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by 김민관

바리스타 1


심심할 적 마다 커피를 마시던 남자는 결국 어른이 되어 바리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리스타가 된 남자가 커피를 내리고

첫 시음을 위해 그것을 마실 때 마다

들떠있던 기분이 가라앉고 즐거웠던 생각도 사라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느새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울함이 엄습해왔다.

흔히 파블로프의 개 효과라 불리는 현상.

남자는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느 과학자가 벨을 울리면서 그와 동시에 개에게 먹이를 줬다.

그러자 며칠후부터는 먹이를 주지 않고

벨만 울려도 개가 침을 질질 흘렸다는 이야기.

남자도 그와 같다.

젊은시절 심심할 적마다 커피를 홀짝거리던 버릇이

이제는 커피를 시음할 때마다

들떴던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편안해지는게 아니였다.

무료했다.

기분 좋은 일이 있다가도 커피만 마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풀썩 가라앉아 버린다.

결국 남자는 커피가 점점 싫어졌다.


바리스타 2


노트를 쳐다보고 있던 여 종업원이 말한다.

‘정말이에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남자의 어깨를 친다.

남자는 이 친구 너무 예의가 없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래도 명색이 사장인데...

‘표정이 너무 심각하신데 진짜에요?’

그녀가 노트를 가리키며 재차 묻는다.

남자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이번에는 웃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녀가 말한다.

‘심심할 때마다 마셨던 커피가 이제는 커피를 마실때마다 심심해진다는 거네요’

종업원은 생각을 정리하듯 입으로 글을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곤 그녀가 무언가 생각난듯이

탁자를 탕 치며 말했다.

어허. 이 사람.

‘사장님 그럼 행복할때는 무엇을 마셨어요? 기분 좋을때!’

여 종업원이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남자에게 묻는다.

그는 노트를 접고 머리를 긁었지만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또 다시 책상을 쿵 친다.

‘뭘 마셨냐니까요’

어허. 거 참.

무슨 여자가 이렇게 드세지.

처음 채용할때는 분명 안 이랬는데,

허물없는게 좋기는 하지만.

‘사장님!’

‘없었어 없었다고’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행복한때가 없었다고요?’

‘응 별로 그런때가 없었던것 같은데’

대답을 들은 그녀가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가게를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자는 생각에 잠겼다.

행복했던 때?

글쎄 나에게 그런게 있었던가?

사실 남자는 매우 심심한 인생을 살았다.

마치 삶이란 것은

저 바다의 수평선과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는 굴곡이 없는 평탄한 인생길을 걸어왔다.

더군다나 특별히 문제를 만드는 성격도 아니였고

사건이 그를 향해 찾아오는 경우도 없었다.

그러니 바람한점 없는 연못의 물결처럼

미세한 떨림도 없는채

자신의 삶을 묵묵히 걸어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저 유일하게 커피를 많이 좋아했다.

어느덧 지하철 플랫폼에 섰다.

마침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들리는데

자동문 전광판 위에 커다란 광고가 보인다.

예쁜 여성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행복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라는 말풍선을 달고 있다.

유난히 문구가 남자의 머리속을 맴돈다.

더하기도 빼기도 아닌 아무런 공식도 존재하지 않던 남자의 일생.

하지만 그래도 남자는 한걸음 두걸음 걸어왔다.

한편 심심하면 멍해지고 멍해지면 우울해지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종의 패턴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할 일이 없어 무료할때는 반드시 커피를 챙겨 마셨다.

자신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우울함이 삶 속에 침범할 새를 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것을 나름 철저하게 지켜왔다.

그가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광고는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다.

삶은 빼기를 하는 것이다.

남자는 가만히 광고를 바라보았다.

잠시후 열차가 정차한다.


바리스타 3


‘사장님 커피가 없어요!’

여 종업원이 소리를 지른다.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서다

그녀의 뜨악한 표정을 보고 잠시 멈춰섰다.

그러나 곧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종업원이 다시 외친다.

‘커피가 없다니까요!’

무시할까.

하지만 한번 더 무시하면 소리를 지르겠지.

이젠 그녀의 패턴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자 지금쯤이다.

‘사장님!’

‘어 들었어. 그런데 오늘부터는 커피 없이 장사 할거야’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남자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자신의 노트를 펴 보여주었다.

‘어제 너가 말했던거 생각해봤어.

살면서 행복했던 때가 없냐고 했지?

그랬던 적이 정말 없었던거 같아.

하지만 나는 공식 만들기를 좋아하거든‘

남자가 그녀에게 자신이 쓴 글을 내민다.

심심하고 무료하다 =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신다 = 심심하고 무료해진다

그렇다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 나는 행복해진다

그녀는 남자가 내민 노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곧 손으로 노트를 밀치고 남자에게 말했다.

‘커피 어딨어요?’

남자는 다시 테이블에 앉아 커다란 종이를 찾더니

그 위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사장님 커피 어딨냐고요’

또 시작이다.

남자는 깜짝 놀라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자신과 정 반대되는 성격의 그녀가

종업원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내심 즐거웠다.

‘사장님!’

‘깜짝이야 소리 좀 지르지 마

커피 다 처분했어 당분간은 커피 없다‘

그녀가 허리에 손을 올린다.

‘뭐라고요?’

그러나 남자가 다시 대답이 없다.

그는 커다란 종이에 아까 노트에 적혀있던 공식을 쓰고

그런 이유로 오늘부터는 커피 없이 장사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적었다.

