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방법 1
장미꽃을 준다.
마주 시선을 맞춘다.
빈 자리에 쪽지를 붙여놓는다.
러브레터를 쓴다.
꾸깃꾸깃.
종이를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모두가 변변찮다.
어디 정말 뾰족하고 확실한 완벽한 방법이 없을까.
그녀는 매일 공부를 하기위해 이곳 독서실에 온다.
독서실 관리 아르바이트 반 년째.
난 고작 주말만 일을 하지만
그녀도 항상 주말에 공부를 하러 오는것은 그저 우연일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백의 방법들을 적었다.
또 무엇이 있을까.
그런데 마침 창구 앞에 그녀가 보였다.
자기 스탠드에 불이 켜지지 않는단다.
‘불이요?’
‘네’
의자를 당겨 일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상하다.
어째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몸이 점점 무거워질 뿐이다.
다리가 왜 이러지.
허벅지에 힘을 주어 보았다.
다리에는 별 문제가 없다.
이어 발목과 발바닥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곳도 마찬가지다.
내 다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일어서는 방법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어떻게 해야 두발로 걸을수가 있는거지.
마치 내 머릿속에서는
두발로 걷는 부분의 내용만 안개에 가려진 듯 기억나지가 않았다.
이럴수도 있나.
난 평소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이렇게 한가지 기억을 왕창 까먹는 일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그녀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서둘러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녀가 나를 내려본다.
할 말을 생각했다.
뭐라고 해야하지.
그때 마침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이 보인다.
대입 면접에 관한 책.
나는 그녀가 고등학교 졸업반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아저씨 다리 아프세요?’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지금 대학 논문을 준비중이에요.
거기서 제가 인간의 직립보행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거든요‘
‘네?’
‘그래서 네발로 걷는 방법을 실험중이에요
원시인들이 어떻게 걸었는가를 직접 체험해보는거죠’
큰일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버렸다.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네 그런데 아저씨 제 자리 불이 안 들어와요’
다행히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
‘맞다 지금 가죠’
난 그녀를 따라 엉금엉금 독서실 통로를 기어갔다.
도착해보니 그녀 자리에만 전원이 꼽혀있지 않다.
나는 간단히 플러그를 꼽고
다시 방을 기어나온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직까진 발견한 사람이 없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이윽고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난거지.
병에 걸렸나.
혹시 무슨 저주라도.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짚고 돌아다닌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침착히 하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 심각히 고민했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책.
인류의 직립보행에 대한 백과사전.
얼마전 그 책을 가볍게 훑어본 것이 생각난다.
그 책을 보면 서는 방법이 나와있지 않을까.
난 다시 엉금엉금 기어 열람실 휴게실로 갔다.
그리고 휴식하는 학생들을 위한 책 코너를 찾았다.
얇은 백과사전 하나를 뽑는다.
‘두발로 걷는 인류’
책을 넘겨 그림들을 본다.
그러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현 인류의 먼 조상이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맞다.
이렇게 하는거였지.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그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진다.
몇 번을 다시 확인해봐도
책에서 눈을 돌리면 내용을 잊어버린다.
그대로 보고 따라해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보고 일어서는 순간 머리가 다시 깜깜해진다.
난 결국 책 보는 것을 포기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던가.
막상 난 두발로 걷지 못한다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해도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황당해서 웃음이 난다.
자리에 앉아 미리 싸온 도시락을 꺼냈다.
그리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있으려니
내가 하루종일 독서실에 앉아있기만 했었다는게 떠올랐다.
그러자 새로운 생각이 든다.
혹시 하루종일 앉아있기만 해서 서 있는 방법을 까먹은건가?
난 현재로서는 이것이 가장 타당한 이유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모든게 확실해질 때까지는 우선 기다려보기로.
시간이 흐르고 저녁이 됐다.
그녀가 열람실을 나선다.
나는 사장님에게 연락해
오늘은 열람실에서 하루 자고 가겠다고 말했다.
장기간 일을 해 사장님과 친해진 덕분에
사정이 있거나 피곤할때면
그냥 열람실에서 자고 갈 때도 있었던 탓이다.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그리고 일어서는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일어서는 방법을 제외한 모든 방법만이 떠돌아다닌다.
난 이윽고 독서실 불을 소등후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날이 밝는다.
고백의 방법 2
‘저기요’
‘우 눈부셔’
사무실 밖에 그녀가 있다.
12시.
