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노트

by 김민관

반찬노트 1


<간단 반찬 만들기 1탄>

-시금치 무침

1. 시금치를 다듬는다

2.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3.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4. 소금, 파,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5. 참기름을 넣고 다시 한번 조물조물 무쳐낸다.


반찬노트 2


‘오빠야 조용히 좀 해라’

‘내가 멀 했다꼬’

‘딱딱 소리 냈다아이가’

‘내가?’

‘신경질나서 공부를 모하겠다’

‘미안타’

‘됐다 나 잘란다’

이불 속으로 꿈틀꿈틀 주희가 들어간다.

흥수는 미안한 표정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내가 언제 그랬지.

손가락을 내려보니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가 벌겋다.

그러고보니 심해졌다.

흥수의 버릇인 손가락 소리 내기.

소리를 내고 있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져

자주 하는 행동인데

이것 때문에 동생이 신경이 쓰일줄은 몰랐다.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며칠째 불이 안 들어온다.

몇 달치 전기세를 밀려 그런것인데

뻔한 사정을 알면서도

얄짤없이 공급을 중단한 어른들이 너무 얄밉다.

두 남매의 부모는 오래전 그들을 떠났다.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고 한사람씩 차례로 말이다.

주희는 지금 초등학교에 다닌다.

흥수는 생활비를 벌기위해 중학생의 몸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

하여 지금 슬퍼하는 건 사치라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으려 애썼고

동생이 절대 학교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를 바랬다.

하긴 초등학생이 밥만 잘 먹는다면 무엇을 부족하게 생각하겠냐마는

실상은 그게 아니다.

주희도 슬슬 부모님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것 같다.

부쩍 짜증이 많아졌다.


반찬노트 3


<간단 반찬 만들기 2탄>

-연근 조림

1. 연근의 껍질을 벗긴다.

2. 1cm의 두께로 동글동글 자른다.

3. 끓는 물에 15분동안 끓인다.

4. 냄비에 물을 적당히 남기고 따라버린다.

5. 간장을 넣고 한 소큼 끓인다.

6. 설탕을 넣고 살짝 더 끓인다.

7. 불을 끄고 참기름을 넣은 후 젓는다.


반찬노트 4


‘주희야 팍팍 먹그라’

‘모르겠다. 반찬도 안 보이는데’

‘안 보이긴 다 보이는구만’

‘오빠는 눈이 좋아 그러지 난 안경 안쓰면

하나도 안 보인다‘

‘그랬나’

‘암튼 모른다 학교도 늦었는데 그냥 갈래’

‘야 더 챙겨먹고 가야지’

‘됐다 오빠나 많이 먹어라’

주희가 가방을 멘다.

흥수는 식탁에 놓인 반찬을 집어

억지로 입에 넣어준다.

주희가 고개를 젓는다.

상에 촛농이 떨어져있다.

전기가 떨어진 후로 서랍에서 안 쓰던 양초를 찾아냈다.

특별히 산골에선 할 일도 없다지만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야겠다 싶어 식탁에 초를 놓았다.

그리고 식사를 한다.

하지만 촛불의 밝기가 그리 밝진 않은지

모든 음식들을 선명히 비춰내지 못했다.

초를 더 찾아보았지만 서랍에 있는건 양초 하나가 전부다.

부아가 치민다.

대체 엄마는 어디에 간 걸까.

식탁에 앉아 남은 반찬들을 끼적거린다.

그때 뭔가 퍼뜩 떠올랐다.

바로 양초를 찾았던 서랍이다.

그곳엔 공책 하나가 있었는데

표지에 반찬 노트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다시 서랍을 열고 먼지를 터니

그곳에 그리운 글씨가 보인다.

바로 엄마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적어놓았던 요리 레시피 노트다.

흥수는 엄마가 없어진 후부터

자신은 요리를 못하니 번 돈으로 완성된 요리를 샀다.

하지만 한창 손맛이 나는 음식이 그리울 주희에게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다시 일을 나가기 전

촛불이 켜진 밥상 머리에 앉아

눈을 껌뻑이며 반찬 노트를 읽기 시작한다.


반찬 노트 5


<간단 반찬 만들기 3탄>

-미역국

1. 미역을 물에 담근다.

2. 미역이 불면 바락바락 두 세번 씻어낸다.

3. 냄비에다 참기름을 넣고 볶는다.

4. 그 다음에 물을 넣고 끓인다.

5. 소금 간이나 간장으로 간을 한다.


반찬노트 6


주희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오는 것은 매번 쓸쓸하다.

이맘때쯤이면 오빠가 돌아와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주희가 도착하고나서도 한참이 지났는데 오빠가 돌아오지 않는다.

마당에 걸터앉아 흥수를 기다린다.

한 시간쯤 지나자 비가 내렸다.

그리고 처벅처벅 발자국 소리와 함께 누군가 양손을 올린채로 저 멀리서 달려온다.

