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세주
내 삶은 신을 영접하기 전과 후로 달라졌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날마다 세상적인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며 살아가기 바빴다. 그래도 질 때도 있었지만 기도로 시작하면 하루가 평탄하게 흘러갔다. 이 시기에는 아직 친구들을 잘 못 만나는 시기여서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초등학교 친한 동창 친구가 한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그 친구도 크리스천이었는데 처음에는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평소라면 낯을 가려서 할 말도 까먹고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을 텐데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러다 전화를 할 때면 서로 기본 세 시간을 통화했다. 어쩔 때는 새벽 두 시를 넘어서 까지 통화를 한 적도 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 같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랑 생각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우린 공통점이 많았다. 살아온 배경도 비슷하고 생각했던 것도 비슷했다. 그래서 더 잘 통했다. 예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나와 같은 크리스천 친구를 만나게 해달라고. 나 혼자 하나님을 믿기 심심하고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역자와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를 소개해준 초등학교 동창도 놀라 했다. 서로 잘 맞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 정도로 더 잘 맞을지는 몰랐다고. 나는 크리스천 친구에게 나의 가족 배경과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말할 때마다 울고는 했다. 꼭 둘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옆에서 함께 계셔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계신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우리가 꼭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주님이 얼른 오셨으면 좋겠다. 맞아, 자고 있다가 새벽에 천사들과 함께 오셨으면 좋겠어. 나팔소리가 세계적으로 들리려나? 그런 아이 같은 상상을 하며 웃고 떠들었다. 우리는 자주 통화하진 못 했지만 카톡으로 많은 이야기를 쉴 틈 없이 나누었다.
그럴 때면 늘어져 있던 몸에서 힘이 솟아났다. 우리는 늘 하나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그간 있었던 일을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많이 회복되어서 무서움 없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도 타고 다녔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했는데 거의 1년 만에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그 순간을 안도와 행복함으로 기억한다.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 있겠구나. 너무 감사하다. 그저 그 생각뿐이었다. 과거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다.
하나님은 내가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계속 뒤에서 잡아주고 계셨다. 그리고 방송대 공부를 하면서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 과제 분량을 꽉 채우고, 교과서를 읽고 논문을 참고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국가 장학금을 받으며 학점 4.5로 졸업을 했다. 내가 만점으로 졸업한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늘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하루를 보내다 보니, 여기까지 와있었다.
공부를 할 때면 늘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시고 천천히 차근차근 급하지 않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나는 성질머리가 급한데 몸은 나무늘보 마냥 느려서 우유부단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기도로 시작하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에 덫에 계속 빠져서 과제를 다 못 끝낼 것만 같았기에.
아무튼 내가 만점으로 졸업할 수 있던 것도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그렇다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 방송대를 들어간 건 내 인생에 최고로 잘한 일이라고 느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나는 2년간 공부를 하면서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
참, 타이밍이 신기했다. 내가 아파서 어디도 나가지 못할 시기에 코로나가 터지고, 그로 인해 모든 시험이 과제 형식으로 바뀌고 오프라인 수업도 줌 수업으로 바뀌었다.
그냥 모든 상황이 나를 위해 척척 맞아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집에서 자유롭게 언제, 어떻게든 기도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가끔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기도가 중단될 때도 있어서 그럴 때면 기도를 끝내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기도할 거니까 들어오지 마세요.
또는 , 엄마 저 찬양 부를 거예요. 그래, 해.
엄마는 교회를 다니진 않으셨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믿으셨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해도 개의치 않고 알아서 하라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것 또한 감사했다. 내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 주 사랑이 나를 숨 쉬게 해'와 '주 없이 살 수 없네'라는 찬양을 들을 때면 눈물을 쏟고는 했다. 찬양 가사가 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닿는 것만 같았다.
여담으로 공황장애가 오랜만에 발병되었을 때 부모님이 안 계셨는데, 하루 정도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단 생각에 미칠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다. 그때 찬양 유튜버 달빛 마을 찬양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집에 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찬양의 힘을 크게 깨달았다. 기도보다 더 강력한 것이 찬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도가 안 되는 날에는 찬양을 부르고는 한다. 그러면 내 안에 있던 새까만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비워내면 비워낼수록 하나님으로 채워졌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마지막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것만이 나의 소망이라고 기도했다. 혹여나 내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면 찬양을 틀어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다.
난 주 없이 살 수 없다고.
소망도 꿈도 희망도 없던 내게 긍정적인 것들을 알려주신 그분에 감사를 드린다. 어쩔 때는 어렵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도가 있다. 나의 주인은 하나님 되심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