정체의 맑기와, 감각 기관의 기능 저하 등이 원인이 된다. 60세 이상이 되면 일반 필요 조도의 두 배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 실제로 내가 느끼는 밝기 차이보다 어머니가 느끼는 밝기 차이가 더 심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디테일한 요소들이 함께 작용했다. 삼파장이라 불리는 형광등 타입의 램프는 전구색으로 제작할 때 유리관 표면의 형광막의 색상을 바꿔 색을 내는 방식으로, 실제로 주광색 형광등에 비해 빛 효율이 떨어진다. 거기에 형광등 특유의 왜곡된 스펙트럼이 전구색에 더해져 더 어색하고 침침한 빛을 만든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전구색 형광등은 그 나름 한계가 존재하는 램프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왜 전구색이 싫다고 했을까. 그 답에는 주광색 형광등의 경험에서 오는 어색함, 전구색 램프의 한계, 그리고 대비 없이 퍼지는 빛의 형태, 마지막으로 나이 듦에 따라 떨어지는 시력까지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좋은 빛이라며 무턱대고 낮은 색온도와 간접조명만을 사용하면 그 빛이 누군가에게는 주광색 형광등보다 더 불편한 조명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광색 형광등의 사용은 나이 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에 몇 가지 해결책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같은 빛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나이에 따라 빛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보다 높은 광량을 가진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다. 젊은 나이의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에 10W의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했다면, 부모님의 공간에는 15W의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광량을 나타내는 최종 단위는 와트(W)가 아닌 루멘(lm)이라는 점이다. 램프의 효율에 따라 같은 와트수를 가진 램프라 하더라도 내는 광량이 다른 경우가 있다. 반대로 높은 와트수를 가졌지만 브랜드에 따라 실제로 광량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램프도 있다. 램프의 패키지를 잘 살펴보면 루멘(lm) 값이 기재되어 있다. 이를 확인하면 실제의 내는 밝기를 기준으로 램프를 선택할 수 있다.



이케아의 경우 램프의 주요 표기를 아예 와트(W)보다 루멘(lm)을 우선해 표기한다. 이는 빛의 광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다 직관적이다.



그다음으로는 램프의 종류를 바꿀 필요가 있다. 백열전구는 많이 사용되지 않으니 배제하고, 전구형 또는 U자형으로 생긴 삼파장 형광등 타입의 램프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를 LED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LED가 사용되면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파장을 가지고 있는 형광등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LED도 백열전구와 같이 발열반응에 의한 램프보다는 부족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나, 형광등의 왜곡된 빛보다는 발전된 빛의 파장을 가지고 있으며 기술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높은 가격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한 가지는 4000K 조명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주광색과 전구색 사이의 빛으로 전구색의 빛 색깔에 익숙지 않은 분들이 접근하기에 좋은 색온도를 가지고 있다. 3000K 부근의 빛을 의미하는 전구색 램프와 4000K의 빛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 좋다. 4000K는 백색, 주백색 또는 아이보리 등으로 표기된다. (자세한 내용은 [집, 어떤 빛을 써야 할까] 참조)



마지막은 빛의 형태인데, 주요한 부분에 집중 조명을 하는 조명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어둡다고 하여 모든 공간의 빛을 동일하게 밝힐 필요는 없다. 식탁, 소파 테이블, 서재와 책상, 주방 등 작업과 읽고 보는 행위를 하는 곳에 스탠드, 펜던트 또는 투광형 조명을 벽이나 천장에 설치하여 비추는 방법이 좋다. 집중 조명은 일정 부분을 밝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천장등보다 같은 전력을 사용하는 것 대비 원하는 공간을 훨씬 밝게 만들 수 있는 조명방식이다. 예를 들면 공간 전체를 두배의 밝기로 만드는 것은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지만, 공간은 일정 수준 이상의 밝기를 유지하되, 많이 보고 작업하는 곳의 밝기를 매우 높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효율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하며, 실제 읽고 작업하는 데에도 더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다.



여태까지 부모님을 위한 빛 환경을 생각해 보았다면 이제는 그 반대의 영역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기의 시환경은 어떠할까? 갓난아이의 경우 명확한 실험이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지만 이 역시 수정체의 맑은 정도와 시신경 등을 고려했을 때 어릴수록 성인보다 빛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알려져 있다. 맑은 수정체를 가지고 있기에 성인보다 밝게 보이며 이는 눈부심도 더 잘 느낀다는 의미다.



아기는 더 맑은 수정체를 통해 빛을 감지하기에 성인보다 빛에 민감하다.



성인과 다르게 아기는 천장 한가운데 달린 주광색 방등이 눈부시다며 항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영아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천장을 보며 누워있는데도 말이다. 아이의 시환경은 성인보다 더 민감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직접적인 눈부심을 최소화하고 간접조명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의 아이가 있는 공간의 조명은 분명 더 고민하고 좋은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서 활동하는 성인의 기준으로 조명을 생각해선 안된다.



좋은 빛은 결코 빛이라는 한 가지 요소만을 고려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어둡다고 누군가는 밝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 빛 속에서 바라보고 생활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사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며 배려해 나갈 때, 그 어떤 분야든 우리는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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