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의 방법 이후
늑대
손톱이 너무 길다.
이걸 짤라야 하나.
‘야 이 양반아 손톱이 그게 뭐여’
옆 건물 최씨가 내 손톱을 봤다.
어째 벌이가 시원찮은 모양이다.
‘많이 쳐줘’
‘요걸 가져와놓고 많이 쳐달라니’
긴 손톱을 이용해 박스 테이프를 하나씩 뜯는다.
‘그래서 손톱을 기르는구만’
‘이거 없으면 안되지’
박스를 펴 고물상 구석에 쌓아놓는다.
‘여기’
‘더 줘’
‘본전도 안되’
최씨는 손에 침을 발라 천원짜리를 한 장씩 넘겼다.
그리고 잠시후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을 낑낑 걸어나간다.
덜컹거리는 수레.
이젠 낡을대로 낡어 삐걱거리는 수레를 보고 있으니
내 마음 한 켠도 짠해진다.
고물상이 망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늙어버린 건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고물만큼
할 일없는 노인네의 시간은 늘어만갔다.
컨테이너로 들어가 시계를 확인한다.
이제 슬슬 고물을 회수해야할 시간이다.
늑대 2
아직 트럭 스피커 소리는 쓸만했다.
고장난 컴퓨터나 냉장고를 받는다는 스피커 녹음소리.
난 당시 돈을 제법주고
고물상 트럭의 테이프를 녹음했다.
이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 목소리만 나는 여성과의 격차를 별로 느끼지 않았지만
요즘은 어쩐지 낯부끄럽다.
이제 내 나이도 환갑을 지나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런 목소리를 내고 다녀도 되는것일까.
‘할아버지 고장난 것도 받으세요?’
새댁이 다가왔다.
‘물론이죠’
‘잠시만요’
새댁이 사라진다.
백미러를 통해 그녀 뒷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그 앞에 내 얼굴이 있다.
참 늙기도 늙었다.
마음은 아직도 젊디젊은 청춘인데.
‘할아버지 여기요’
‘이 정도면 괜찮지요’
나는 물건을 확인하고 돈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았다.
가끔씩 저런 사람들이 있다.
돈이 많아 그러는건지
심성이 고운 것인지
자신들의 비싼 고물을 내어주고도 돈 한푼을 사양한다.
만져보니 작동이 멈추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런 사람들이 많아진다.
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차를 고물상에 세웠다.
그리고 컨테이너 문을 열어 휴식을 취하려는데
고물상 구석에 냉장고 하나가 눈에 띈다.
‘저게 뭐여’
안경을 꺼내 쓰고 그 냉장고를 확인했다.
‘누가 이런짓을’
냉장고 정면에 커다란 흠집이 있다.
손을 대어본다.
꼭 손톱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 같은데
사람의 손톱자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한참 문질러 보아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난 결국 포기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대장에 있는 냉장고 항목을 찾아 작게 엑스 표시를 했다.
저렇게 흠집이 크게 난 냉장고는 이제 어디에도 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망가진 고물들도
그럭저럭 손질해 사주는곳도 있었지만
요즘은 좀체 그렇지가 않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단 뜻이다.
손톱을 본다.
그러니 반들거리는 모양새가 늙은이의 것 같지가 않다.
히죽 웃음이 났다.
사실 최씨의 말은 틀린 말이다.
내가 이 손톱은 기르고 있는 진짜 이유는
이것이 늙고 있다는 현실을 잊게해주는 유일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자라는 것이 손톱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지고 강해지는 건 오로지 손톱뿐이기에
난 늙어가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손톱을 기르고 있다.
그런데 마침 사무실 문이 거칠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늑대 3
‘아저씨!’
‘누구요’
험상궂게 생긴 두 명의 건달이 서 있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 이거 불법인거 몰라요 아저씨’
‘불법이라니?’
‘이거 다 불법이라고요 이 고물들 다 어디서 났어요‘
‘나 참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소리요 썩 나가쇼’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이젠 이런 고물들 막 수집하시면 안됩니다 아저씨‘
‘뭐야 이 사람들아 내가 여기서 고물상을 한지가
몇 십년이 됐는데 그런 헛소리를 해 당장 안 나가’
내가 호통을 치자 두 명의 건달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문을 나가다말고 근처에 있던 티비를 뒷발로 쳐서 깨뜨린다.
