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땐 그냥 울면 돼
마음은 참 이상한 거 같다. 한 없이 좋다가도, 사소한 일 하나로 울적해진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의 감정을 겪으면서 내가 누군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이 감정을 잘 해소하고 잘 정리해야 되는데 좀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나이 드는 게 좋았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게 좋아서 그저 지금 이 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찍이 나이가 들고 싶단 생각을 막연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이가 그런 대사를 한 적 있다. 빨리 나이 먹고 싶다고.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아, 드라마 캐릭터도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위로와 안도를 받았다. 나이가 들면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물질 적인 풍요로움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의 여유가 부자처럼 흘러넘치기를 바랐다.
물론 지금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이 넘치는 사람을 볼 때면 부럽다고 느끼지만, 모진 풍파를 겪어서 그런지, 자기 마음이 여유롭고 평안이 가득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근데 슬프게도 마음에는 나이가 없는 것 같다. 내 외적인 모습은 늙어가는데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늙는지 알 수가 없다. 마음을 꺼내서 내 상태가 어떤지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후시딘을 바르던 마데카솔을 바르던 잘 아물도록 도와줄 텐데. 상처가 나서 약을 바르면 시간이 지나서 아무는 게 보이는데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아서 내가 어디 즈음 왔나, 나는 얼마나 치유가 됐나, 돌아보곤 한다. 그럼 시간이 너무 하염없이 흘러서 과거에 갇히고는 한다.
요즘에는 과거에 갇히는 게 때로는 내게 독이 된다는 걸 안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사람이 부정적인 일이나 트라우마를 곱씹는 순간 그 하루가 순식간에 망가진 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 순간이 오면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찬양을 듣거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어서 짱구를 보곤 한다.
문제는 이걸 해결하려면 내 마음의 집에 숨어 있는 어린 나와 마주해야 되는데, 참 쉽지가 않다. 그 아이를 떠나보내고 이제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나에게 여유를 줄 수 있겠냐고 묻고 싶은데. 그걸 마주하려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나 힘들어요, 혼자서 목놓아 울 때는 그냥 울어버린다. 사람에게 해소하면 내 감정이 타인에게 전달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걸 안 이후로는 타인에게 쉽게 내 감정을 비추지 않는다.
어쩌면 내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른다. 내 약점이 이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그래서 내 신앙의 힘을 빌려서 기도도 많이 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 이모에게 한 적이 있다. '이모, 나 하나님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나. 그냥 혼자 기도하고 찬양 들으면 막 눈물이 나.' 이모의 답변은 이랬다. '그냥 울어, 막 울어. 울고 싶을 땐 울어야 돼. 다 토해 내야 해. 그래야 치유가 되는 거야.' 그 이후로는 혼자 있을 때면 울고 싶을 때 울어댔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그래야만 다음 하루를 또 살아내고, 미래를 그릴 수 있었으니까. 꼭 신앙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대사 한 마디에 울고는 했다. 만약에 내 마음이 고여있는 물로 꽉 차있다면, 그걸 뱉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 든다. 그래서 그 물을 비워내고 새로운 토양을 다지고 갖은 꽃을 심기 위해 있는 중이라고 생각 든다. 그런 과정 중에 있는 거라면 기꺼이 감내할 자신이 있다.
나와 제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그 순간의 내 감정에 관해 깨닫고, 해소하고, 이유를 묻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을 잘 자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다. 잠이 보약이라는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없다는 걸 새삼 더 소중하게 깨닫고 있다. 어쨌든 마음이 울컥할 때,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 그냥 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사람에게 나 이래서 힘들어, 털어놓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걸 오래전에 깨닫고선. 그냥 나와 대화를 가장 많이 하게 된 거 같다.
그래도 이 만큼 성장하고 과거 스무 살 시절 방황하던 나와 다르게 아주 쌀알만큼이라도 여유를 가진 나에게 고맙다. 이제는 연민 좀 그만 가지고 내 평안이 다른 사람에게 닿을 때까지,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울고 싶을 땐 울고, 또 일어나자.
우는 건, 나와 제일 친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니까. 마치 내가 폭포수가 된 것처럼 그저 그렇게. 맑은 물을 쏟아낼 수 있을 때까지. 고여있는 물을 흘려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