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에 제일 필요한 건 뭘까. 나는 혐오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사랑이 없어져 간다고 느낀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응답 하라 시리즈. 이 드라마가 계속 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유도 그곳에서만 존재했던 사랑과 정이 가득하기 때문 아닐까. 나는 어렸을 때 느낀 사랑으로 지금까지 커왔다. 유치원에 다닐 적,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가 나를 마중 나오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유치원 버스에 내린 순간, 아버지는 아무 곳에도 안 계셨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눈물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눈물을 꾹 참고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섰다. 아파트 복도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아빠!' 그 작고 어린 몸으로 아버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사랑이 없어진 세상을 느꼈다.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나에게는 그 큰 아파트가 너무나 거대한 거인 같았다. 마치 초록으로 가득했던 세상이 흑백 도시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그렇게 활기가 가득 찬 세상이 없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뚝, 멈춘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3층으로 재빠르게 뛰어갔다.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눈물이 확 터졌다. 나는 기다릴 새도 없이 '아빠!'하고 애절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달려가 안겼다. 그제야 온 세상이 다시 내 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아빠, 어디 갔었어?' '딸이 안 보이길래, 혹시 집에 왔나 싶었지.' '나는 아빠가 어디 가버린 줄 알았어.' 그건, 나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온전한 품을 주던 사람이 없어졌었다는 뜻이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우리 가족이 아닌, 학원 선생님, 그리고 언제나 여름이 돌아올 때면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반겨주던 나의 이웃의 관심조차도 그들의 사랑이었음을 느낀다.
그때 그 시절이 주었던 시대의 정과 사랑은 사람을 살렸고, 이름 모를 타인의 차가운 온도를 녹여주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오가는 건, 그날의 안녕을 묻는 것과 같다고 느껴질 만큼. 지금의 우리는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있는가? 남을 탓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시기하기 바쁘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주는 경쟁과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바빠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건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슬픈 이야기지만, 우리의 관계 부재가 자살을 일으킨다는 책의 문장을 본 적 있다. (자살 공화국_저자 김태형) 그러한 관계의 부재가 과연 가족뿐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웃의 정이 사라지고, 친구와 이야기하던 내용들이 AI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인사를 해도 상대방을 NPC로 여기며 지나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어렸을 때 그토록 밝았던 인사가 삭막해지고, 힘차게 뛰어놀던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시대에 사랑이 계속 존재했다면, 그들은 은둔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사랑을 전하고 있지 않았을까?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이토록 아파진 건 사랑의 부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람의 품에 안기지 않아도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것이 사랑이다. 대가 없는 그 사랑.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했으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어본다. 그저, 힘들다는 사람의 손을 한 번쯤 잡아주며, '다 괜찮아질 거야. 지나가는 계절처럼.'이라고, 사랑의 말을 전하고 싶다. 결국 사랑은 사람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