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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24. 2015

40,50대_신(新) 고려장

고령 사회의 자화상


얼마 전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왔다. 노쇠한 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아니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지내는 게 더 편안할 것이며, 노인들이 요양원에 가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후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이 더 편안할 것이란 생각은 할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였단 걸 말이다. 


할머니 손은 퉁퉁 부어있었다.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해 주삿바늘을 열댓 번이나 찔렀기 때문이다. 할머니 머리카락도 짧게 잘려 있었다. 길면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많은 음식물을 먹여서도 안 된다. 많이 먹이면 대소변을 자주 보게 되고, 그러면 그만큼 관리자들이 그것들을 더 빈번하게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손발을 묶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지 않으면 소란을 피워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당장 짐을 쌌다. 그런 환경에 할머니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퇴원 수속을 밟았다. 잔금을 치르고 보호자란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할머니를 뒷자리에 모신 후 그 길로 나는 관리자를 찾았다. 그리곤 관리자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당신 부모 같으면 그렇게 막 대하겠어?” 요양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업무를 보고 있던 관리자도 깜짝 놀라며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렇게 한바탕 한 후 요양원을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상상만 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도 할머니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며 난색을 보였다. 나를 비롯해 가족들은 할머니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대신 욕을 했다. 관리자들에게 “자기들 부모 같으면 그렇게 하겠느냐”며 말이다. 물론 관리자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할머니에게  해코지할까 봐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이다. 그리곤 할머니를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렇게  또다시 텔레비전을 틀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가족들을 기다린다. 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그 속에 나오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밖에는 눈이 온다.  또다시 고독의 밤이 찾아온다.


‘어머님 마음’의 가사 그대로 어버이의 사랑은 끝이 없다. 대가를 바라는 것도, 누구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바쁜 도시 생활과 생활고를 내세워 외면 아닌 외면을 하고 있다. 어쩌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노인들에게 아픔과 가난보다 참기 힘든 것이 자식들이 외면한다는 사실과 외로움, 고독이다. 


고령화 시대. 병들고 노쇠한 노인들이 요양원에 버려지고 있다. 처음엔 한 달에 서너 번씩 찾지만 점점 발길을 끊는 자식들. 그런 자식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결국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 노인들. 그렇게 요양원에서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를 모시기 싫어하는 자식들과 국가 보조금을 받기 위해 한 명의 노인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요양시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요양원이 ‘신(新) 고려장’이 되고 있다. 경기도 노인 복지 상담실에서 경기지역 60세 이상 노인 437명을 대상으로 '자살 심리검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3.8%인 104명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빈도에 대해서는 '가끔'이란 응답이 69명(15.8%), '보통'이 10명(2.3%)이었으나 '자주'(3.9%)나 '매우 자주'(1.8%)라고 답한 노인도 25명(5.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의 11.2%는 '누군가에게 자살하고 싶다고 말한 경험이 있다'라고 응답,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위기 대상자'로 분류됐다. 무엇이 노인들을 벼랑 끝에 몰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고 2026년에는 노인 인구는 20%로 초 고령 사회에 도달할 전망이다. 고령사회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부양부담이 늘어가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는 빠르게 성장해왔다. 인구의 급성장 한강의 기적 등 경제발전의 속도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에 맞는 사회 윤리의 발전은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였다. 생활상이 서구적으로 바뀌면서 전통윤리와 새로운 서구식 윤리 간의 갈등, 그 속에서 노인 문제는 하나의 이슈로 자리 잡았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부계적 요소와 모계적 요소가 혼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부장적 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교사상이 국민의식 속에 깊이 침투되었던 조선 중기 이후에는 부계적 요소가 강화되고 가장의 권위가 고조되었으며 아버지는 재산의 책임자인 동시에 가정의 모든 사항에 대하여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 존재였으며 자녀는 부모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였다. 이는 부모가 절대적 권한을 가졌다는 전통적 권위 때문만은 아니며 부모의 도움이나 지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전통적 농경사회에 있어서는 전통사회를 유지하는 데에는 노인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고 노인에 대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존경심은 당연한 사회적 규범이었다. 존경의 대상이 된 노인들은 자녀들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노후생활     이 보장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효를 어기는 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회가 용납하지 않았다. 국가도 통치적 차원에서 노인공경을 중요시하였고 노인을 위한 각종 행사를 하여 경로 효친사상을 고취하였다. 지역별로 경로당을 건설하여 노인 편익을 도모하였고 음식과 선물을 제공하고 위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과 도시화는 인적, 물적 자원의 대이동을 가져왔고 직업구조가 다   양화되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핵가족제도로의 변화를 수반하였으며 노인 공경의 가치관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농 현상에 따라 젊은이들이 도시로 집중되었고 교육이나 직업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경향이 많아지게 되었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자녀들은 부모에게 무관심해지기 쉬우며 경로사상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급변하는 정보시대에 노인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적응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노인들의 경험은 현대의 과학기술사회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가치관의 충돌로 가정불화가 많아지게 되었다. 자유주의적 현대 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부모의 유교 주의적 통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였으며 자녀의 개인주의적  편의주의적 사고는 노인들을 양로원이나 거리로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가정에서의 경제권이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이전됨에 따라 가정에서 실질적 부모 권위가 상실되고, 노인을 모신다는 것은 많은 노동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고 자유로운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에 자녀들은 노인 모시기를 기피하게 된다. 효에 대한 가치관이 약화되고 노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고생으로 생각하는 현대 젊은이들로부터 노인문제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였던 노인들에게 혼자 남겨졌을 때의 박탈감은 상대적으로 크게 다가온다.


모큐드라마 <싸인, 신 고려장 버스터미널에 버려진 부부>


  누구나 늙으면 노인이 된다. 지금의 노인 문제는 바로 나의 부모의 문제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노인문제가 개인차원이나 가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노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 그리고 노인으로 인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사회’라는 큰 목적을 가지고 노인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단지 노인의 경제적 필요만을 채워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노인들이  행복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하면, 무엇보다 노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우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어야만 한다.


                                                                                                                                       by 유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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