대신 커피값은 반만 받으며 그 반은 장소값이라는 중요 표시를 넣는다.

‘사장님 미쳤어요?’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그래 이래야 내 종업원 답지.

누군가 저런 말이라도 해주지 않는다면

남자는 이런 행동을 차마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장님!’

남자가 종이의 가장 아래 부분에

‘빈 커피잔에 여러분의 대화를 담으세요‘ 라는 문구를 넣었다.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꺅!’

‘야! 뭐하는 짓이야’

그녀가 어느새 양 손을 갈비뼈 위치까지 올리고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있다.

‘사장님이야말로 뭐하는 짓이에요,

장사하실 생각 없어요?‘

때마침 종이 울렸다.

남자가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손님들은 문구를 보지 못했다.

그는 엉거주춤 손님에게 다가가 오늘부터

커피 없이 장사를 할 거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전했다.

손님들이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한바탕 웃으며 배꼽을 잡더니

가게 구석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어느새 서빙을 시작한 종업원이

커피잔을 들고 손님들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다행히도 그녀가 남자의 말을 이해하긴 한것 같다.

그러자 손님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빈 커피잔을 보고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또 한번 크게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참 재미있다며 그녀에게 윙크를 날린다.

그러나 그녀는 손님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쌩하니 카운터로 돌아갔다.

남자가 다시 다가가

손님들에게 커피 없이 장사를 하려고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문을 열고 쏜살같이 사라져버린다.

카운터에서 씩씩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귀를 막는다.

‘사장님!’

‘왜’

‘그만하고 커피 빨리 가져오세요’

‘커피 없다니까’

‘커피 집에 왜 커피가 없어요’

‘말했잖아’

‘뭘 말해요’

남자는 팔짱을 끼고 계속 씩씩 거리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어제의 일을 설명했다.

삶의 행복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데서 찾아온다는 철학적인 내용의 광고를 봤다.

그러니 어쩌면 이것을

커피에도 적용시킬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했다.

해서 커피를 없앴다.

‘미쳤어요?’

‘좀만 더 들어봐’

남자는 이후로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이윽고 손님이 들어오고 그녀는 다시 서빙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손님들이 종이를 쳐다봤다.

남자가 서둘러 가게 앞 안내판에 문구를 끼워넣는다.

조심스레 손님들에게 다가간 그녀.

테이블에는 곧 빈 잔이 놓였다.

그러나 그녀의 발소리가 커피집에 쿵쿵 울린다.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다.

두 여자손님이 한동안 빈 잔을 바라만 본다.

얼마후 그녀들이 손을 들고 커피가 없다고 공손히 이야기를 했지만

종업원은 빤히 바라보기만 할뿐

시선을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그가 서둘러 다가간다.

그리고 커피 없이 장사를 하게 된 사연을

손님들에게 자세히 설명한다.

두 손님이 또 다시 문을 열고 사라진다.

그녀 얼굴은 이미 잔뜩 찡그려져 있었지만

달리 할 말도 없던 남자는

대신 그녀에게 카운터만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정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서빙을 자신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그녀가 받침대에 커피잔을 올린다.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다.

왠지 미안하다.

자신이 괜한 행동을 하고 있는걸까 싶었다.

모처럼 기분좋게 시작한 아르바이트일텐데

이런 황당한 일을 겪으니 그럴법도 하다.

그러나 남자는 무조건 나쁘게 생각되지만은 않았다.

아무런 문제 없이

약간의 요동도 없이 살아왔던 그의 평범한 인생.

그런데 오늘에서야 드디어

기가막힌 사건 하나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빼기의 효과인가,

남자가 가만히 생각했다.

곧이어 다른 손님 둘이 찾아왔다.

그들은 가게 앞에서 안내문을 보고

잠깐 망설이더니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손을 든다.

‘아메리카노 하나랑 카푸치노 되나요?’

연인이다.

연인 중 남자가 큰 목소리로 설탕도 가져다 주세요 라고 외쳤다.

종업원이 접시에 커피를 담는다.

그가 서둘러 다가가 쟁반을 날랐다.

그들이 가만히 컵을 받는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커피잔을 태연히 바라보던 그들은

곧 빈 커피잔을 들고 향기를 맡는 시늉을 했다.

시간이 지났다.

두 연인이 카운터로 다가와 계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 입에서 재미있는 말이 튀어나온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그리곤 즐겁게 웃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종업원도 어쩔수 없이 마주 웃었다.

얼마후 그들이 나간 자리에 새 손님이 들어오고

2평 남짓한 작은 커피집에

손님들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안내문을 보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나가기 전에

앞선 손님처럼 커피 잘 마셨다는 인사를 하고 거리로 나섰다.

얼마후 한차례의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자

남자가 종업원에게 다가가

오늘 이상한 일을 벌여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여태껏 들어봤던 목소리 중 가장 큰 소리로 목을 놓아 외친다.

‘사장님 진짜 미쳤어요!’

하지만 그는 벌써 귀를 막았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바라본 종업원의 표정이 밝다.

어찌어찌해도 완전히 허튼짓은 아니였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사장님한테 미쳤다고 소리를 지르다니

이 종업원 버릇이 없는건 알아줘야 한다.

또 한편으론 고맙다.

이렇게라도 미쳤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엉뚱한 행동에

본인 스스로가 민망해 녹아버릴 지경이였던 것이다.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남자가 의자에 풀썩 주저 앉는다.

그녀가 웃음을 터뜨린다.

향 없이 아름다운 커피 향내가 커피집을

유유히 떠다니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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