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
‘아이스크림은 콘 안에만 담아둘수 없다
만약 당신이 사랑을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지가 글자를 지그시 만진다.
한 가수가 있었다.
그는 특별히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멋지게 추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인기가 많았다.
평론가들은 그의 무대매너를 인기의 이유로 분석했다.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것은 물론.
노래를 혼자 부르지 않고 관객과 호흡하고
함께 즐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로 가수가 스타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인 쇼맨쉽을 갖추고 있는 탤런트다.
그는 언제나 군중같은 팬들을 몰고다녔다.
또 자주 지방과 해외로 콘서트를 갔다.
그런데 그런 그를 유달리 좋아하고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던 한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이지다.
성은 남.
이지는 이제 막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졸업반인데
최근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요전번에는 학교를 파해 돌아가던중 바바리맨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다.
그래서 그런것인지.
이지는 최근 모든 것이 짜증났다.
툭하면 신경질이 나고,
누가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화가 인다.
잠을 잘때도 알지못할 불쾌함 때문에 잠에서 깰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한데 이런 스트레스보다 최근 더욱 난처한 일이 생겼다.
바로 허무함이다.
근래에 찾아오는 이 지독한 허무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지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주변 친구들에게 막연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대상이였지만
실제 그녀의 성격은 특이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고 싶은것이 없다
좋아하는 것도 없다.
목표도 없다.
얼굴도 생각도 모두 평범하다.
그녀의 담임선생님은 이지가 뭔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이지는 그런 선생님이
되려 이상하게 느껴진다.
내 성격이 이런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녀는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었으면 좋겠다.
그저 고3이 되어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지독히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 매우 특별한 일이 생겼다.
이지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티비를 돌려보는데 한 가요프로그램에서
콘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한 가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콘? 참 유치한 노래 제목이다.
이지는 간만에 자기의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작명이라 생각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화면에 비치는 그 가수의 모습은
이지가 평소 알던 십대 가수들과는 뭔가 달랐다.
관객들과 소통한다.
짜맞추어진 춤과 화면속에서
자기 노래만 부르고 잽싸게 사라지는 가수들과 다르게
이 사람은 뭔가 달랐다.
노래를 해야할 부분에서 노래를 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도
성큼 그 자리를 벗어나 관중석을 향해 뛰어간다.
그리고 그들 곁에서서 자신의 노래를 따라부른다.
춤도 어색하다.
연습을 하긴 한건지 실수 투성이고
심지어 넘어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관중들이 웃음을 터뜨리지만
곧 해맑게 웃으며 일어선다.
관객들이 환호한다.
어쩜.
이지는 순간 눈부신 광채가
그의 머리위에서 빛나는 것을 느꼈다.
이걸 후광이라고 하는걸까.
예수님? 부처님?
저 사람은 혹시 과거 어떤 성인이 재림을 한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어쩜 저리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무대를 즐길수 있는걸까.
이지는 검색을 했다.
콘이라는 노래 제목을 치자
곧장 프로필이 화면에 뜨고
그제야 그가 아직 데뷔를 한지
1년도 되지 않는 신인가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이라는건 구색일뿐이고
나이는 이십대 후반이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이 받춰준 것인지
작은 엔터테이먼트 회사에서 그를 실험적으로 데뷔시켰다.
그리고 그는 나오자마자 대히트를 치며
현재 가요계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화면을 내리자
아이스크림 이라는 제목의 카페 제목이 보인다.
아이스크림은 그가 부르는 노래 콘에서
팬들이 아이디어를 내 만든 팬카페 명칭인데
이지는 못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살면서 뭔가를 좋아해본적 없던 이지가
마침내 좋아하는 것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들의 가수로.
콘 2
이지가 스쿠터를 타고 콘서트장에 도착했다.
얼마전 구입한 이 스쿠터는
이지가 그 동안 모은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한편으론 삶의 의욕이 없어보이던 이지가
모처럼 해보고 싶은게 생겼다고 판단한 부모님이
스쿠터 구입의 부족한 돈을 충당해 준 덕도 있다.
갓 생일을 넘겨 주민증을 발급받게 된 이지는
방과후 틈틈이 면허증을 따기위해 운전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야자까지 빼먹으며 이지가 스쿠터를 타려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그가 좋아하는 스타의 콘서트 때문이다.
이지가 좋아하는 그는 거의 한달 간격으로 매번 콘서트를 열었다.
가수가 그렇게 자주 콘서트를 하는건 흔치 않은 일인데
그는 음악 프로에서는 팬들과 소통할 기회가 적다는 이유로
티비 프로그램보다 콘서트에 힘을 쏟았다.
또한 콘서트 장에는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기획한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해
공연을 찾아오는 관객들이 즐길거리를 만들었다.
