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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만식 Apr 20. 2023

그릇된 욕망에서 순수 욕망으로

사프디 형제_ 영화[인컷 젬스, 2020]

영화, [인컷 젬스, 2020]

감독_ 사프디 형제



그릇된 욕망에서 순수 욕망으로



  우리의 삶은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인간의 본성을 일컬어 “욕망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불완전한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욕망은 우리 안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욕망매개자에 의해 우리 안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일명, [모방욕망이론]이다. 오랜 세월, 인간은 행복한 삶을 염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도 이 행복한 삶에 초점을 두지 않았던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은 “덕(탁월함)”을 추구할 때 가능하고 또 “중용 (“지나침”과 “모자람”의 중간 상태)”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무엇 때문일까? 혹 “중용”에서 벗어나서는 아닐까? 영화 [언컷 젬스(2020)]에서 주인공인 보석상 하워드 래트너의 삶은 “중용”에서 벗어난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프랑스 사상가 자크 라캉은 인간을 가리켜, “욕망하는 존재”라고 했다. 욕망하지 않는 삶은 곧 죽은 삶이라는 것이다.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자 본질이라는 것, 그러나 문제는 그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에 있다는 것, 언어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상징계는 언어로 구조화된 인간의 사회, 문화, 문명 세계를 뜻하는데 그 세계에 사는 인간은 주체로의 자기 욕망에 따라 살지 못하고 그 사회가 요구하고 타인이 원하는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착각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사회를 떠나서, 타인을 떠나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 속에서 사회의 인정,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고 타인이 인정하는 욕망을 따라 거짓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영화 [언컷 젬스]에서 주인공 뉴욕의 보석상 하워드가 추구했던 삶은 과연 누구의 삶이었을까? 그가 바라고 원하는 삶, 그 삶의 욕망은 과연 영화에서처럼 하워드 자신만의 삶이고 또 바라는 욕망이었을까? 어찌 보면, 그가 바라고 원하는 삶은 그의 삶만이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은 아닌지, 돈이 전부가 되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돈이 주는 행복과 만족 그리고 쾌락을 과연 누가 뿌리칠 수 있을까, 지금도 세상은 돈에 의해 움직이고 돈이 사회를 움직이고 돈이 사람의 위치와 역할을 결정하고 있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한순간, 한방, 한탕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일들, 부자가 되어서 사회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모두가 살아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또 그 끝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영화의 주인공인 하워드 래트너의 삶을 생각했다. 스포츠 도박으로, 가공하지 않은 원석으로 거액의 돈을 벌어 모든 빚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이에게 또 “돈이면 다” 된다는 그래서, 세상에 부러움의 아이콘이 되려 했던 하워드, 큰 한방을 꿈꿨으나 빚쟁이에 의해 한방을 이뤄냈지만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그의 삶이 너무도 안타깝고 불쌍하기만 했다.




  단순히 영화라고 하기에는 또 가상의 인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오늘 우리 시대의 이야기여서였을까,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생각했고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내가 추구하는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그릇된 욕망은 아닌지, 그릇된 동기로부터 출발한 그릇된 욕망이 아니라 바른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한 순수욕망인지를, 내 안의 욕망이 아닌 타인이 바라고 원하는, 아니 타인이 인정해 주는 욕망에 사로잡힌 삶은 아닌지를 말이다.




  욕망은 과연 채워질 수 있을까? 자크 라캉은 이렇게 말한다. “최초의 욕망은 더 많은 욕망을 지향하고 그 욕망의 충족은 또 다른 욕망의 충족을 지향하기에 결코 그 욕망은 채울 수 없고 또한 채워지지도 않는다”라고 말이다. 무한한 순환 곧 끝이 없고 또 만족도 없는 무한한 순환이 반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한한 순환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채워지지 않는 “불가능성”, “비어있는 공간(공)”, “결핍”을 뜻하는데, 난 주인공 하워드 래트너의 삶이 그런 삶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욕망 그 자체가 인간의 본질”이고 불완전한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욕망을 추구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 욕망이 지닌 이중적인(긍정적, 부정적)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지혜,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특히 바울의 고백처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는 자족하는 삶이 종교를 떠나고 신앙을 떠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 하고 다시금 곱씹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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