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 (7)
어느 날, 브런치 초기부터 나의 글을 늘 응원해주던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인이 곧 이사를 할 집에 간단한 인테리어 공사 예정인데 이 중 조명공사 비용이 생각보다 높아, 이 비용을 들일만한 공사인지 봐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건네준 조명공사비용과 그 업체에서 이전에 시공했다는 사례들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다소 밋밋한 거실 천장에 깊이를 내 간접조명을 넣고, 기존의 구식 조명을 최근에 많이 사용되는 LED램프로 바꾸고, 식탁 위에는 다운라이트 대신 동그란 펜던트를 넣는 일반적인 공사들이었다. 천장 공사의 범위나 시공과정을 봤을 때, 업체에서 제시한 금액이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금액은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돈을 들여 고친다고 해서 정말 좋은 빛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전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명공사 부분은 취소하였고, 그 돈으로 조만간 좋은 조명을 사러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대부분의 조명기구는 천장에 달려 있다. 건축도면에서 천장도는 거의 조명 배치도와 동일한 의미로 쓰일 만큼, 조명은 천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의 공간에서 조명은 천장에 설치된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우리의 주거도 마찬가지다. 거실과 모든 방에는 기본적으로 천장 한가운데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조명은 천장 한가운데'이라는 고정관념은 쉽게 바꾸기 어려운 우리의 빛 현실을 대변한다.
'조명은 천장 한가운데'라는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기 어려운 우리 주거의 현실을 대변한다.
하지만 천장에 조명을 설치하거나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조명기구 비용만큼이나 설치비나 전기공사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천장 공사이기도 하다. 또한 그렇게 어렵게 설치된 조명은 이사라도 하게 되면 모두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애써 만든 천장 조명의 빛환경은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돈을 들인다 한들 천장의 조명기구 종류와 색상 정도만 바꾼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천장이 조명기구가 달리는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전기와 전구가 발명되기 전, 실내로 빛을 들이는 가장 큰 요소는 창문이었으며, 이는 대부분 벽면에 위치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램프나 양초 등의 불을 이용해 실내 공간을 밝혔는데, 이들의 높이는 대부분 사람의 눈높이에서 크게 위아래로 벗어나지 않았다. 때론 샹들리에와 같은 조명이 있었지만, 이는 대중적인 빛이라 보기는 어려운 조명이다. 높은 천장에 매달려있는 샹들리에의 램프에 불을 붙이거나 양초를 교체하는 일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구가 발명된 후, 우리의 실내공간에는 전기를 사용한 새로운 빛이 생겼다. 필라멘트를 통해 빛을 내는 전구는 자연의 촛불보다 훨씬 밝았다. 하지만 빛을 내는 부분은 아주 작았고 이는 필연적으로 눈부심을 유발했다. 새롭게 등장한 전구는 그대로 눈높이에 두기엔 어려운 빛이었다. 그래서 램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갓을 씌우거나, 전구는 눈높이 위로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조명을 다루기 시작했다.
사실 높은 공간에서 내려오는 빛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아니 당연한 빛이다. 우리에게 가장 많은 빛을 주는 태양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천장에 조명을 설치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익숙하기도 했으며, 넓은 공간에 골고루 빛을 퍼트릴 수도 있었고, 효율도 좋다. 하부에 놓인 조명에 비해 그림자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필연적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조명 대부분은 천장에 달려있다. 천장의 조명은 효율적이며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아쉬운 조명이다. 뻔한 빛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며, 용도에 따라 쉽게 바꾸거나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천장의 조명은 효율적이며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아쉬운 조명이다.
뻔한 빛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며,
용도에 따라 쉽게 바꾸거나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우선 천장의 조명은 실외에서의 방향으로서만 자연의 빛과 공통점이 있을 뿐, 실제로 자연과 비슷한 형태의 빛이라고 보기에 어려움이 있다. 자연의 환경은 하늘이 가장 밝은 빛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천장에 설치된 조명은 바닥을 가장 밝게 만들고, 천장을 상대적으로 가장 어둡게 만드는 조명방식이다. 또한 직사광처럼 또렷한 빛을 만들기보다, 넓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비추기 위해 넓게 퍼지는 형태의 빛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빛으로 바닥만을 밝혀서는 아늑한 빛을 만들기도, 공간을 넓고 시원하게 보이도록 만들기도 불가능하다.
