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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Apr 26. 2020

여러분은  어떤 빛의 취향을 가지셨나요?

남향에 살 때 가장 외로웠다던 그녀



며칠 전, 인스타그램 한 연예인의 피드에서 눈에 띄는 글을 보게 되었다.






강변에서 살 때 참 외로웠었다. 비싼 월세를 내가며 그럴듯해 보이는 한강변의 아파트에 살 때 말이다. 오랜 로망과는 달리 아침마다 내리쬐는 정남향의 뜨거운 집이 불편하여 종일 암막 커튼에 의지해 지내야 했고 밤이 되면 반짝이는 한강 다리의 불빛이 긴 밤을 불안케 했다. 몇 해 전 이사를 하고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들어오는 서향집의 깊은 해가 내게 많은 영감과 그득한 안정을 주었다. 그렇게 지금의 집과 삶을 그리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여러분은 어떤 빛의 취향을 가지셨나요?

<출처 : 강민경 인스타그램>




글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평소 빛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나지만, 그녀의 진심어린 고백과 빛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빛의 취향"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꼈다.



글을 읽고 보니 밤 늦게까지 활동을 하고, 오전에 수면을 취해야 하는 사람들은 남향이나 동향의 집이 오히려 불편했다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오전에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침일찍부터 집안 깊숙히 들어오는 강한 햇살은 부담스러웠으리라.



이전에 올렸던 [동쪽 창 앞에는 무엇을 두는 것이 좋을까?]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남향'이 마치 정답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 남쪽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장 강하고 뜨거운 빛이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눈부심과 열기로 느껴질 수 있다. 태양의 빛은 자연광과 직사광으로 나뉘며, 각 방향에서 들어오는 빛은 시간에 따라 우리의 공간에 각기 다른 빛을 선사한다.




태양의 빛은 자연광과 직사광으로 나뉘며,
각 방향에서 들어오는 빛은 시간에 따라 우리의 공간에 각기 다른 빛을 선사한다.




인공조명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기의 예술가들, 특히 화가들은 북쪽창을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직사광은 들어오지 않고, 천공광만이 들어오는 북쪽의 창은, 하루동안 들어오는 빛의 변화가 가장 적다. 그래서 그림의 음영과 색을 가장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작업에 있어 가장 좋은 빛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북쪽의 창’은 한때 ‘예술가의 창’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생긴 나의 취향이 있다. 난 개인적으로 카페의 창가자리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북쪽의 창을 골라 앉는다. 카페에서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북쪽의 창이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연광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다른 방위의 창은 한두시간만 지나도 햇빛의 방향이 바뀌어 눈이 부시거나 등이 뜨거워 지는 등 불편함을 야기한다.



남향의 강한 직사광은 눈부심을 야기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른 빛의 변화가 크다.



과거의 화가들이 빛이 일정한 북향을 선호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예술가는 어떤 방향의 창문을 좋아할까. 인공조명이 발달한 현대에는 균일한 빛을 얻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실내에서는 밤에도 낮과 같은 활동들이 가능해졌다. 함께 일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낮시간이 주된 일과시간이겠지만, 스스로 작업을 하는 예술가의 경우에는 작업시간의 제약이 없다. 그 결과, 밤에 작업을 하고 늦은 오전까지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로 강민경님의 인스타그램의 글은 더욱 이해가 간다. 오전시간 빛이 많이 들어오는 동향과 남향은 늦은 밤까지 활동하고 오전에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그럼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오후의 빛이 더 소중하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해가 지는 서쪽하늘의 빛은 한낮의 주광에 비해 따뜻한 컬러의 낮은 색온도를 띤다. 이는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만지는 빛이며, 활동성보다는 차분함을 안기는 빛이다. 그녀는 밝은 빛을 피하기 위해 암막커튼을 치고, 밤새 반짝이는 한강의 조명에 불안함을 느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늦은 오후에 서향의 창문들이 실내로 들이는 따뜻한 빛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남들이 다 좋다던 남향의 한강뷰 조망보다 내가 가진 빛의 취향은 서쪽창의 따스한 빛이었음을 그녀는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어느 방향의 창문이 더 좋은가의 논쟁이 아니다. 그녀의 마지막 문장처럼, 우리 각자가 빛에 대해 각자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나의 경우, 하루 어느 시간보다도 오전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과거에는 밤에 작업이 잘 되던 올빼미 체질이었지만, 어느순간 바뀌어 이제는 일찍 일어나 홀로 맞이하는 고요한 이른 아침을 즐긴다. 따뜻한 차도 마시고, 하루를 계획하고 책도 읽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나의 하루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주요한 일들은 오전에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나에게는 동쪽창문이 가장 소중한 존재다. 저 멀리 낮은 곳에서부터 떠오르는 동쪽 햇빛이, 창문을 지나 식탁 위 유리찻잔을 비춰 빛날때면 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충만함과 평안함을 경험한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의 빛을 나는 사랑한다.



빛의 취향은 단지 동서남북 네가지에서 머물지 않는다. 창의 높이와 넓이, 창 밖의 풍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다루는 커텐과 블라인드에 이르기까지 빛의 요소는 다양한다. 빛에 대한 관심과 나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 삶을 필요한 빛에 대해 우리는 조금씩 더 알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강민경님과 함께 다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은 어떤 빛의 취향을 가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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