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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Feb 02. 2022

반드시 누굴 평가해야 하는 자리 앞에서

ep93. 카더가든 - 나무


이 글은 직장 내 인사총무직을 맡으며, 처음 면접관의 자리로 지원자를 마주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총무 쪽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면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직 후 처음 면접관 자격으로 면접장에 들어설 기회가 생겼다.


항상 맞은편에만 앉아있던 내가, 질문도 하고 그 사람을 파악하는 일은 꽤나 흥미로울 줄 알았다. (누군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은 즐거웠기에) 하지만 반대로 대단히 괴로웠다. 면접자들의 간절함을 정량적 순위로 매기고, 평가하는 일. 누군가를 뽑고 또 떨어뜨리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경험도 모자랐고, 그래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움이 컸다. 그럼에도 냉정한 입장으로 단지 회사의 입장에서, 관리자의 입장에서 판단했고 보고를 드렸다. 그것으로 내 역할과 수행 업무는 끝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면접공간에서 마주해, 짙게 남은 여운은 나의 공간인 이곳에 남기고 싶었다. 채용 결과나 직군은 모두 가려둔 채, 오롯이 느꼈던 감정을 쓰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초짜 면접관이 느꼈던 감정과 이야기, 오늘 글은 한 40대 어머니 지원자에 대한 이야기다.


40대의 중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 지원자가 들어섰다. 지원서를 보니 대학을 나오지 못하셨고 육아보육, 콜센터 등 이런저런 일들을 하시다 4년 전부터 대리운전을 하셨다고 했다. 긴장하셨는지 얼어있는 표정과 딱딱한 어투로 특징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으셨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덤덤함 속 강인함이 담긴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전 직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냐는 질문에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며, 불평해봐야 내가 힘들어 빨리 잊고 생각을 떨친다고 담담히 말씀하셨다. 퇴근하는 그 순간 모든 걸 까먹으려 노력한다는 답변도 이어졌다.


나아가, 모든 것에 순응하고 맞출 수 있다는 다짐들이 이어졌다. 급여만 정확히 나오는 정규직이라면, 어떤 일이든 불평 가질 필요 없이 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그 답변. 면접이라는 공간이기에 마음에 없는 말 일 수도 있겠지만, 답변을 하는 눈동자와 담백하면서 무미건조한 말투는 꽤나 인상적이셨다. 여러 전투를 겪은 전사의 모습이 있다면 이와 같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스쳤다.


이어, 면접관 입장에서 자식의 보육을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자녀에게 중요한 학창 시절인데 신경 쓰실 일이 많지 않으시냐고 여쭸다. 업무에서 전혀 걸림돌이 아니라는 식으로, 역시나 담담하게 뱉으셨다. 다 컸고 보육시설이 잘 돼 있어 문제없다는 말씀. 그 모습에서 측은함이 아닌, 강인함을 느꼈다. 생존을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그 절실함, 누구보다도 그 자녀를 위해 일을 하시는 것임에도 자녀로 인해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면접장을 나가셨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몇 배는 치열하게, 또 간절하게 삶을 살아가고 계시지만 내세우기보다 속으로 삼키고 사회로 내던져질 각오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실로 처음 마주한 것 같았다. 나는 살면서 그래 본 적이 없다. 입에 발린 소리라도 내 자신을 모두 포기하고 전부를 던지겠다고 말해본 적, 아니 생각해본 적 없었다. 참 편하고 풍족한 환경에 살고 있음을 쉽게 간과하고 있었다.

 


https://youtu.be/cHkDZ1ekB9U


그대 춤을 추는 나무 같아요.

그 안에 투박한 음악은 나에요.

내 곁에만 움츠린 두려움들도

애틋한 그림이 되겠죠, 그럼 돼요.


카더가든 - 나무




삶에 대해 안주하고, 무료하게 대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였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이것저것 재면서 얼마나 많이 이미 포기하고 앉아서 평가만 했을까.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분들 앞에 그저 반성과 경외 외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책임지는 것이 얼마 없다고, 내 위주로 편하게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짙어진 하루였다. 면접장에선 아무런 응원의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눈빛으로 또 고개의 끄덕임으로 살아오신 삶에 경외를 표현했다.


나아가 가끔 무표정이야말로 가장 담백하고, 모든 걸 대변하는 표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전 직장에서의 팀장님은 좋지 않은 고과로 팀원으로 강등되신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바로 퇴사하지 않고, 다음 직장을 구하기까지 두 달 가량 더 재직하시다 퇴사를 하셨다. 온갖 수모와 수근거림을 버텨낸 그 때의 팀장님 표정 역시 무표정이었다. 무표정 속 강인함은 가장과 가족의 무게일까.


면접날,  분의 무표정은 내게 다시금 살아갈 이유를  어느 표정보다도 적극적으로 알려준 모습이었다. 우연히도 글을 발행한 오늘은 설날의 마지막 연휴였다. 정말로 새해의  날을 알리는 설날 앞에서 초보 면접관에게 종을 울려준 40 어머님에게 감사드리며,  분을 비롯한 모든 지원자에게 행복한 일들이 가득 깃들기를.




2기에 이어 3기에도 합류하게 된 민민입니다. 작년과 다소 달라진 멤버들과 또다시 수플레를 동행하게 돼 영광이네요. 생각해보면 어쩔땐 순서 돌아오는 것이 작은 스트레스였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6주는 빨리 돌아오더라구요 ^^; 하지만 그렇게라도 약속된 순서가 다가와, 생각을 가다듬고 긴 호흡으로 글을 써내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은 분명 성장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쓰지 못했을 글과 스쳐지나갈 생각들을 많이 잡고, 적어냈습니다. 이번 한 해도 그런 과정을 이어갑니다. 부족하지만 또 어여쁜 마음으로 다섯 작가들 지켜봐주세요 :)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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