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 (10)
어릴적 유난히 어두워 갑갑함을 느끼던 공간이 있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불을 켰다가는 혼나는 공간이었다. 바로 차안이다. 자동차의 실내 공간은 운전을 위한 공간이었다. 어두운 밤의 차안은 유리에 반사되지 않고 바깥의 사물을 정확히 보기 위해서 늘 조명 하나 켜지 않은 깜깜한 공간이어야만 했다. 차 안에 설치된 조명은 지도를 보거나 가방 속 물건을 찾는 등 필요할 때만 잠깐 켜는 용도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를 시작으로 새로운 조명이 자동차라는 공간 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주행중에 늘 켜두는 목적으로써의 조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엠비엔트라이트(Ambient Light)' 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이 조명은 우리말로 주변광, 간접광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밝히거나 잘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명이 아니었다. 광원이 보이지 않도록 어딘가에 숨겨져 그저 ‘공간’ 자체를 은은하게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실내등은 처음에는 고급 자동차들에서나 볼 수 있는 사치스런 조명이었다. 굳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등을 실내에 넣는 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좀 더 비싸게 차를 판매하기 위해 시도되는 눈요기용 조명 정도로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차 이 조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두운 밤 차를 탔을 때 이 조명을 통해 느껴지는 공간감과 아늑함은 자동차를 ‘운전을 위한 공간’에서 ‘머물기 좋은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이전까지 멋진 내부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소재는 낮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 조명은 밤에 오히려 더 멋진 실내공간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눈부심이 잘 통제되어 있는 간접광은 대비를 줄여줌으로써 대시보드와 계기판을 바라볼 때의 시각적 편안함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조명을 통해 느껴지는 공간감과 아늑함은 자동차를 ‘운전을 위한 공간’에서 ‘머물기 좋은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공간은 은은하게 비추는 용도로 시작되었던 엠비언트라이트는 컬러 LED를 통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게 되면서 환경이나 기온에 따라 색을 바꾸거나 원하는 색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로 인한 자동차 실내의 분위기의 변화는 판매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자동차 튜닝시장에는 엠비엔트라이트를 설치하는 서비스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시장에는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몰라도, 한번 엠비언트라이트의 분위기를 알게 되면 이후에는 그 조명이 없는 차를 쉽게 타지 못한다는 이야기마저 돌았다.
실내의 숨겨진 간접조명을 사치스러운 부가적인 요소라고 보았던 다른 브랜드들도 하나 둘 씩 실내의 간접조명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벤츠의 고급 승용차에만 적용되던 이 옵션은 이후 수 많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차종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빛이 만드는 공간감과 분위기는 이제 자동차에서 선택사항이 아니라 점점 필수로 자리잡고 있다.
자율주행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시기, 사람이 지금보다 운전이라는 행위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자동차의 실내 공간은 지금보다 더 '운전'이 아닌 이동을 위해 '머무르는'것을 위한 공간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에 자동차의 실내인테리어와 구조 그리고 조명은 또 한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는 빠르게 시대를 반영하는 특성상 원래부터 머무는 공간이었던 집이라는 공간보다 숨겨진 빛을 통해 더 빠르게 편안하고 아늑한 조명이라는 환경을 앞서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뿐만이 아니다. 키보드, 컴퓨터 등의 각종 전자기기에도 숨겨진 조명이 활발하게 쓰인다. 이는 어둠 속에서 자판을 잘 보이게 하는 용도로 시작되었지만, 어느덧 새어나오는 빛을 통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조명의 요소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자동차나 각종 전자기기 뿐 아니라 다양한 상업공간들과 심지어 공공 시설물에도 벤치 하부에 빛을 숨기면서 차분하고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어떠한가. 자동차도 간접광을 통한 공간감과 분위기를 추구하는 시대에 아직도 무언가를 밝게 비추기 위해서만 조명만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안타깝게도 모름지기 빛은 밝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너도나도 빛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바쁘다. 방등과 팬던트, 주방 조명부터 다운라이트까지 모두 빛을 내는 부분을 드러내어 어떻게든 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일반적인 빛의 역할은 어두운 공간과 작업면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에서의 빛만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램프 그대로가 가장 밝고, 그것이 숨겨지거나 가려질수록 빛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빛을 숨겨둔다는 것은 왠지 전력을 낭비하는 일 같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만 빛이 사용되는 시기는 지난지 오래다. 이제 더 이상 빛은 자동차의 실내 보조등처럼 어두운 곳을 밝히기만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머무는 곳의 공간감과 분위기를 만들어 시각적 편안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준다.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만 빛이 사용되는 시기는 지난지 오래다.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간접조명이 있다. 나에겐 그나마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바로 아파트 거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물천장의 조명이다. 우리나라 주거환경 속 간접등의 시초(?)라 할 만하다. 천장 중앙 방등 일변도의 우리나라 주거환경에서 우물천장은 그나마 숨겨진 조명의 느낌을 우리에게 알려준 존재다.
하지만 형식적인 부분에 그치고 좋은 디테일이 구현되지 않아 공간감을 주거나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고 아쉽게도 그저 '데코용 조명' 정도로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거의 유일한 간접등이 그만큼의 좋은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니 간접조명은 낭비라고 느껴지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아쉬운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숨겨진 빛은 아름답다. 광원이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간접조명은 그것이 없을때와는 전혀 다른 공간감과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자동차 엠비언트 라이트와 천장 보조등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숨겨진 빛은 아름답다.
나는 집의 구석구석에 열심히 빛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소파와 벽면 사이, 침대 밑, 커튼 박스,TV 뒷면, 책장의 책 사이나 겹쳐져 있는 유리잔들 사이 어디라도 좋다. 조명을 숨기려 할때는 얇고 긴 라인조명이나, 충전해서 사용하는 작은 휴대용 램프 같은 것이 도움이 된다.
스탠드를 사용할 때도, 소파나 테이블을 직접 비출 수도 있지만 벽이나 천장을 향해 빛을 쏘는 것도 방법이다.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TV를 본다면 그 정도의 간접조명만으로도 충분하며, 오히려 벽과 천장에 반사된 빛이 이야기 나누는 상대의 얼굴이 더욱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이도록 만들 것이다.
우리의 눈은 밝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빛의 양을 조절한다. 노출되지 않은 광원은 눈을 피로하지 않도록 만들며, 집안 곳곳 숨겨진 빛들이 그 자체로 조명역할을 해 공간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준다. 이전까지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해서만 빛을 사용해 왔다면 빛을 숨기는 간접조명의 매력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한번 빠져드는 자동차 간접등의 매력처럼, 어느덧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천장등이 아니라 숨겨진 조명부터 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