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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Jul 21. 2024

주님과 나 -1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

(개인적인 견해와 종교적인 글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 이사야 38장 17절'


초등학교 5학년 때 뽑은 말씀 카드다. 나는 그때 뽑은 말씀을 27살이 된 지금까지 책상 앞에 붙여두고 매일 보고, 읽고,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공황장애로 인해 하나님을 깊게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왜 이 어려운 말씀을 뽑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일까? 나에게 왜 이런 말씀을 주신 걸까?


잠잠히 생각하다가 잘 모를 때가 많아서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구글에 검색해서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씀은 이해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안다.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그때서야 오로지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다는 걸 안다.


내가 살면서 평생을 저 말씀 카드를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새겨서 이렇게 아픈 건가, 그래서 내가 벌을 받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때로는 가득했다. 평안을 주기 위해 고통을 주신다니. 자녀에게 왜 고통을 주신다는 건가. 그분의 크나큰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신의 뜻을 어찌 다 알겠는가. 그저 연약한 인간이기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거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통이 축복이다. 물론 내가 혼자 이런 결론을 내린 건 아니다. 내가 일요일마다 듣는 주일 예배가 있는데 그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면서 알게 된 부분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가 이 고통을 겪어야지만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천국으로 가는 문은 엄청 좁다던데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이 고통을 넘어서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통의 시간이 커지는 만큼 하나님을 생각하고 붙잡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나는 하루에 기도를 두세 시간씩 하고 찬양을 두 시간가량 부르며 거의 온종일 하나님을 붙잡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패닉에 빠져서 어쩔 줄 모르며 고통의 시간 속에서 보냈어야 했으니까. 성경 말씀을 매일 두 페이지씩 입으로 암송을 했는데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울음이 터져서 성경 책을 붙잡고 운 적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 다가갈수록 나의 고통도 줄어들었다. 정말 신기했다. 평안이 찾아들었다. 이 세상에서 겪지 못했던 평안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도 드라마도 주지 못 했던 감정이었다. 평안도 이런 평안이 있을까? 너무 좋아서 다른 이들도 겪어봤으면 했다. 예전에 공황장애를 하나님의 은혜로 이겨내었다는 분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코웃음을 쳤다. 힘들어 죽겠는데 왜 하나님 타령이야. 짜증 나.


그때 코웃음을 치던 나 스스로를 반성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제라도 그분을 깊게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흔히들 말하는 선데이 크리스천. 그게 바로 나였는데.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았다.


그렇게 나를 단단하게 만드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하나님에 관해서 다 적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2021년 9월 18일에 쓴 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하나님이 기록하고 함께 동행하시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다. 이 일기를 다시 쓰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고 후에 간증으로 쓰일 거시며 기도 들어주신 것을 차곡차곡 적어갈 것이다. 아프고, 두렵고, 힘들어도 원래 인생은 고난에서 난 것이라 하였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요즘 내가 소망하는 것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믿음을 구하고 회개하는 것, 내 안의 나는 죽고 예수님의 영이 머무는 것이며 이 고된 상황에서도 과제를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힘으로 다 헤쳐나갔으면 한다.



9월 29일 수요일.


오늘은 원래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병원 가는 길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내가 집에 도착할 때 즈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물론 하늘이 우중충해서 기분이 그 다지 썩 좋지는 않았다마는. 오늘은 버스 타기 너무 힘든 날인걸 예감했다. 몸 컨디션에 따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더욱 망 였고 타기 전부터 예기 불안이 왔었다. 일단 진료시간이 가까워져서 탔는데 사실 진짜 힘들었다. 패닉 상태였고 창밖을 보기 힘들어서 핸드폰 화면 창만 들여봤다. 근데 하나님이 계속 민혜야 하나님이 너를 붙잡고 있다,라는 것을 정말 가는 내내 마음으로 알려주셨다. 병원에 도착해서 걸을 때도 괜찮다, 하나님이 너를 붙잡고 있다알려주셨다.


엄마랑 병원을 같이 다닐 때면 버스도 택시도 그 무엇도 전혀 탈 수 없었는데 병원에 갈 때면 하나님이 내 상태를 이미 아시고 같이 동행하여 주신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주실 것이라 믿는다. 아마 단 한순간도 떠나신 적이 없으셨고, 앞으로도 내가 어떤 상태든 병원을 몇 개월 더 다닌다고 하여도 아마 오래오래, 내가 심판대에 서기 전까지 함께 하실 거라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평소에는 가까운 집 밖에도 걷기 어려워하는 내가 그렇게 치료받으러 다닐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동행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혼미해지는 내 정신을 붙잡아주신 건 하나님이시다. 내 힘으로 어찌한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고 택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크게 쓰일 것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항상 겸손하고 타인을 쉽게 비난, 비판하지 말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눈을 더 높이 들어 하나님을 본다. 영광 빛이 나를 감싼다. 오늘도 내 안의 나는 십자가에 함께 죽고 하나님이 영이 내 안에 영원히 살아계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바이며 부모님 밑에서 독립하여 자립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느 순간에도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잊지 말 것이며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는 영적인 마음의 창과 눈이 열리기를 바란다.



일기를 쓰면서 나의 고통도 함께 잦아들었다. 때로는 예쁜 편지지를 준비해서 하나님께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눈물이 쏟아져서 편지가 엉망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도 다 읽으시고 내 마음을 아실 거라고 믿었다. 분명 그 편지가 하나님께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고통을 허락하신 건 더 좋은 것을 주시고 나를 단단하게 하시고 주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살길이고 주님 외에는 그 어떤 무엇도 나를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내일이 없었으면, 내가 사라져 있었으면 하는 밤들이 무수히 지나갔다. 나는 주님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두 발로 걷고, 아침에 숨을 쉬고 내 영혼을 아직 이 땅에 두시는 것은 내가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눈을 뜨고, 아침에 숨을 쉬고 오늘 하루를 허락하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도 그저 감사하다고 했다. 내 할 일이 그것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물론 어려웠지만, 그냥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기에.


이 이후로 내가 사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나도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나를 살려두시고 있기에 살고 있다고. 나는 이제 내 안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시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분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겼다.


하나님이 저 살려주셨으니까, 저 죽을 때까지 책임져 주세요.


어린아이와 같은 부르짖음이었다. 여전히 나는 그분께 사랑을 갈구하고 원한다. 목마르기에 계속해서 그분을 찾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결핍에게 고마워해야 될 것 같다. 애정 결핍이 없었으면 내가 과연 그분을 찾았을까.


고통,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몰랐을 거다. 머지않은 미래에 신을 눈앞에서 뵐 일을 소망하며 오늘도 기도한다. 내일 하루도 그저 살아가게 해달라고.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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