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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만식 Jun 14. 2023

돈, 그리고 편애가 낳은 비극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하나는 현시대 자본주의의 민낯을, 또 하나는 관계 곧 편애와 관련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틀어지고 왜곡된 모습이라는데 있다. 자본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주인공인 형제, 앤디와 행크가 보인 영화 첫 장면의 어려운 상황(행크: 이혼한 전 부인에게 아이 양육비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형 앤디: 공금횡령)은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생각에서는(부모님의 보석상을 털려는 계획) 그 자체로 인정하거나 이해해 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끝은 그야말로 끔찍한 결말(한 가정의 파멸)로 이어진다. 역시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틀어지고 왜곡된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이어 관계라는 측면에서도 역시 틀어지고 왜곡된 모습을 영화는 보여준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영화의 시작부터 벌어진다. 보는 내내 계속해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또 보아야 할까,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계속 보아야 하는 상황이 괴로웠다. 그런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흔들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는지 짜증스러웠다. 그러다 든 생각은 이 역시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고 또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면서 보인 부분이 주인공 사이의 관계였다. 왜 이런 끔찍한 생각이 시작된 것일까를 생각하던 찰나에 형 앤디와 아버지 사이의 틀어지고 왜곡된 관계가 보였다. 그 관계로부터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 앤디는 외적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이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회계법인 회사의 중역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그는 괴로워하고, 외로워하고, 힘겨워한다. 그로 인해 마약도 한다. 그런 그의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는 앤디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문제를 서서히 풀어낸다. 부모의 편애, 자신보다 동생 행크를 더 사랑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 이유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틀어진 관계, 왜곡된 관계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음을 영화는 이야기한다. 나에게만큼은 그렇게 보였다.

     

   사회적인 위치에서 앤디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이어온 상처가 그에 삶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틀어지고 왜곡된 관계 그리고 편애로 인한 상처가 형제간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그 끝을 맺게 한다. 그것은 앤디와 아버지 사이의 완전한 단절, 파괴,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결말로 종결한다. 겉으론 자본이라는 돈에 의해 벌어진 한 가정의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안으로는 돈보다는 부모와의 관계, 상처, 미움, 원망, 분노, 서운함에서 벌어진 한 가정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영화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편애라는 관점과 자본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부모의 잘못된 편애로 인하여 가정이 파국을 맞이한 사례가 구약성경에도 있었다.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 중 한 사람, 이삭의 가정이었다.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이 바로 창세기 25장 28절이다. “창 25: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난 두 형제, 에서와 야곱, 그런데 두 형제 가운데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사랑했다. 부모가 힘들게 얻은 자식을 사랑하는 일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편애라는데 있었다. 자식들을 향한 부모의 편애는 왜곡된 사랑이다. 왜곡된 사랑은 자식 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자식과 부모 사이의 관계 또한 파괴하는 것을 보게 된다.  

    

   편애는 편애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자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본은 파멸로 이어진다.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가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그와 같다. 영화 속의 주인공 앤디와 행크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모습일까? 아니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그들의 가정이 우리의 가정일 수 있다. 주인공 부모의 편애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행해지고 있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 곳곳에서 이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다. 틀어지고 왜곡된 편애 즉 관계는 단순히 자본만이 아닌 다른 대상들을 도구화 삼아 파괴하고 깨트리고 무너지게 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본도 자본이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 가족 사이의 관계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과 관계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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