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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Jun 10. 2020

우리에게 컬러 조명이 필요할까

도시와 주거 조명의 컬러화에 대한 생각


때는 바야흐로 2000년대 후반, 청계천을 필두로 도시디자인과 함께 야간경관조명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기는 LED조명의 개발을 국가에서 지원하던 시기와 맞물려 많은 공공공간의 야외 조명들이 LED로 교체되던 시기였다. 한창 경관조명 설계를 하던 나는 당시 수많은 교량과 육교에 LED 조명을 설계했었다. 기존의 메탈할라이드 램프(고용량의 램프로 LED가 개발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경관조명과 가로등에 사용됨)에서 LED로 바뀌면서 꼭 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컬러 연출-단색 조명이 아닌 다양한 원색 컬러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램프의 발광 방식 시점부터 빛의 컬러가 결정되던 이전의 램프들과는 달리, LED는 태생적으로 삼원색(빨강, 초록, 파랑)을 합쳐 빛의 컬러를 만드는 광원이다. 그 때문에 다른 램프에 비해 컬러 연출이 훨씬 접근이 용이했다. 당시만 해도 LED램프는 다른 램프에 비해 가격이 매우 높은 조명이었기에, 비싼 LED 램프를 사용할 보다 필연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컬러 연출’이라는 점은 LED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강점이었다. 돈을 들여 LED를 선택한 기관과 기업은 돈을 썼다는 티를 확실히 내고 싶었고, 거기에 완벽히 부합된 기능이 컬러 연출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제작된 많은 교량과 육교는 밤만 되면 빨강 초록 파랑 등 화려한 컬러를 뿜어내게 되었다.




공공시설물의 총천연색 컬러 연출은 LED 조명 사용의 미덕(?)과 같이 되어버렸다...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컬러 LED조명의 대단한 장점이다. LED는 그러한 특성 덕분에 저전력 고효율의 빛을 만들기도 하지만 신호등, 사인,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사용되는 조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색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모든 색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LED 기술이 발전하고, 단가가 낮아지며, IOT를 적용해 조명 제어가 이전에 비해 훨씬 간편해지면서 이제 그 컬러 조명은 우리의 생활공간 안에서도 조금씩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테리어 조명 콘텐츠에서는 당신의 집을 다양한 컬러의 빛으로 연출해보라 우리를 설득한다. 시간이 지나 모든 조명에 컬러 연출이 가능해진다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다양한 색을 바꿔가며 빛을 사용하게 될까? 과연 우리 삶에는 컬러 조명이 필요할까? 




LED조명의 색 구현 가능성은 조명으로써 좋은 무기지만, 그 빛이 일반적인 우리의 삶에 지속적인 좋은 것이 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자연으로 먼저 돌아가 생각해보면, 빛이 총천연색으로 보이는 것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나마 가장 가깝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태양과 공기 중의 수증기와 관측자의 위치가 오묘하게 만나 발견되는 무지개다. 그 일반적이지 않은 오묘한 색과 쉽게 볼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무지개는 예로부터 노아의 무지개와 같이 특별함을 상징해왔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색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직접 만든 컬러 조명은 아마도 스테인드 글라스일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유리 가공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다 하나의 큰 유리판을 만들기 어려웠다. 그래서 작은 유리들을 이어 붙여 사용하였는데, 특히 높은 천장의 교회건물에 색 유리를 조합하여 그 자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문맹이 많던 당시에 성경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효과적인 도구였다. 이는 ‘빛’이라는 존재를 그대로 그림의 물감으로 사용한 그 시대 최고의 스크린이었을 것이다. 이 컬러 조명 역시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빛으로써 사용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다양한 색의 빛이 반대쪽 벽면에 비친 모습



현시대에도 컬러 조명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놀이공원의 다양한 컬러 조명들은 그 빛이 주는 분위기 만으로도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불꽃놀이의 색도 공간과 이벤트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좋은 요소다. 음악과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장과 각종 전시에도 컬러 조명이 사용된다.  잘 쓰인 컬러 조명은 별 다른 소품 없이도 공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며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노래방, 클럽 등의 유흥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우리의 예로부터 지금까지 원색의 조명은 ‘일상을 벗어난 특별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실제 우리의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과도한 컬러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어색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여행지의 건물이나 다리의 컬러 조명은 백번 양보한다 쳐도(사실 그 조차도 좋은 빛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 일상의 일부인 동네의 육교에도 빨주노초파남보의 컬러 조명이 사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화려한 팔레트로 해야 하는 것은 물감 자랑이 아니라 멋진 그림을 만드는 일이다. 이제는 공간과 상황에 필요한 컬러의 빛을 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화려한 팔레트로 해야 것은 물감 자랑이 아니라 멋진 그림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 삶에도 화려한 컬러의 빛이 필요한 때가 있다. 생일이나 파티와 같이 특별한 날을 위한 빛, 공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효과로써의 빛, 현실을 잠깐 벗어나 공간을 색다른 분위기로 만들고 싶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오히려 그 ‘특별한 빛’만을 강조할 때 컬러 조명의 실제 가능성을 제한적으로만 전달된다. 어쩌면 오히려 필요한 사람에게 까지 구매를 꺼리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품의 가격에 내가 사용하지 않을 ‘컬러 구현’의 부분이 들어갔다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의 공간에도 빛 컬러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주된 기준은 먼저 자연의 빛이어야 한다. 삶은 이벤트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 자연의 빛의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자연의 빛을 닮은 조명은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며, LED라는 조명은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다. 



주거의 공간에도 빛 컬러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주된 기준은 먼저 자연의 빛이어야 한다. 삶은 이벤트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LED조명이 단순히 컬러를 연출하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총천연색 조명이 우리 삶에 무분별하게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건 우선 자연을 따라가는 빛이다. ‘만들 수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해서’라는 이유로 먼저 빛이 선택되고 사용되기를 바란다. 자연스러운 빛 아래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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