‘이제 오나’

‘어 주희야’

‘무슨 일 있노’

‘일은 무슨 이제 밥 먹자’

‘밥 묵기 싫다’

‘우리 공주님 밥 안 먹고 그케 투정부리면 나중에 서방님이 싫어할텐데’

‘내는 결혼 안 할꺼다’

‘왜 안 하나’

‘분명 내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자식 버릴테니까 말이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엄마 아빠도 일부러 그런게 아닐텐데’

‘일부러 안 그런거면 모르고 그런건가 이 캉 저 캉

내는 엄마 아빠 모조리 밉다 그리고 오빠도 밉다‘

갑자기 주희가 화를 내고 방에 들어간다.

하지만 방이라곤 해도 문도 없는 거실이다.

주희는 그곳에 있던 이불을 끌어안고 얼굴을 가린채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흥수가 동생을 쳐다봤다.

울컥 눈물이 나온다.

가엾은 동생.

자신도 가엾지만 어린 동생은 무슨 잘못이라고 저런 마음 고생을 하나.

잠시 엄마 아빠 얼굴을 떠올리던 흥수는

곧 자신이 주머니에 들고온 몇가지 물건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

흥수가 다시 밖으로 향했다.


반찬노트 7


<간단 반찬 만들기 4탄>

-계란 후라이

1. 후라이팬을 달군다.

2. 불을 약하게 한 다음 기름을 약간 넣고 계란을 깨어 넣는다.

3. 소금간을 해서 적당히 익으면 접시에 담는다.


반찬노트 8


‘오빠’

주희가 흥수를 찾는다.

하지만 집 어디를 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대신 안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

계란 냄새.

잠시후 투다다닥 소리와 함께

비에 흠뻑 젖은 흥수가 나타났다.

손에 고추장이 들려있다.

‘그게 뭐꼬’

‘고추장이다’

‘왠 고추장’

‘삼겹살 고추장 볶음이라꼬 그거 만들라고 사왔다’

‘삼겹살 고추장 볶음?’

‘응 기억나나 예전에 엄마가 자주 해줬던거’

‘기억난다 근데 오빠가 그거 할줄 아나?’

‘할수 있지 오빠가 못하는게 어딨나’

‘오빠는 입만 살았다’

‘헤헤 들켰네’

흥수는 주희를 뒤로하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곧 요리를 시작했다.

어색하긴 하지만 요리를 아예 처음해보는것 같지 않은 솜씨다.

그런 오빠의 모습을 주희가 쳐다보고 있으려니

다시 한번 계란 냄새가 방 안에 훅 끼쳤다.

주희가 상 한쪽에 놓여있던 초를 찾아 그 위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거무스름한 식탁 위에서

노릇노릇한 계란후라이가 반짝하고 나타난다.

‘응 이건 언제 했노?’

‘자 다됐다. 앉아봐라’

흥수가 냄비를 들고 식탁에 음식을 놓는다.

어두침침한 집.

밖에선 풀벌레 소리만 간간히 들린다.

‘주희야 내 손가락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나’

‘그래 그거 고만좀 해라’

‘알았다. 근데 내가 엄마한테 마지막으로 배운게 그기라

나도 모르게 그케 한 것 같다. 미안타‘

‘됐다’

‘근데 주희야 그거 마지막으로 한번만 들어주면 안돼겠나

신나는 노래 연습했는데‘

‘노래?’

‘응 우리 아빠가 노래 부르면 엄마가 그 앞에서

손가락으로 박자 맞추고 했지 그 노래 연습했다‘

‘내는 엄마 아빠 미운데’

‘주희야 엄마 아빠 금방 돌아오실거다

이렇게 예쁜 주희두고 어디 멀리 갔겠노‘

‘정말?’

‘그래 걱정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기라’

주희가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잠시후 흥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예의 그 손가락 딱딱 소리를 내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흥수의 손가락 소리에 맞춰서

식탁 위에 놓여있던 물건들이 하나 하나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뭐꼬?’

‘문방구에서 파는건데 소리로 작동하는 전구같은 거다,

오빠 머리가 좀 좋나. 초가 없으면 이렇게 하면 되는기지‘

주희가 간만에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흥수도 흥이 올랐다.

그리고 신나게 손가락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전구들이 깜빡 거리며 식탁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한편 흥수가 몰래 차려놓은 음식들이

그 빛에 닿아 저마다 자신들의 빛깔을 뽐냈다.

순간 주희가 깜짝 놀랐다.

식탁에 있는 총 다섯가지의 맛있는 음식들은

엄마가 집을 나가기전 주희에게 자주 만들어주었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이였기 때문이다.

흥수의 옆에 노트가 놓여있다.

삼겹살 고추장 볶음 만들기 라는 노트의 마지막 부분에

엄마의 단정한 글씨체가 투박히 적혀 있다.

‘사랑하는 딸 주희가 좋아하는 간단 요리 레시피‘


반찬노트 9


<간단 반찬 만들기 5탄>

-삼겹살 고추장 볶음

1. 큰 양푼에 삼겹살을 넣고 고추장을 넣어 버무린다.

2. 참기름을 넣고 다시한번 버무린 다음 재어놓는다.

3. 후라이팬에 볶아 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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