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5)
스마트폰 카메라와 DSLR 중 어떤 것이 더 좋은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이다. '폰카 vs 디카'라는 키워드의 콘텐츠는 우리나라 유튜브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콘텐츠다. 각 기기가 가지고 있는 사용성, 이미지의 품질, 기능 등을 기준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한다. 이에 어떤 기업에서 새로운 기종이 출시되면 또다시 이 이야기가 반복된다.
DSLR은 큰 이미지센서와 함께 큰 렌즈를 사용해 빛을 담아 이미지를 만든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대의 렌즈가 사용된다. 렌즈는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선명하고 왜곡 없이 이미지센서에 담아내기 위해 위해 복잡한 물리적 광학기술이 사용된다. 그렇게 담아낸 사진은 별다른 보정 없이도 장면을 멋지게 담아내곤 한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소형 카메라의 렌즈에도 높은 수준의 광학기술이 사용된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렌즈는 그 크기면에서 일반 카메라의 렌즈를 따라가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승부를 건다. 부족한 화각으로 생긴 왜곡은 프로그램을 통해 보정하며, 부족한 빛과 심도는 여러 장의 사진을 겹쳐 합성함으로써 해결한다. 환경의 색온도에 따른 보정도 똑똑해진 프로그램이 담당하여 보정한다. 프로그램의 보정 기능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이제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여러 개의 렌즈가 달린 스마트폰이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구글의 새로운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사진은 그야말로 이전 카메라가 가질 수 없었던 놀라운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프로그램을 통해 보정된 이미지에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를 담아야지, 이후 보정되고 합성된 사진은 무언가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 온라인의 이미지에서 ‘무보정’이라는 태그는 ‘진실성’이라는 말과 유사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비슷한 내용의 논쟁은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갈 때도 그리하였으며, 디지털화된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촬영 과정에서 생기는 왜곡을 바로잡는 보정과, 다양한 색감의 필터, 다리 길이를 늘리는 것 등을 포함한 특수 효과로써의 보정은 구분되어 논의되어야 한다.) 사진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빛을 보이는 그대로 담지 않고 보정과정을 거쳐 실제를 왜곡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얼마나 사실적이며 객관적일까?
그럼 이때 기준이 되는 ‘보이는 대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얼마나 사실적이며 객관적일까?
우리는 동공을 통해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의 시각 인지능력은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다. 우리의 뇌가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오히려 스마트폰의 카메라와 유사하다. 기본적으로 빛의 양에 따라 홍채가 조리개 역할을 하여 동공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것은 렌즈와 동일하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얻은 시각 정보는 우리의 뇌가 한번 가공/보정하여 인식하게 된다.
사람은 절대적인 파장으로 색을 인식하기보다는 파장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색을 인식한다. 주광색의 빛이 주가 되는 공간에 오랫동안 있으면 주광색에 맞춰, 전구색 빛의 공간에 있으면 전구색에 맞춰 적응하여 공간과 그 공간의 물체들을 파악한다.
노란 조명의 카페에 오래 앉아 있다가 창 밖을 보면 유난히 바깥 거리가 푸른색으로 보이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와 반대로 밖에서 본 카페는 유난히 더 노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변 환경이 가진 빛의 색과 내가 경험해온 물체의 색을 조합하여 뇌는 색을 보정한다. 노란 불빛 아래 머그잔을 노란색이 아니라 하얀색 그대로 인식하는 이유는 뇌 때문이다.
카메라에도 동일한 기능이 있다. ‘화이트 발란스’라고 불리는 이 기능은 카메라를 조금만 다뤄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기능이다. 색온도의 기준을 지정해 이미지 전체의 색감을 조정해 주는 기능으로, 자동으로 맞출 경우 이미지의 색상값을 낮시간 태양빛의 색온도에 맞춰준다. 이는 사진의 일반적인 색감을 통일시켜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푸른색의 새벽빛, 붉은 노을빛과 같은 특수한 빛의 분위기도 무난한 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단점도 있다. 이 기능 역시 렌즈나 이미지센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뇌가 보정하는 것은 색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눈은 두 개로, 각기 다른 눈으로 인식한 빛의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뇌는 이미 두 가지 영상을 하나로 합쳐서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두 눈의 시각정보 차이를 통해 물체와 나 사이의 거리까지 인지한다. 시각의 왜곡된 정보를 눈의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보정하여 빛 정보를 단지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순식간에 일어난다. 이는 현재의 스마트폰이 발전하고 있는 과정과도 매우 유사하다.
또한 실제로 눈에 보이는 정보를 보이지 않는다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인지하기까지 한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위 이미지는 사람의 눈과 오징어의 눈의 차이는 사람 눈의 구조 때문에 눈 앞에 신경섬유와 맹점이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뇌는 두 개의 눈에서 들어오는 장면을 조합하고, 눈의 떨림을 이용해 망막 등 눈 내부의 환경으로 인해 보이는 장면이 눈 앞의 모습인지, 아니면 눈 내부의 섬유 혹은 세포인지를 구별해 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지워버림으로써 깨끗한 시야인 것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스마트폰이 더 발전되면 카메라 렌즈 위에 올려진 먼지를 닦지 않아도 깨끗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기능이 생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본다 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뇌의 보정을 거친다.
본다 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뇌의 보정을 거친다. 광원의 종류와 색, 빛의 형태에서부터 두 개의 눈이 빛의 양을 조절하여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뇌가 그 들어온 시각정보를 다양한 과정과 기억을 통해 보정하여 인지하는 것까지 많은 영역의 과정들이 본다 라는 행위에 포함된다.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또 스마트폰 카메라로 발전되면서 우리는 보는 그대로의 빛을 잃어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전의 카메라보다 지금의 스마트폰은 더욱 사람이 보고 인지하는 방식과 가깝게 발전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