이지는 바로 그 콘서트 장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학교를 제때 파해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렵다.
해서 콘서트 컨테츠중 하나인
관객들에게 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을수가 없었고
마침내 이지는 그 아이스크림 콘을 제때 먹기위해 스쿠터를 장만한 것이다.
콘이라는 노래는 아이스크림이 녹는것을 사랑에 비유한 일종의 사랑가다.
그래서 스타는 자신의 콘서트 장에 도착하는 팬들에게
선착순으로 콘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
아이스크림이 시간이 지나면 녹듯
사랑도 식기 전에 하라는 노래구절처럼
스타는 본인 스스로 이 컨텐츠를 생각해냈다.
이지는 이 내용을 어느 기사에서 봤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가 나눠주는 아이스크림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것은 스타를 좋아하는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다는건
그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학교에서 시간에 맞춰 몇시간이나 콘서트 장에 일찍 찾아왔는데
이미 아이스크림 콘이 동이 나 있던 것이다.
그녀는 그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스타의 노래를 따라부르다가 힘없이 집에 돌아갔다.
해서 그날 이지는 굳은 결심을 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이지는 언제나처럼 자율학습을 빼고
콘서트 장에 찾아왔는데
그날따라 콘서트장 주위가 분주했다.
자세히 보니 스타가 보인다.
주변에는 경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가 지금 막 콘서트장에 도착을 한 모양이다.
이지가 그의 매니저를 알아봤다.
하도 뻔질나게 콘서트 장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의 매니저 생김새까지 자세하게 꿰고 있던 것이다.
매니저가 어느 차 앞에 선다.
그리고 잠시후 스타와 함께 급히 콘서트 장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서 환호성이 울린다.
하지만 이지는 지금 아무런 생각이 없다.
마침내 그의 차를 알아낸 것이다.
방금 매니저가 서 있던 차가 바로 그의 차량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의 차.
아마 저 안에는 스타의 물건들이 잔뜩 담겨 있겠지.
이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쿠터는 아직 시동도 꺼지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이지는 성큼성큼 차를 향해 걸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덜컥 문을 연다.
콘 3
전속력으로 스쿠터를 몬다.
브레이크를 풀고
그대로 엑셀을 잡아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이지의 등에 매니저의 손이 스친다.
스쿠터는 크게 한번 휘청하다가
다시 쏜살같이 도로위를 질주했다.
헉헉대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기 침대에 바지를 내려놓는다.
훔쳤다.
드디어 훔쳐냈다.
그의 바지.
차 안에 들어서니
은은한 불빛 사이로
너저분한 물건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하지만 지저분한 차 안에서도
유일하게 깔끔한 장소가 있었으니
바로 그곳에 스타의 바지가 놓여있던 것이다.
이지는 단숨에 그게 스타의 바지란 걸 알았다.
마침 인기척이 들렸고
그녀는 바지를 들고 쏜살같이 차를 빠져나왔다.
얼굴을 들켰으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매니저들은 사정을 봐주는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했다.
그럼 된 거다.
모자를 챙겨가길 잘했다.
바지를 본다.
이게 그의 바지인가.
꿈이야 생시야.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이미 그녀에게는 남의것을 도둑질 했다는 생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그의 바지를 훔쳐냈다는 희열만이 머릿속에 꽉꽉 차있다.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바지의 사진을 찍어
자신이 즐겨찾는 팬 사이트에 등록한다.
빠르게 덧글이 달린다.
이 사이트는 그의 팬들 중에서도
매우 열성적인 골수팬들만 모이는 특별한 사이트인데
이른바 사생팬이라 불리는
좋아하는 스타의 사생활을 손금 보듯이 꿰고있는 팬들만이
가입을 하는 곳이였다.
덧글을 확인한다.
감탄사가 연발한다.
동시에 팬들은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물품을 함께 올렸는데.
그 사진들을 확인하자 이지는 왠지 기가 죽었다.
하지만 잠시후 이지의 한마디에 게시판이 초토화됐다.
차에서 훔쳐 가지고 나왔어요.
순간 게시판에 정적이 흐르고
다시 사이트는 열광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용감하다.
대단하다.
이거 카페 운영자로 추대해야 되는거 아니야?
직접 입던 바지라니!
끝없이 이지를 찬양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그녀는 뿌듯했다.
내가 한 행동이 이렇게 훌륭한 일이였다니.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방에 그의 바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맞다 아무렴 어떤가.
어찌됐든 그의 물건이 나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중요한거지.
콘 4
기사가 뜬다.
포털 사이트에는 어느 사생팬의 도둑질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가 입고있던 바지 사진이 등록됐다.