‘에구 이걸 어째’
‘이놈들이!’
‘죄송합니다 아저씨 실수에요 실수 아무튼 이거 불법입니다
알아들으셨을줄로 알고 그만 물러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명함 한 장을 던진다.
나는 허리를 굽혀 명함을 줏었다.
‘무엇이든 해결해드립니다’
사채업자들인가.
난 화가 났지만
건달들과 싸워봐야 이득 볼 것이 없기 때문에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그들이 고물상에 찾아와 행패를 놓는다.
‘할아버지 계시죠. 오늘도 죄송하게 됐습니다’
내가 목소리를 듣고 잽싸게 뛰어나가자
어제 하룻동안 힘들게 수거해온 컴퓨터가 다 부서져 있었다.
대뜸 그들을 쫓았다.
그런데 그들이 향하는 곳이
고물상 근처에 있는 자주보던 허름한 건물이다.
‘제발로 오셨네요’
‘쌍놈의 자식들 니네 사장 얼굴 보러왔다’
건달들이 힐끔거리며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사무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당신 뭐요’
‘에이 할아버지 저 나쁜사람 아니니깐 얼굴 펴세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부하들 시켜서 내 물건들을 몇개씩이나 박살내고도
뻔뻔하게 말하는구만 어떻게 변상할거요’
하지만 사장은 말이 없이
책상에 있던 종이를 집어 내밀었다.
그러나 까막눈인 나는 글을 읽을수가 없다.
‘할아버지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거 아시죠.
그래서 요즘은 고물상도 먹고 살기가 힘들잖아요‘
‘니네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야’
‘물론 그렇지만요 이웃들끼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되지 않겠습니까
요새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 수거하는 게 불법인 건 모르세요?‘
‘그게 뭔 소리야’
‘하아 내가 이러니까 편히 잠을 못자지.
노인네들한테 제대로 된 설명도 해주지 않고 무작정 불법이라니
그러고나서 단속을 하면 그동안 고물상하시던 노인분들은 대체 어떡하라는 겁니까‘
‘단속이라고?’
‘네 단속이요 할아버지
아직 그 고물상은 단속이 안 들어갔는가 모양이네요.
이제 금방 갈 겁니다 이 주변도 다 걸렸어요.
단속 걸리면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고물상 문 닫아야 됩니다‘
탁자 위로 커피가 나온다.
‘드세요 할아버지’
그의 얼굴을 본다.
그러니 살짝 불거진 흉터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아주 나쁜 인상은 아닌 것 같다.
‘자세히 말해보쇼. 그게 무슨말이요’
나는 그 남자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인즉슨
요새는 법이 바뀌어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을
고물상에 갔다주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는 말이다.
즉 물건을 버리려면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버려야 되지
그렇지 않고 그것을 고물상에 바로 버리면 안된다는 뜻이다.
시에서 내려온 법령인데
고물상의 외관이 도시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기 때문에
올해부터 시행된 법이란다.
사장은 내가 나가기전
차라리 자신에게 남은 고물들을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단속에 걸려 허무하게 물건을 빼앗기느니
그걸 가져오면 값을 좋게 쳐주겠다는 것이다.
사기꾼.
저건 전형적인 사기꾼의 말솜씨다.
그동안 수십년을 살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나에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는 그의 모습이 참 우습다.
하지만 막상 고물상에 도착하니 마음이 심란했다.
장사를 그만둘까.
사실 이깟 고물상을 해서 내가 얼마나 번다고 이 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만에하나 그 건달사장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컨테이너 앞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 소파도 참 오래됐지.
난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낡은 소파를 어루만졌다.
그런데 소파 옆에 커다란 손톱 자국이 있다.
크게 놀라 고물상 물건들을 확인하니
대형 티비, 라디오, 장롱 그리고 온갖 폐기물까지
모두 너나할 것 없이 커다란 흠집이 그어져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누가 이런짓을 해놓은 걸까.
