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수민 라이트랩 Jul 20. 2020

조명에도 FADE IN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눈과 공간을 위한 빛



우리 집 거실에는 마샬의 블루투스 스피커가 사용되고 있다. 이 스피커의 특징은 상단에는 조작부에 있다. 앰프 제조사로 유명한 회사의 제품답게, 볼륨뿐 아니라 저음과 고음을 각각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기계들이 주로 사용하는 버튼이 아닌, 아날로그 앰프부터 사용되어 온 다이얼 스위치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 스피커의 이 점을 가장 좋아한다.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지만, 이 아날로그 다이얼은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스피커 상단의 다이얼. 이는 미세하게 볼륨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




첫 번째로 직관적이다. 예전부터 다양한 제품에 쓰여왔기 때문에 그 역할과 의미를 별도의 설명서 없이도 파악할 수 있으며, 현재의 볼륨 상태를 별도의 모니터 없이 다이얼의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현재 세팅되어 있는 볼륨의 상태, 저음과 고음의 세팅값을 전원을 넣기 전에도 파악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세밀한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버튼식 디지털 음량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볼륨 9는 작고 10은 커서 9.5로 세팅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버튼을 누르는 횟수의 부담이 없기 때문에, 아날로그 다이얼을 쓰는 볼륨 시스템은 간격을 훨씬 잘게 쪼개는 것이 가능하며, 이는 미세한 볼륨 조절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번째 장점이 있다. 바로 원하는 대로 천천히 볼륨을 키우면서 스피커를 켜고 줄이면서 끌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수동이긴 하지만 페이드인(Fade in, 서서히 켜짐), 페이드아웃(Fade out, 서서히 꺼짐)을 물리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아날로그 다이얼이 주는 큰 장점이다. 하필 시끄러운 부분에서 왁! 하고 켜지는 스피커의 소리가 불쾌감을 주는 것을 피하고 싶을 뿐 아니라, 페이드인/아웃이 내는 음향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은 단지 소리나 영상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빛의 영역에서도 이렇게 서서히 켜지고 또 서서히 꺼지는 기능은 매우 필요하며, 또 중요하다. 모든 것이 0과 1로 표기되는 디지털 시대의 우리이기 때문일까, 팟! 하며 켜지고 팟! 하고 꺼지는 조명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하지만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연의 빛은 그렇게 디지털 신호처럼 거칠게 켜지고 꺼지는 일이 없다.



태양빛은 어마어마한 광량을 가지고 온 대지를 비춘다. 하지만 그 빛을 내는 데에는 일출로부터 서서히 고도가 올라가면서 지면에 닿는 광량이 늘어난다. 빛이 사라질 때도 마찬가지로 노을과 함께 서서히 저무는 모습을 보인다. 태양처럼 밝은 빛이 한 번에 켜지고 꺼진다면 아마 그 순간에 지구는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터널과 같은 공간을 지날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 태양빛을 보다 빠른 속도로 접하게 된다. 터널 조명에서는 이로 인한 빛의 적응을 돕기 위해 입구와 출구 쪽에는 내부보다 많은 수의 조명을 두어 서서히 밝아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태양빛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빛은 어두운 데서 밝아지기까지의 시간을 갖는다. 아주 작은 성냥불이나 장작불, 촛불에 불을 붙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길이가 촛불에 비해 매우 짧아졌지만 할로겐램프나 백열전구와 같이 열을 이용해 빛을 내는 램프 역시 밝아지는 단계와 과정이 존재한다. 광원 자체적으로 서서히 켜지는 '페이드인'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펜트하우스. 영화에서 고급주택을 강조할 땐 스르륵 켜지는 장면을 꼭 보여준다. 




빛의 페이드인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영화 속 펜트하우스의 조명이 센서를 통해 스르륵 하고 켜지는 장면이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문을 닫았을 때 대시보드와 간접조명이 서서히 켜지는 장면은 공간의 고급스러움을 배가시킨다. 가구의 형태나 재료의 고급스러움이 주는 형태적 고급스러움과는 다른 공간과 장면의 고급스러움이다. 



하지만 고급스러움만이 페이드인 조명의 유일한 필요 이유는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 능력이다. 눈은 홍채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한다. 우리가 강한 태양빛 아래서도, 어두운 침실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눈의 빛 조절 기능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주변 환경의 빛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두운 공간에서 밝은 공간으로 변화할 때 우리의 시각이 적응하는 것을 명순응, 밝음에서 어두움에 적응하는 것을 암순응이라고 한다. 대체적으로 명순응이 암순응에 비해 빠른 적응속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 명순응에도 절대적인 '시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고급스러움만이 페이드인 조명의 유일한 필요 이유는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 능력이다. 




열을 내는 램프에서 LED로 광원이 발전하면서 사실상 조명은 스위치의 신호와 동시에 켜지고 꺼지게 되었다. 이는 신호등이나 디스플레이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요하는 빛의 사용처에는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하지만 사람이 머무는 공간의 빛을 켜고 끄는 과정에는 불편함을 초래하는 요소가 된다.



어두운 밤중에 침실을 나와 화장실의 불을 켤 때 생기는 불쾌감이 있다. 오랫동안 어두움에 익숙해진 눈이 갑자기 밝은 화장실의 주광색 LED의 점등에 노출되면 갑자기 많은 양의 빛이 동공 속으로 들어오면서 눈부심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눈부심은 불쾌감을 일으키며 심한 경우 통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밤중 화장실을 갈 때는 어두움을 감내하고 불을 켜지 않고 볼일을 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어두운 밤 가차 없이 들어오는 화장실 조명은 시각적 불쾌감을 넘어 약한 통증마저 느껴진다.



LED 조명이 발전해감에 따라 디밍(Dimming-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기능)과 함께 페이드인 기능도 조금씩 적용되고 있다. 이는 광원 자체의 특성이 아니다 보니 회로를 통해 램프에 그 기능 자체를 주입하는 방식을 거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추가되더라도 이는 보다 나은 우리의 빛환경과 눈의 건강을 위해 추구되어야 하는 요소다.



이제 공간의 조명에도 페이드인이 필요하다. 그것은 고급스러움을 넘어 우리의 편안한 빛환경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 페이드인의 조명은 사람의 눈이 빛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동일한 밝기의 조명이라도 이 페이드인의 과정을 거치면 훨씬 눈에 편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연출의 특성까지 더해져 보다 나은 빛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침대 머리맡 스탠드와 같이 어두운 상황에서 자주 켜고 끄는 조명에서부터 페이드인의 빛을 즐겨보자. 불편했던 조명의 정등이, 자꾸만 켜보고 싶게 되는 즐거운 행위로 바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게 컬러 조명이 필요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