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
로마의 바티칸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챙겨보는 그림이 있다. 바로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다. 사실 처음 천지창조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성당의 어느 멋진 방, 고급스러운 액자에 속에 존재하고 있을 줄 알았던 이 유명한 그림은 예상과 다르게 성당의 천장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목이 아플 정도로 최대한 고개를 들고, 근시를 극복하기 위해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눈을 찡그려야지만 그 형체가 제대로 보일 정도로 먼 거리에 있었다. 천지창조는 그렇게 캔버스가 아닌 건축물의 일부로 존재하는 그림이었다.
구석기시대로 추청 되는 인류 최초의 그림은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그 시절 그들은 자신이 주로 생활하는 동굴 깊숙한 곳에 들어가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 그림은 주로 사냥감으로 추정되는 소, 말, 사슴 등이 주를 이루었다. 사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나갔던 시대이기에, 그 시절 사람들의 생활, 염원, 희망이 그림에 담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 보아도 감탄이 나올 만큼 그 시대 사람들의 그림솜씨는 뛰어났다. 동굴 속 타오르는 모닥불에 비친 일렁이는 동물 벽화는 그들에겐 마치 살아 움직이는 스크린 같았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문명이 발전하고 국가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그 옛날 동굴에 그림을 그렸듯, 건축물에 그림을 그렸다. 왕과 종교가 권력을 가지면서 그 권력을 통해 크고 화려한 건물들이 생겨났고, 권력자들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건물의 벽과 천장에 자신들이 이루어낸 화려한 역사와, 종교의 심오한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리기를 의뢰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도 이러한 배경 중 가장 화려했다고 알려진 16세기 르네상스에 그려진 작품 중 하나다.
당시의 수많은 벽화와 천장화를 보면 알 수 있듯, 건축물은 하나의 큰 캔버스이자 조각 작품이었다. 현대에는 수많은 조명만이 촘촘히 배치되어 그다지 바라볼 일이 없는 교회의 천장이지만, 인공조명이 발견되기 이전 종교건축의 천장은 하늘과 신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어려운 난이도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졌다. 인류 전체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캔버스 또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가 지내온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은 대부분 공간과 일체화되어 존재했다.
인류가 지내온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은 대부분 공간과 일체화되어 존재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 권력이 왕실과 교회에서 귀족과 개인으로 다양화되고 그림을 ‘소유’하고 ‘매매’한다는 개념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또한 캔버스가 만들어지고, 물감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림을 고정된 곳에 그리지 않아도 보관과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서서히 그림은 공간과 분리되었다. 그 이후 건축과 미술은 그렇게 하나의 개념에서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건축은 건축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영원히 각자의 길을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예술이 다시 공간과 하나가 되는 일은 의외의 지점에서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인류는 전구를 통해 빛을 낼 수 있는 전구를 발견했다. 그 인공의 빛은 공간을 밝히는 조명으로, 그리고 신호등과 같이 빛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사인으로서 진화해 왔다. 사인 조명은 화면과 영상을 담는 모니터로 발전되었고, 한편에서는 빛을 직접 스크린에 쏘아 화면을 만드는 기술이 생겨났다. 사람이 빛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기 시작한 실로 놀라운 발전이었다. 그리고 이 매력적인 기술을 예술가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미디어아트라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 등장했다. 이전까지의 그림이 외부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존재했다면, 이제는 그림 자체가 빛을 낼 수 있는, 심지어는 살아 움직이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의 미디어 아트는 모니터로 시작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니터를 벗어나 공간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빛이 닿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캔버스가 될 수 있다.
이제 빛이 닿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캔버스가 될 수 있다.
현대를 상징하는 도시의 멋진 건축물들과 기반시설은 그 자체로 이 새로운 예술을 담아내기에 아주 멋진 캔버스가 되었다. 이는 건축물의 전면에 영상을 만들어 내기에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라고도 불린다. 새로운 시대의 권력인 국가와 자본은 새로운 캔버스와 예술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지역과 건물의 상징성을 부여하며, 또한 그를 통해 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을 통해 생겨난 새로운 예술이 다시 건축과 미술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고대 동굴에 그 시대의 인류가 자신들의 소망을 공공의 공간에 벽화로 담았듯, 현재의 인류는 도시의 상징적인 공간에 빛을 통해 새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미디어로 담는다. 세계 각지의 상징적인 공간에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펼쳐진다. 심지어 그 캔버스가 꼭 건축물일 필요도 없다. 빛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캔버스가 되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캔버스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또 그곳에 뿌려지는 빛은 어떤 메시지를 담는가.