그 일이 있고나서 다시 건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게 싸인만 해주면
언제든지 물건을 가져가겠다며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어차피 이놈들이 사기꾼이라는 건 짐작이 간다.
하지만 황혼에 찾아오는 몇몇 쓸쓸한 사건들은
날 더욱 별볼일없는 노인네로 만드는 것 같다.
줄어들어가는 고물들.
그마저도 팔수없게 망가진 물건.
흡사 늙어가는 나의 모습들 같다.
차라리 정 그렇다면
이 사기꾼들에게라도 속아주는게 낫겠다.
그러면 최소한 덜 허전할것 같은데.
종이에 싸인을 한다.
건달들이 넙죽 인사를 했다.
‘좋습니다 할아버지 너무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도 다 살자고 이러는 것이거든요.
야 이제 옮기자‘
건달중 한명이 커다란 티비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를 발견한 듯 우뚝 멈췄다.
‘이게 뭐야’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대뜸 가슴을 밀쳤다.
내가 넘어진다.
‘이 할아버지 재밌네
우리 속는거 보고 아주 기분 좋으셨겠어.
저런거 가져가서 사장님한테 개쪽 당하게 할려고?‘
건달 한명이 티비 옆에 그어진 기다란 흠집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후로 내게 몇 가지 욕지거리를 실컷 하더니
내 팔을 잡아 무작정 자신들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무실 문이 열린다.
‘사장님 이 노인네가 물건에 미리 흠집을 내놓았던데요’
그러자 상냥했던 그의 낯빛이 변한다.
그리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들리지가 않는다.
이제 칠십이나 되는 노인에게
무슨 말을 저리도 빨리 하는걸까.
다만 사무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진다.
그러니 몹쓸일 다 겪어온 나도 점차 불안해졌다.
그때 사무실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뭐야’
뭔가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쾅 열린다.
사장이 기겁을 하고 물러선다.
그도 그럴것이
거기에 커다란 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털이 이리저리 뻗친 그 개는 몸집이 사람보다 컸다.
개는 사무실에 모여있는 건달들에게 이빨을 들어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건달들을 바닥에 눕혀 쓰러뜨렸다.
사장은 개의 커다란 덩치에 어쩔줄을 모르고
사무실 구석으로 요리조리 도망을 친다.
개가 내 앞에 선다.
그리고 등을 돌린다.
타라는 건가.
난 그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개가 나를 태우고 쏜살같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계단 아래에 건달 한명이 자빠져있다.
동네 건물들의 모습이 시원하게 스쳐보인다.
나는 흩날리는 개의 등을 쳐다보다
목에 걸려있는 줄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
이 개는 대체 어디서 나타난걸까.
얼마후 고물상에 도착했다.
그러자 개는 나를 소파옆에 가만히 내려놓더니
그 앞에 앉아 신나게 꼬리를 흔든다.
난처하다.
이 놈은 누구지.
개의 발톱이 보인다.
굉장히 커다랗고 길다.
아주 오랫동안 자르지 않은 내 손톱처럼.
‘너구나?’
개가 침을 질질 흘리며 꼬리를 더욱 세차게 흔들었다.
‘너지 내 물건들에 흠집을 낸게’
난 일어서서 그 개를 혼내려다가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개가 다가와 품에 안긴다.
곧이어 건달들이 고물상에 찾아왔다.
뒤에는 아직도 놀란 표정이 가시지 않은 사장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여러 가지 지시를 한다.
건달들이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고 닥치는대로 고물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커다란 개는 그들에게 달려가
미친 듯이 짖어대고
앞서있던 건달 둘을 바닥에 넘어뜨렸다.
하지만 이어오는 몽둥이를 피하지 못했다.
큰 개가 깨갱거리며 얼굴을 얻어맞기 시작했고
나는 그 사이에 달려들어 개를 때리지 못하게 손을 벌렸다.
사장이 외친다.
‘비켜 이 노인네야 죽기 싫으면 이거 완전히 미친개네’
순간 어떤 기억이 스쳐간다.
미친개.