검색어 1위.
이지는 놀라서 그 검색어를 클릭했고
그것이 자신이 찍은 바지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이미 사진은 퍼지고 퍼져
이것을 찍은 최초의 사람이 누군가라는
이야기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들키면 어떡하지.
자신이 도둑질 했다는게 알려지면 큰일나는데
하지만 때 마침 또 다른 게시물 하나가 덜컥
검색어 1위를 탈환했다.
그녀는 켜져있던 기사를 닫고
새로운 검색어를 클릭한다.
그것은 스타의 열애설이였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그가
한 여성과 다정하게 산책을 하고 있는 사진이 걸린 기사였다.
이지가 눈을 비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하긴 너무 무리해서 쫓아다녀서 몸이 피곤하긴 했지.
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수를 한 후
양볼을 세개 내리쳤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하지만 검색어 1위에 올라있던 기사는
전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언제까지고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새벽이 지나 다음날 학교에 갈 시간이 되어도
기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멍하다.
열애라고?
사진속 그녀는 대체 누구지.
마음이 쿵쾅 거리고
자신의 연인을 누군가에게 뺏겼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뭘 해야할지 몰라 허둥지둥 댔고
겨우 학교에 도착한다.
친구들이 안부를 묻는다.
그녀가 계속 땀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지가 불쑥 소리를 지른다.
무슨 상관이야!
친구들은 처음보는 이지의 고함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고
이지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역시 어제는 뭔가 잘못됐던 걸거야.
다시, 다시 확인해보자.
그러나 검색어 1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믿을수 없다.
혹시나 해서 팬 사이트를 찾아가니
모두들 그 소식으로 분주하다.
그녀가 도대체 누군지에 대한 추측성 글부터
상대에 대한 심한 욕설을 하기도 했다.
또 이런게 어딨냐고 투덜대면서
스타를 욕하고 사이트를 탈퇴하는 사람도 있었다.
티비를 켠다.
한 연예프로에서 그의 인터뷰가 나온다.
스타는 최근 번지고 있는 자신의 열애설이 사실이라고 말하며
허나 자신은 지금까지처럼
자신에 대한것을 팬들에게 전혀 숨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쪼록 자신의 사랑을 예쁘게 지켜봐주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손에서 리모컨이 떨어졌다.
콘 5
협박편지?
이지의 메시지를 받은
친구가 걱정스럽다는 이모티콘을 날렸다.
이 친구는 스타의 팬 사이트에서 알게 된 자신과 같은 사생팬이다.
이지는 처음 친구가 스타의 사인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에 반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이지가 그녀를 이끌고 사생팬 활동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응 협박편지.
그래서 그 여우를 떨어지게 해야겠어.
친구는 망설였지만
그녀도 역시 스타의 열애설에 분노한 상태였기에
곧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둘은 손수 그 여인이 사는 집을 알아낸후
편지에 다시는 그를 만나지 말라는 내용을 적었다.
그러자 얼마후 새로운 소식이 떴다.
스타는 자신의 애인이 익명의 사생팬에게
장문의 협박 편지를 받았다며
앞으로 절대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줄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변하지도 않겠지만
정말로 자신을 좋아한다면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도 존중해줄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지는 멈추지 않았고
몇 차례의 협박편지를 계속해서 보냈다.
하지만 스타와 여인의 열애는 계속됐고
마침내 이지는 분통이 터질만큼 화가 났다.
그러던 어느날 이지가 검색하던
스타의 파파라치 사진속에 이상한 점이 보였다.
열애사진이 올라올때 자주 찍히는 장소가
이지가 아는 곳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곳은 스쿠터를 타고 콘서트 장에 도착할때쯤
보이는 풍경 좋은 바닷가다.
아하 바로 그곳이다.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직접 만나서 협박하자.
친구는 이지의 말을 눈치채고 답장을 했다.
그건 무리야.
이지는 진정한 팬이라면 이러면 안돼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함께할수 없다고 했다.
채팅창을 닫는다.
전화가 걸려온다.
그러나 이지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스쿠터에 올라타 바닷가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콘 6
입술과 입술이 닿는다.
뜨거운 것이 이지의 명치를 타고 머리를 강타한다.
열이 받친다.
순간 어지러움을 느낀 이지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두 사람이 입을 맞추고 있는 그 장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스타가 자신을 쳐다본다.
하지만 이지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여인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닷물이 철썩 거린다.
잠시동안 아무런 동작이 없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그와 여인이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지의 몸을 강하게 밀친다.
이지가 바닥에 쓰러진다.
잠시후 욕을 하기 시작하는 스타.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나.
설마 너. 이제까지 편지 보낸거...