“비비드 시드니(VIVID SYDNEY)”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행사로 세계 최대의 빛의 축제로 불린다. 2009년에 시작된 이 행사는 5월 중 약 3주에 걸쳐 진행되며, 2020년에 12번째 행사를 맞이한다. 호주가 겨울로 들어서는 5월, 오후 5시면 어둑어둑해지는 시드니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작했다. 비비드 시드니는 오페라 하우스의 미디어 파사드로 시작해 하버 브리지, 로열 보타닉 가든과 바랑 가루 일대에서 다양한 미디어 아트와 라이트 아트 설치미술 등을 볼 수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이다. 이는 파리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처럼 한 도시와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또한 하버브리지 역시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시드니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이 두 건축물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 “비비드(VIVID)”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파사드, 설치미술, 경관조명, 영상 상영, 간담회와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비비드(VIVID)는 우리말로 ‘생생한’이라는 의미이며, 색에서의 비비드는 채도가 높은 선명하고 강렬한 색을 의미한다. 비비드라는 단어가 호주라는 국가가 스스로를 어떤 이미지로 브랜딩 하고, 빛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도시의 축제로 녹일 것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단지 건물의 외벽에 영상을 상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색으로 물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과, 그 기간에 일어나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풍성한 워크숍과 간담회, 전자음악과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신진 뮤지션들과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의 프로그램은 그들이 키워드로 뽑은 비비드라는 단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도 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이벤트가 열리곤 한다. 2011년에는 국회의사당의 지붕을 열고 나오는 로봇 태권브이를 빛을 통해 보여주는 행사를 했었다. 또 줄리안 오피의 작품으로 유명한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는 전면을 미디어 파사드 스크린으로 만들어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난 12월, 서울 동대문의 DDP에서는 서울의 빛이라는 주제로 미디어 파사드 쇼가 진행되었다. 주제는 서울 해몽(SEOUL HAEMONG)으로, 터키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디자이너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이 메인 작가로 참여하고, 서울과 동대문 지역의 역사 데이터와 DDP 건축물에 대한 고유 데이터, 그리고 서울 시민들이 공유한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빛과 영상을 만들어 DDP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펼쳐냈다.
DDP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의 복합 문화공간이다. 유선형의 비정형적 형태를 띠는 이 건물은 개관 과정에서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의 비판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나 시대는, 지금의 DDP를 선택하였고 이제는 동대문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 그 역동적인 형태와 상징성 등을 고려했을 때 미디어 아트를 보여주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캔버스가 있을까.
서울시가 주최한 행사이니만큼, 주제는 서울 그리고 동대문이었다.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와 영상들이 보이고, 시민들이 올린 SNS상 600만 장의 서울 이미지가 AI를 통해 현재의 서울과 동대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DDP라는 건물이 가진 디지털 3D로 구현한 자유로운 곡면을 따라 화려한 디지털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하나의 쇼가 만들어졌다. 멋진 건물과 멋진 쇼였지만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멋진 캔버스 위에 담길 메시지의 부실함이 못내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의 사례가 국가 혹은 지역의 상징적인 건물에 빛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채석장’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빛을 통해 전혀 새로운 곳으로 탈바꿈된 아주 매력적인 사례가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보 드 프로방스는 석회산 모퉁이에 위치한 마을이다. 빛의 채석장이 있는 그랑 퐁 (Grands Fonds) 채석장은 보 드 프로방스 마을과 성을 짓기 위해 필요한 흰색 석회석의 주요 공급처였다. 이 채석장은 1920년대까지 운영되다가 점차 방치되었고, 1935년이 되자 완전히 폐쇄되었다. 하지만 이 채석장의 캄캄한 동굴, 복도, 거대한 기둥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장 콕토(Jean Cocteau)는 영화 <오르페의 유언 (Le Testament d’Orphée)>(1959)에서 그랑 퐁 채석장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채석장은 ‘빛의 채석장’으로 새로 태어나 2012년부터 전시가 기획되고 있다. 백여 대의 프로젝터와 멀티 투사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채석장의 바닥, 벽, 기둥, 천장 등 천연 스크린에 최대 16m의 높이에 수많은 작품들이 뿌려진다. 그동안 빛의 채석장에는 반 고흐, 고갱, 피카소, 클림트 등의 작품이 전시된 바 있다. 2020년에는 달리와 가우디의 건축 이미지가 전시될 예정이다.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채석장이 ‘빛’이라는 요소를 통해 갤러리가 되었다. 그 발상과 아름다운 전시 모습도 뛰어나지만 이는 왠지 이전의 동굴 벽화를 떠올리게 한다. 수 만년 전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석회동굴 벽면에 뾰족한 돌과 색깔을 가진 열매들로 그림을 그렸다면, 현대의 우리는 채석장이라는 인공의 석회동굴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빛은 새로운 예술의 도구가 되었다.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새로운 미술의 장르는 이렇게 건축과 미술을, 공간과 미술을 다시 연결해 주었다. 옛날 동굴의 벽화나 성당의 그림들은 이 시대에 맞게 변화된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며, 여전히 예술가와 기획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시 그림은 캔버스를 빠져나와 건축으로, 공간으로 우리의 삶 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도 나만의 공간에 예술을 할 수 있다. 만약 영화를 보기 위해 사놓은 가정용 프로젝터가 있다면 나만을 위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기획해보자. 캔버스처럼 정사각 네모의 화면을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거실과 침실의 모서리나 그보다 넓은 면에 빛을 비춰보자. 가구에 가려도 상관없다. 가구가 당신이 원하는 색으로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작품을 당신의 어느 공간에 펼쳐 놓고 싶은가?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의 그림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거실에는 가고 싶었던 파란 하늘과 초록빛 드넓은 호수가 펼쳐진 자연 또는 유럽의 어느 멋진 도시의 야경으로 채울 수도 있다. 아이의 방이라면 그 공간을 아이가 좋아하는 색으로 가득 채울 수도 있고,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가득 찬 거실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프로젝트 역시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좋아하는 것, 상상하는 것을 사각의 제한된 공간을 넘어 의미 있고 또 바라는 모든 것들을 빛을 통해 공간에 담아낼 수 있다. 바로 그것이 빛으로 그린 그림, 오늘날 미디어 아트가 가진 큰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