그랬다.
오래전 나에게도 개 한마리가 있었다.
늑대 4
그 개는 동네 사람들에게 미친개라고 불렸다.
고물상을 시작하고 십년쯤 되었을 무렵
난 길가에서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주었다.
그런데 이 개는 종이 남다른 것인지
키운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덩치가 사람만큼 커져버렸다.
개는 나를 무척이나 따랐지만
항상 끌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어
집을 하나 지어주고 고물상을 지키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고 개가 나이가 들자
개는 고물상을 지나가는
암컷 개들을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발정기가 찾아온 것이다.
결국 왠만해서 욕을 하지 않던 내가
그 녀석에게 처음으로 이 미친놈아 라고 욕을 했다.
그리고 여자를 밝히는 남자를 늑대라고 하는것이 생각나
개에게 별명을 하나 지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늑대다.
미친개보다는 차라리 늑대라는 별명이 나을듯 싶어서였다.
그러나 날이갈수록 늑대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물상을 제외한 주변 기물들을 파손하기도 했다.
그러자 점점 손님들이 고물상을 찾아오지 않았다.
난 마침내 늑대를 거세시키기로 결정하고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내가 다시 고물상에 수의사를 대동하고 돌아오자
늑대가 목줄을 끊고 달아나버렸다.
안좋은 낌새를 눈치채고 먼저 도망을 간 것이다.
그 후로 십년이 넘게 늑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서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늑대야’
내가 개를 안았다.
그러자 늑대가 혓바닥을 내밀어 얼굴을 연신 핥는다.
사장이 말한다.
‘노친네가 신파찍고 있네 야 저 개새끼만 죽여라’
건달들이 다시 몽둥이를 든다.
그때 뒤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웃 고물상 노인들이다.
가운데 최씨가 보인다.
‘이런 쌍놈의 것들아 그만두지 못해’
그가 외친다.
노인들이 건달들에게 달려들었다.
최씨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날 부축해 소파에 앉혔고
다친곳이 있는지 살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여’
건달들이 도망을 갔다.
상대가 모두 노인들이라고는 하지만
동네의 모든 노인들이 달려왔기 때문에
수적인 차이가 너무나 났던 것이다.
하지만 건달사장은 여전히 담 옆을 기웃거린다.
늑대는 그것을 발견하곤
대뜸 그에게 달려들어 발로 가슴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옷 속에서 하얀 종이를 꺼내어 문다.
늑대가 그것을 건네준다.
종이를 봤다.
그러자 거기에는 이 동네 고물상들의 모든 주소가 적혀있었고
뒷 장에는 사람들의 싸인이 보였다.
아마도 저 치는 동네 고물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럴듯한 사기를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난 그 종이를 발기발기 찢은후에
고물상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늑대의 개집이다.
그리고 그곳에 찢어진 서류를 집어넣었다.
늑대가 가만히 개집 앞에 앉는다.
사장은 고물상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곧 노인들을 다 돌려보내고 다시 소파위에 앉았다.
정신은 없지만 고물들이 모두 부서지지 않아 다행이다.
한데 한가지 궁금증이 든다.
늑대는 왜 내 고물들에 흠집을 내고 다녔을까.
늑대의 긴 손톱과 내 손톱을 보며 가만히 비교해 보고 있으려니
과거의 일이 서서히 떠올랐다.
불과 십 여년전 난 늑대와 동네의 고물을 주으러 다녔다.
그런데 그때는 다들 어려울때라 그런지
좀도둑들이 가게에 몰래 들어와 물건들을 훔쳐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가게를 닫을 시간이 되면
검은 물감으로 비싼 고물들에 낙서를 해 놓았다.
해서 도둑들이 물건을 훔쳐갈 생각을 아예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짐작컨대 늑대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건달들이 고물을 훔쳐가지 못하게
자기만의 방법을 쓴 것 같다.
바로 물건에 흠집을 내는 방법으로 말이다.
나는 그제야 늑대가 기특한 생각이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내 긴 손톱끝이 자꾸 늑대의 얼굴을 찌른다.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오랫동안 길러왔던 손톱을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