'조명은 천장'이라는 고정관념만 벗어난다면 우리가 머무르는 공간의 빛환경은 훨씬 풍성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조명은 천장'이라는 고정관념만 벗어난다면 우리가 머무르는 공간의 빛환경은 훨씬 풍성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저녁시간 집에서는 대부분 바닥 또는 스탠드에서 따뜻한 빛으로 천장을 비추는 조명을 사용한다. 이는 넓은 천장면을 공간에서 가장 밝게 만드는 방식의 조명이다. 하얀 천장면이 밝게 빛난다는 건, 넓은 천장면 자체가 하나의 큰 조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장면이 밝다는 것은 천장의 조명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천장을 통해 반사된 빛이 바닥뿐 아니라 공간 전체를 은은하게 밝혀준다.
그리고 보다 밝은 빛이 필요한 부분, 예를 들면 테이블 위, 거실의 벽면, 싱크대 위, 침대 머리맡 등에 별도의 조명을 사용해 필요한 빛을 확보한다. 작업면을 별도로 비추는 방식의 조명은 천장의 조명보다 적은 전력으로 더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작업면에 그림자가 질 것을 염려하지 않도록 배치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스탠드 조명은 그래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조명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플로어 스탠드는 눈높이에서 테이블이나 소파, 또는 식탁을 국부적으로 비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스탠드는 천장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얇은 패브릭이나 불투명 유리 등을 사용한 스탠드는 눈이 부시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천장과 주면 공간 전체를 밝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테이블 위 작은 스탠드나, 침대 옆 스탠드 역시 필요한 부분에 그때그때 빛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침실에서의 스탠드 조명은 누웠을 때도 눈이 부시지 않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조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때는 침대에 누운 상태로 조명을 켜고 끌 수 있도록 스위치를 배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말 특별한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무릎 밑으로 조명을 배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침대 밑, 소파 밑, 부엌의 조리대 하부에서 나오는 빛은 똑같은 가구와 공간이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돌아다닐 때도 눈이 부시지 않는 그 자체로 훌륭한 조명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조명방식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빛을 비추고, 다른 공간은 은은한 빛을 유지하도록 만든다. 이는 낮을 흉내 내지 않고 저녁시간을 저녁 시간답게 만든다. 따뜻하고 은은한 빛의 공간으로 만듦과 동시에 일상의 활동을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부분적인 빛을 충분히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조명방식은 어두운 곳은 어둡게, 밝아야 할 곳은 밝게 조명하는 방법이다. 이는 낮을 흉내 내지 않고 저녁시간을 저녁 시간답게 만든다.
또한 이러한 조명의 운용은 공간의 사용용도에 따라 스탠드나 조명을 옮겨가며 다른 빛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손님이 올 경우 침실의 조명을 거실로 옮겨 보다 여러 공간을 두루 비추도록 사용할 수도 있고, 조명의 높이를 그때그때 바꿔 용도에 따라 집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 내 집이 아니라 천장 공사가 어렵고 이사를 염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조명 운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도 모른다.
이러다 보니 우리 집의 경우 저녁시간 대부분의 빛을 스탠드나 부분 부분의 작업조명만으로 사용한다. 그 때문에 사실 천장 조명을 사용할 일이 오히려 많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천장의 조명은 언제 사용하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우리 집도 모든 천장 조명을 켜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청소 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은 온 집안이 작업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간에서 빛의 높이를 다양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조명은 천장에 있어야 한다.’라는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요소 하나만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생활하는 곳의 빛은 보다 풍성하고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 한 번쯤은 천장의 조명을 끄고 새로운 높이에서 비추는 빛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공간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