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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Apr 16. 2020

식탁 위에는 어떤 조명이 필요할까

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11)



중고등학생 시절 좋아하던 외식공간이 있었다. 그 어떤 공간보다 외식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메뉴도 이색적이었지만 무엇보다 한상이 테이블 위에 차려져 나온 뒤 눈 앞의 음식은 TV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폭립 위에 뿌려진 짙은 갈색의 소스에는 반질반질 윤이 났고, 파스타면은 한가닥 한가닥 선명한 음영을 가지고 서로 뒤엉켜 있었다. 통통한 새우의 먹음직스러운 붉은빛과 껍질채 구워 나온 감자의 거칠거칠한 표면은 아주 선명히 보였다. 스테이크의 육즙이 지글지글 소리 내며 익어가는 철판 위에는 연기가 올라왔다.



이제는 그 수가 많이 줄어 보기 쉽지 않아 졌지만, 한때는 다양한 브랜드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하면 떠오르는 것은 비슷비슷하게 생긴 붉은색의 로고, 어딘지 모르게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로 된 인테리어와 소품들, 낮이라 해도 생각보다 어두운 실내조명, 그리고 사람의 눈높이까지 내려온 펜던트 조명이 있었다.




나에게 특별한 외식의 기억을 만들어준 패밀리 레스토랑의 빛



어두운 실내조명과 식탁 위만 집중해서 비추는 조명은 당시 우리나라의 식당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타입의 조명방식이었다. 외국 영화 속 혹은 고급 바에서나 보던 분위기가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식당에 구현되어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 낮은 높이의 펜던트는 전구색의 따뜻한 빛을 모아 테이블 위만을 위주로 비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의 음식은 대비가 높았고, 붉은색이 더 강조되어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람이 많아도 주변이 어두웠기 때문에 우리가 앉은 식탁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음식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사람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음식의 색에 민감하다. 음식을 본다는 것은 단지 시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각과 미각에 이르기까지 여러 감각의 시작점이 된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지는 식욕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또한 진화과정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음식의 위험성을 시각으로 판단한다고 한다. 붉은색 계열의 색에서 사람은 가장 식욕을 많이 느끼며, 파란색이나 보라색과 같이 부패와 관련된 색을 보면 식욕을 잃는 것도 이런 이유 중 하나다.



시각으로 느끼는 음식은 단지 재료나 색에서 끝나지 않는다. 음식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보고 그 온도를 짐작하기도 하며, 표면의 윤기는 음식이 얼마나 촉촉한지 반대로 건조한 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소스를 담뿍 머금어 빛나는 파스타면 위에 싱싱한 녹색 바질 잎, 그리고 방금 드륵드륵 갈아낸 후추의 파편, 함께 나온 빵의 바삭한 표면 등 재료의 다양한 상태를 우리는 시각을 통해 인지한다.



'시각'을 통해 인식하는 음식은 재료 이외에도 표면질감, 색채, 온도, 윤기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 시각을 통한 정보는 음식을 비추는 빛에 영향을 받는다. 천장에서 넓게 퍼지는 형광 조명 아래 놓인 음식은 레스토랑의 펜던트 속 백열전구 아래 놓인 음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푸른 기운이 도는 조명이 음식이 맛있어 보이게 하는 붉은 기운의 색들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하며, 대비가 적고 밋밋한 빛의 형태로 인해 음식에 선명한 음영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다른 공간보다 식탁 위, 음식에 좀 더 집중되어 있는 조명환경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밝은 공간은 음식이 보이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보다는 주변에 있는 다양한 것들에 골고루 눈이 간다. 모든 공간을 환하게 밝혀놓은 식당에서 음식은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음식 말고도 눈이 가는 주변의 복잡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모든 공간을 환하게 밝혀놓은 식당에서 음식은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음식 말고도 눈이 가는 주변의 복잡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낮은 색온도, 선명한 대비,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조명환경은 같은 식사도 더 맛있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음식이 맛있어 보이게 만드는 조명에 대해 연구하는 가까운 사례들이 있다. TV광고나 프로그램 속의 음식 조명이 그러하고, 식재료 혹은 음식을 다루는 마트나 카페, 식당들의 쇼윈도가 그렇다. 광고에는 아까 말한 음식을 맛있어 보이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한 카페나 식당의 쇼윈도에는 대부분 가까운 곳에 전구색 조명을 비춘다. 물론 램프 자체는 가리고서. 따뜻한 조명 아래 식재료들과 쇼윈도 속의 빵과 케이크는 왠지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마트의 조명에도 나름의 법칙들이 존재한다. 야채와 같은 신선식품은 쌓아져 있는 그 동글동글한 형태가 돋보이도록 따뜻한 색의 집중 조명을 사용한다. 붉은색의 고기를 판매하는 곳은 전구색에 가까운 (또는 아예 붉은) 낮은 색온도의 조명을 사용하며, 닭고기나 생선, 해산물 등의 식품을 파는 곳에는 높은 색온도(약 4,000K~5,000K)의 조명을 사용한다. 이것은 마치 육류에는 레드와인을, 해산물에는 화이트 와인을 페어링 하는 것과 유사하다. 각 재료의 색상을 고려해 보다 신선해 보일 수 있도록 하는 조명 색상이다.