벌써 열람실 오픈 시간이 두 시간이나 지났다.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리곤 두발로 기어 사무실 문을 열려고 했는데
갑자기 팔이 말을 듣지 않으면서 그대로 엎어져버렸다.
어 또 왜 이러지.
두 팔을 벌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팔에 힘을 주자
다시 두 팔이 양 옆으로 벌어지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다.
‘저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잠깐만요’
괜찮기는.
맙소사 이게 뭔 일이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팔로 땅 짚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두발로 걷는 방법에 이어
네발로 걷는 방법마저 까먹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죄송해요. 방금 도착했는데 문이 열려 있어서요’
나는 어제 하도 정신이 없어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걸 기억했다.
‘그랬군요. 그런데 지금 제가 뭘 흘려서요 자리로 가 있으세요 전원 켜드릴게요‘
‘네’
그녀는 사무실 안을 한참 쳐다보더니 사라졌다.
이게 무슨 창피야.
어제부터 왜 이러는 거지.
두 다리도 부족해서
이젠 네발로 기는 방법도 까먹어 버렸나.
이대로라면 엎드려 기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그녀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죄송한데요 문이 잠겼어요’
맞다 열람실 문을 어제 잠가놓았다.
하지만 어떡하지 이 상태로는 밖으로 나갈수가 없는데.
나는 문 앞에 엎드려 정신없이 고민을 하다
손을 길게 뻗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학생 날씨가 좋죠’
‘네’
그녀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사장님이 독서실 청소를 해 놓으라고 해서요.
걸레도 없고 해서 이렇게 하고 있었답니다‘
난 옷을 바닥에 비벼 바닥을 닦는 시늉을 했다.
식은땀이 난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하지만 난 그녀의 시선을 뒤로하고
탁자위에 있던 열쇠를 집어
두 팔꿈치로 열심히 바닥을 짚으며
그녀가 공부하는 열람실 문에 도착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학생’
그리고 다시 정신없이 기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문을 닫는다.
헉. 헉.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 앞에서
벌써 두 번이나 괴상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녀와는 말도 제대로 섞어본적이 없는데
대체 이게 무슨 망신인가.
난 집에 전화를 걸다가 곧 끊었다.
서 있지도 못하고
네 발로도 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믿을수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은 연락을 하면 안될것 같다.
세상에 이런일이 같은곳에 의뢰를 해볼까.
혹시 며칠사이에 내 머리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난 쉴새없이 생각을 하며
독서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그 동안 두발로 걷는 인류라는 책을 모두 읽었다.
열등감이 느껴졌다.
만약 인류가 진화를 하지 않고
퇴보할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봤을 때
나는 거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 아닐까.
온몸으로 기는 인류. 라던지.
아니야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다.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어.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책에는 이족보행이 인류가 동물과 비교되는
가장 커다란 특징중 하나라는 설명이 나왔다.
얼마후 저녁이 되어 그녀가 열람실을 나섰다.
그녀는 언제나 독서실의 가장 마지막 손님이다.
난 힘겹게 기어 정문을 닫았지만
혹시 모를 내일을 위해 문은 잠그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과 사장님에게 연락해
하루만 더 독서실에서 자고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걱정은 하셨지만 대학 레포트를 작성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사무실에 앉아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노트를 폈다.
그리고 얼마전 적어놓았던
그녀에게 고백하는 방법들의 옆 페이지에
현재의 문제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난 현재 하루에 하나씩 걷는 방법을 까먹고 있다.
첫 날, 두 발로 서는 방법을 잊었다.
둘째 날, 두 팔과 무릎으로 걷는 방법을 잊었다.
그리고 셋째날 최악의 경우
난 지금 움직일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까먹게 될 것이다.
즉 두 팔로 기어가는 방법마저 까먹게 된다는 이야기다.
황당한 생각이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난 원인을 따져봤다.
그러니 내가 두발로 서는 방법을 까먹은 이유는
역시나 어제 생각했던
독서실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냈다.
그렇다면 둘째 날은
아마도 내가 누워서 잠에 들었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네 발로 걷는 방법도 까먹게 된것일테다.
이런 상황을 놓고 봤을때
그럼 내가 오늘도 누워서 자게되면
내가 알고있는 마지막 방법 또한 잊어먹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방심하면 안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난 하다못해 지렁이만도 못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달이 떴다.
자리에 엎드려 두 팔을 땅바닥에 짚었다.
꼭 늑대같은 모습이다.
좋다 이 자세로 그대로 자면 된다.
이 자세로 자면 내일은 이 자세만큼은 기억할수 있다.
