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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만식 Jun 14. 2023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관계





  가끔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동네 한가운데 큰 공터가 있고 그 공터를 중심으로 이어진 골목마다 집들이 빼곡했던 기억들. 그렇게 집들이 붙어 있다 보니 동네가 거의 한 집안처럼 어울려 살았던 추억이 있다. 집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시루떡을 이웃집에 돌리기 바빴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찾아가 위로해 주던 사랑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정을 나누며 살다 보니 외로움이나 고독이란 찾아볼 수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참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정말 행복했다. 배부르지 않고 배고팠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넉넉하기보다 부족했어도 감사했다.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이 많았고, 누리며 살기보다 누리지 못한 시절이었는데도 왜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다.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낄 새도 없이 살았다. 하지만 그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초고도 부의 시대가 되었지만 많은 경우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더 나은 세상이 될수록 인간의 행복이 더해져 갈 수 있을까?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함 없는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괴로워하며 사는 우리의 현실, 주위의 이웃이 있음을 본다. 그럴 때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갈수록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자기화에 빠져 사는 경우를 본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아니 소유하지 못함으로 인해 좌절의 끝에서 어둠을 선택하고 악을 선택하는 이들도 본다.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 그리고 문명이 인간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 또는 만족을 줄 것처럼, 선전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의 진정성과 가능성을 묻고 싶다. 최근 인공지능 쳇-GPT의 개발과 발전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아니 이미 실생활에 깊이 들어온 상태다. 늘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로봇이나 사이버, AI가 일상인 현실이 되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인공지능에 도움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거나 인간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될 수는 없다고 난 생각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 2013)’가 보여주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고 표현하고 행동한다 해도 여전히 모든 것을, 변함없이, 끝까지, 온전히, 진실하게, 함께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주인공 테오도르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어떤 경우엔 성적인 부분까지 완벽한 파트너로 다가서려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의 솔직함이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예상을 깬 미래 세계가 펼쳐지고 그래서 거의 인간처럼 정말 완벽한 AI가 나오고 완벽한 인간 로봇이 출현한다면 또 다른 고민을 해야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내 생각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은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고 그러기에 다른 생명과 달리 생각하고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인간 사이에 서로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학자 R.N. 빌라의 말처럼 “인간만이 주관과 객관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은 결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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