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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May 29. 2020

눈을 뜬 시각장애인은 행복할까?

'눈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 



만약 선천적인 장애로 태어나 단 한 번도 눈으로 세상을 본 적 없었던 사람이 성인이 된 후 어떠한 방법을 통해 빛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어두운 터널에서 나와 아름다운 세상을 마주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태어나 앞을 조금도 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눈을 통해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처음 뇌가 처음 받아들이면서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2차원이나 4차원을 볼 수 있는 어떤 감각이 새로 열린다면, 아마 그 정보는 어색하고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장면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본다는 것은 그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시점'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본다'라는 행위는 생각보다 특별할 감각이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차원을 마주한다면 그 형태는 기괴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확률이 높다. (출처 : 영화 인터스텔라)



예전에 어느 책에서, 선천적인 시각장애를 겪다 시각을 갖게 된 어느 할머니가 자신이 오랫동안 길러오던 고양이를 마주하자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글을 읽었다. 자신의 세상 속 고양이는 하나의 모습인데, 눈 앞의 고양이가 시시각각 형태가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움직이는 고양이 뿐 아니라 테이블 위의 컵마저도 방향과 눈의 높이에 따라 계속 모습이 바뀌었다. 대상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 위치에 따라  달리 인지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시각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에게 이는 충격적인 일이다.



만약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음식의 맛과 향기가 전혀 달라진다면?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어떤 소리가 전혀 들리고 또 들리지 않는다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어디서나 유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건 소리와 향기 등이 퍼져 나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은 다르다. 빛은 직진하며, 오로지 반사해 내 눈으로 들어온 빛만을 인지한다. 내 손안의 주사위는 여섯 개의 면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눈으로 한번에 세 개의 면 이상을 볼 수 없음을, 또한 대상의 위치나 내 눈의 위치에 따라 그 형태가 계속해 달라질 수 있음을 이해해야 비로소 시각으로 들어오는 빛이라는 정보를 세상을 인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어쩌면 시각장애인은 시각을 가진 사람보다 더욱 온전히 3차원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각’이라는 감각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제한된 정보를 통해 받아들이게 한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촉각은 완벽한 3차원은 세상을 인지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시점이 움직이면서 연속적으로 얻은 2차원 정보를 통해 다시 3차원으로 공간을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여태까지 이를 2차원으로 변환하는 과정 없이 촉각을 통해 3차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온 시각장애인은, 세상이 내 ‘눈의 위치’에 따라 그 형태가 마구 변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 눈을 뜬 성인이 시각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지고 있던 감각과 세상을 무너뜨려야 한다.  




처음 눈을 뜬 성인이 시각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지고 있던 감각과 세상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본다'라는 행위라는 건 대단히 개인적이며 상대적이라는 감각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환경과 공간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각자가 가진 눈의 위치, 시선, 빛의 방향, 시력, 빛에 대한 민감도, 시각정보를 인지하는 뇌의 활동 등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식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빛이 가지고 있는 '직진성'이라는 특성과, 사람의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가진 '시점'이 만들어낸 콜라보의 세상이다.



조명을 설계할 때 사용자의 행동에 따른 눈의 위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간을 밝힐 때 공간의 형태나 조명의 종류 뿐 아니라 사람의 시점이 어디에 있느냐가 우리가 그 공간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된다. 이 공간에서 사람이 서 있는지, 앉아있는지, 혹은 주로 어느 곳을 향해 시선을 두고 움직이는지 같은 것 말이다. 누워있는 공간과 앉아있는 공간은 전혀 다른 조명으로 계획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각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인식하는데 90% 이상의 정보를 시각에 의존한다. 그 시각은 곧 ‘빛’을 통해 인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빛조차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눈과 뇌와 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램프나 조명기구만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빛을 계획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계획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빛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챕터 '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한다. 빛과 함께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가 사는 공간과 삶에 좋은 빛을 만들 수 있는 단단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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