하지만 한 시간쯤 지나자 허리와 팔이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잠시 쉬기 위해 몸을 뒤로 돌렸는데
다시 눈을 뜨니
어느새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고백의 방법 3
‘아저씨’
‘우 눈 부셔’
또 12시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바닥에 발랑 누워 그녀를 맞이했다.
‘자 잠시만요’
서둘러 눈꼽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어?
내 모습을 확인한다.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다.
그런데 이 자세에서 몸을 앞으로 엎드리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저씨 어디 아프세요’
‘아니요 아프지 않습니다’
나는 누운 채로 팔을 위로 힘껏 뻗었다.
그리고 허리를 꺽어
몸으로 아치모양을 만든후
하늘을 바라본 채 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잠시후 배에 힘을 주어 다리를 들어올린다.
발바닥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학생 오늘도 날씨가 참 좋죠’
그녀가 거꾸로 보인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걸까.
‘자다가 막 일어났거든요’
그녀가 아무대답도 하지 않는다.
식은땀이 난다.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제가 요즘말이죠 어 개그맨 시험을 준비중이에요.
거기서 뒤로 기어가는 사람이라는 콩트를 만들었거든요‘
‘대학생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죠. 근데 사실 어릴때부터 꿈이 개그맨이였어요.
그래서 진짜 진로는 이쪽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얼마후면 대회랍니다‘
‘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자기 열람실로 걸어갔다.
내가 소리쳤다.
‘학생 오해하지 말아요. 나 진짜 개그맨 시험 준비중이에요’
‘네’
그녀 얼굴이 굳어져있다.
‘진짜라니까 믿어줘요’
‘네’
그녀가 방문을 쾅 닫았다.
난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 재빨리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팔 만으로 힘을 주어 의자에 힘겹게 앉는다.
으악.
왜 이렇게 꼬이지.
대단치도 않은 인생.
그래도 주말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차근차근 열심히 노력하는 중인데
이런 일이 왜 생기는 거야.
눈물이 찔끔 났다.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가엾게 느껴진다.
이제 나는 일어설 수 없다.
더군다나 엎드릴수도 없다.
기지도 못한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게 뭐지
난 이제 끝이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그녀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저 가요’
어?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찍가요’
‘네 오늘이 마지막이거든요 저 이제 대학교 들어가요’
맞다 그랬지.
몇 달전 그녀가 이야기했었다.
이제 얼마후면 자신은 대학입학 준비 때문에
독서실에 나오지 못한다고 말이다.
‘맙소사 저기 잠깐만요’
‘괜찮아요 나오지 않으셔도 되요 아저씨 개그맨 시험 꼭 붙으세요’
개그맨 시험이라니
아까 내 말을 믿었나.
분명 얼굴이 굳어보였는데.
혹시 독서실을 그만 나오는게 미안해서 그랬나.
거기까지 생각하자
난 그녀를 그냥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여야 된다.
어떻게든 해야돼.
제발.
영차.
탁!
엄마야.
그녀가 뒷걸음질친다.
어느새 내가 그녀의 눈 앞에 서 있다.
사무실의 얇은 유리창을 두고
나와 그녀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을 이렇게나 쳐다본 적은 없었는데
역시나 맑고 따뜻한 눈이다.
점프를 뛰었다.
태어나 브레이크 댄스는 커녕 제대로 된 춤도 춰본적이 없지만
난 누워 있는 채로 몸을 튕겨 두 발로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기억난다.
맞다.
바로 이렇게 서는 거였지.
양 발로 균형을 잡고
눈은 정면에 두고
팔은 세게 움직이지 않고
그 다음 엄지 발가락과 발 뒤꿈치를 움직여 앞 뒤로 넘어가지 않게 한다.
처음 걷는 방법을 배우던 어릴때가 생각난다.
대뜸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얼떨결에 그녀가 악수를 받는다.
‘헤어지는게 아쉬워서요.
가기전에 커피라도 한잔 하시겠어요’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휴게실 자판기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며칠전 고민하던
그녀에게 할수있는 고백의 방법이 번쩍 떠올랐다.
고백의 방법 첫 번째
그것은 바로 상대방에게 말 걸기이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고백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방법을 두고
엉뚱한 것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족보행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걸음법마저 까먹게 되버린 것이다.
좋아 기본부터 하자.
고백하는 방법의 가장 첫 번째는 말 걸기이다.
그리고 말을 걸고나면
그 이후부터 인류의 진화가 이루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