가까운 곳에서 비친 집중 조명은 식품을 더운 생기 있고 맛있어 보이도록 만든다.



조명만 봐도 아래 어떤 식품을 진열해 두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밝고 어두움을 활용해 식품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신선함, 생동감을 보여주는 식품은 보다 밝고 대비가 강하게 비춘다. 다양한 공산품들은 집중해 조명하기보다 고르게 비추기 위한 조명을 사용하고, 고급 식재료나 와인 등을 판매하는 곳은 다른 곳보다 공간의 조도를 낮추고 제품에 조명을 비추어 보다 집중도 있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식을 택한다. 이처럼 음식을 비추는 조명에도 그 종류와 성격에 따라 다양한 조명 방식과 효과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식탁위에는 어떤 빛이 필요할까?



집에서 식탁은 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 요소다.  이곳은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정확한 목적을 가진 공간이면서,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식탁은 아파트로 대표되는 기본적인 우리나라의 평면에서 거의 집의 정 중앙에 위치한다. 거실과 주방의 중간, 방과 방 사이의 통로 근처에 식탁이 놓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집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온 가족이 모여 아침과 저녁 마주 앉아 식사하는 것이 식탁의 주된 용도다. 식탁 위로 아침마다 햇빛이 비춘다면 가장 좋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식탁위를 밝히는 조명이 필요한데, 앞서 말한 것처럼 식탁의 주요 용도에 맞게 음식이 보다 맛있게 보일 수 있는 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는 낮은 색온도와 대비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집중 조명이 음식을 보다 맛있어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식탁 위에는 펜던트는 음식을 비추기에 좋은 조명 중 하나다. 단지 조형적으로 예뻐 보이기 위해서만 펜던트 조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나라 주거공간의 조명들은 천장에 납작하게 붙어있거나 아예 매입이 되어있기 때문에 더욱 거의 유일한 조형성을 갖춘 식탁 위의 펜던트 등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 펜던트 조명을 사용한다고 해서 좋은 빛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펜던트마다 어떠한 빛을 내느냐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빛에도 형태가 있다] 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든 펜던트 등은 각자 나름의 빛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펜턴드 조명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배광. [빛에도 형태가 있다]편 참조



식탁 위의 펜던트는 직접조명 또는 반직접조명처럼 아래쪽으로 많은 빛을 보내주는 타입의 배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음식에 가장 많은 빛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식탁을 둔 곳의 공간이 어둡다면 옆으로 또는 위로 일부의 빛을 함께 보내줄 수 있는 조명도 좋다. 따뜻하고 은은하게 옆으로 퍼지는 조명은 다름 아닌 함께 식사하는 가족의 얼굴을 아름답게 비춰주는 조명이기도 하다.



식탁 상판의 색이 밝다면, 테이블 위를 비추는 조명만으로 공간과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밝히는 반사판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는 보다 식탁의 빛을 강조하고 싶다면 갓 형태를 벗어나 원기둥 타입의 스포트라이트 타입의 펜던트를 사용하거나, 두 개 혹은 세 개의 조명이 함께 붙어있는 타입도 효과가 있다.



 만약 지금의 조명을 바꾸기가 어렵다면 식사할 때 주방과 거실의 조명을 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조금 더 음식과 식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오는 빛으로 인해 음식에 생기는 빛의 대비가 줄어드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만약 펜던트가 아니라 매입 등과 같은 천장 조명을 사용하고 싶다면, 식탁 위의 매입 등만큼은 조금 더 광량이 높고 집중 조명 타입의 조사각이 좁은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나의 완벽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식탁의 빛을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그에 맞는 조명기구를 결정한다면, 모처럼 비싼 돈을 들여 멋진 등기구를 샀는데 생각보다 어둡다거나 정성들여 만든 음식이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식욕을 돋구지 못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온 가족이 모여 마주 보며 함께 하는 식사시간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식탁의 조명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명의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빛이라는 사실이 새삼 다시 한번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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