말문이 막힌듯 스타가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이지가 난생 들어본적도 없을
심한 욕들을 정신없이 던졌다.
그리고 재차 넘어져있던 이지를 발로 걷어차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여인이 몸을 날려 말렸다.
그가 말했다.
너 나 따라다니는 사생팬이지.
미친짓 그만해.
한번 더 걸리면 바로 고소한다.
이지는 아무말없이 그의 외침을 들었다.
얼마후 그와 그녀가 차를 타고 돌아가고
이지가 몸을 일으켰다.
바닷가 옆 가로등이 이지를 비춘다.
콘 7
스쿠터 마후라가 울린다.
이곳은 휴게소.
이지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변기에 앉아 벽에 기댄다.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끊어버렸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남김없이 사랑을 바쳐서인지.
이제 감정이 아예 사라져버린것 같다.
그리고 그 텅 비어있는 자리가 너무 아프다.
잠시후 비어있는 자리로 한기가 들어온다.
차가운 한기.
심장이 마치 냉동실에 넣어둔 아이스크림마냥 점점 차가워진다.
예전 그때처럼.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언제나 냉랭한 이지 자신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지는 왠지 그가 아이스크림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팬 카페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의 모습과도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이 하얗듯
그는 매우 빛나는 사람이다.
아이스크림이 달달하듯
그는 너무 달콤한 사람이다.
하지만 냉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을 그렇게 대한 것을 보면 그렇다.
어쩌면 과거의 이지만큼이나
가슴은 매우 차가운 사람이지 않을까.
이지는 가방에서 펜을 꺼내
낙서가 가득한 문 사이로 글씨를 쓴다.
‘아이스크림은 콘 안에만 담아둘수 없다 만약 당신이 사랑을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날 이지네집 쓰레기통에 반짝거리는 바지 하나가 담겼다.
콘 8
졸업.
1년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이지는
자연히 별 볼일 없는 대학에 진학을 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공부에 관심이 없다.
단지 그녀는 전보다 더 허무해졌다.
눈빛에 생기가 없고
여전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것과
부정적인 것과
절망하는 것들이 생겼다.
백지처럼 하얗던 이지도 결국 한 가지의 색깔이 물들게된 것이다.
이런 삶을 살아서 뭐해? 라는 생각이 그녀 머릿속에 가득하고.
입에서는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습관처럼 새어나왔다.
팬클럽에서 알게 된 친구는 어느덧 친한 친구가 됐다.
학교에서 그 난리를 친 덕에
어릴때부터 친한 친구들은 다 떨어져버렸고
다만 이 친구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와 찾아왔다.
그녀가 말한다.
자신은 사실 오래전 남자친구가 한명 있었다고.
그는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신이 그에게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순간 그가 자신의 집착을 견디지 못하고
이별을 통보했다.
하여 친구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
스타에게 집착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게 고 2때의 일이다.
이지가 웃는다.
어렸구나.
나도 그랬긴 하지만
사랑은 모두 어릴때의 철없는 불장난일 뿐이라고 이지가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가 이지의 말에 화를 내며 말했다.
불장난이 아니다.
사랑은 소중한 것이다.
다만 사람의 감정은 물건이 아니라 담아둘수 없는것뿐이고
단지 자신이 그를 틀 안에 가둬두려고 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 이상 사랑이 아닌 집착이 시작되는 거라고.
친구의 말을 듣던 이지는
가만히 집착과 사랑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때
스타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집착을 했던 것일까.
아니다. 난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
비록 짝사랑일지라도 사랑은 사랑이다.
이지는 콧방귀를 끼고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자고 한다.
친구가 갑자기 이지 팔을 잡는다.
매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오늘 하루 산책을 하러 나가자는 것이다.
이지가 마지못해 친구를 따른다.
그리고 마침 오랜만에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바닷바람이 쐬고 싶다고 생각했다.
헬멧을 썼다.
자신의 뒤에는 친구를 태우고
항상 찾던 바닷가를 찾아 드라이브를 한다.
저녁이 되어 주유소에 들렸는데
몇해전 자신이 낙서를 해 놓았던 화장실에 이지가 들어섰다.
여전히 그곳엔 낙서가 가득하다.
그런데 1년전 자신이 적어놓은 낙서 밑에
뭔가 새로운 글자가 적혀있다.
이지가 글씨를 만진다.
‘아이스크림은 콘 안에만 담아둘수 없다 만약 당신이 사랑을 한다면 더욱 그렇다’
RE:
‘녹은 아이스크림을 담을 새 그릇을 만들면 된다’
이지가 멍하니 글자를 바라본다.
글자 옆에는 자그마하게 아이스크림이 콘에서 녹아내려
새 그릇에 담기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지가 모처럼 웃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