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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혜 Aug 04. 2024

땅을 보고 다니는 여자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예전에 언니를 보러 갔을 때였다. 저 멀리서 언니가 나를 불렀다. 언니가 나를 처음 본 순간 하는 말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 있어? 왜 땅을 보고 걸어.


내가 그랬나. 나 조차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 땅을 보고 걸을 때면 의식해서 고개를 들고 다녔다. 그 이후로는 고개를 숙이고 다닌 적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습관은 무서웠다.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바닥을 보고 걸을 때가 있다.


앞을 보고 다녀야 차 오는 것도 피하고 오토바이도 조심할 텐데. 그런데 땅을 보고 다니던 버릇이 작고 소중한 생명을 살릴 때가 있었다. 햇빛이 쨍쨍한데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길가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흙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또 어쩔 때는 다친 건지 바닥에 떨어져서 힘들게 울고 있는 매미를 나무 위로 올려준 적도 있다. 내가 앞만 보고 걸었다면 이 작고 소중한 생명들을 볼 수 있었을까. 그래서 가끔은 시멘트 틈을 비집고 피어난 꽃들을 보며 힘을 내고는 했었다.


남들이 보기에 어떻든 내가 그 순간에 찬란하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주고,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건 뜻 깊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공황장애가 오면 이명과 온 몸에 마비가 온다. 그럴 때면 바닥을 보며 숨을 몰아쉰다. 그때 깨달은 건 주변에 자연을 보거나 멀리 있는 하늘을 보다보면 괜찮아 진다는 것이었다. 바닥에 피어난 작은 잡초라도 나에게는 쓸모 있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쓸모 없는 것이 없다. 당장 내일이 어떤 삶을 불러올지 모르는 상황인 것처럼 작고 소중한 생명이 나에게 숨을 불어넣어줄 때가 생겼다는 것을. 갑작스레 찾아온 상처에 작은 생명들이 나를 가득 채워 주고 있었다.


말도 없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지만 나에게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핀 꽃처럼 나도 힘들겠지만 오늘을 살아가자고. 예전이라면 하늘 쳐다보는 일이 드물었을 텐데 이제는 숨을 쉬기 위해 하늘을 쳐다본다.


작은 것에 감사했다. 어쩌면 작고 소중한 것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이들이 주는 에너지가 나에게는 한 걸음 걸어가는 원동력을 주었기에.


그래서 나는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있다. 햇빛과 물만 있으면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자라났다. 그래도 필요 없는 가지가 피어나면 자르고는 했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더 왕성하게 자랐다.


나도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매일이 만족 스러운 풍성한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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