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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만식 Jun 19. 2023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전쟁은 인명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것도 수많은 희생을 강요한다. 평범했던 일상과 삶 전체를 송두리째 앗아간다. 역사가 그 증거다. 인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혹 ‘전쟁의 역사’, ‘수탈의 역사’, ‘폭력의 역사’, ‘파괴의 역사’, ‘희생의 역사’는 아닐까, 두 차례 세계대전 이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끝이 언제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세계가 또다시 정치적 이념과 자국의 이익에 사로잡혀 민족중심주의로 가고 있다. 


   각종 언론, 미디어마다 쏟아내는 뉴스들은 전쟁 소식뿐이다. 이미 벌어진 러시아 전쟁 소식과 더 큰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국제 간 가능성을 자극적으로 고조시킨다. TV는 살상 무기로 잿더미가 된 많은 이들의 생활 터전과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난민들 그리고 차디찬 시체가 돼버린 아기를 품에 안고 눈물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폭력적으로 내비친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즘이 벌인 만행은 끔찍했다. 600만이 넘는 유대인을 강제로 죽였던 끔찍한 홀로코스트, 그 죽임의 역사, 살인의 역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증인들의 증언은 그 자체로 역사이다. 최초의 유성영화였던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도 그러하다. 이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1인 2역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즘을 풍자한다. 쌍십자당과 세계정복을 꿈꾸는 독재자 힌켈과 유대인 이발사를 표현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독재자 힌켈의 세계정복, 게르만 민족의 세계 제패 야욕이 계속해서 펼쳐지고 게토 안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힌켈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이발사와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감옥으로 이동되던 중에 도망친 슐츠 사령관이 결국 체포되어 이발사와 함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된 일을 다룬다. 그러나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슐츠와 이발사는 그곳에서 결국 탈옥하여. 이후 공교롭게도 독재자 힌켈과 얼굴과 외모가 비슷한 나머지, 진짜 힌켈로 오인해 독재자 힌켈 대신 이발사가 오 스테를 리히를 정복한 토마니아의 장병 앞에서 연설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발사라는 직업은 상징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아폴론에 의해 당나귀 귀가 된 미다스 왕의 비밀을 고발했던 이발사를 상징한다. 이발사는 ‘왕이 가진 치부, 실체를 드러내는 자’다. 이발사는 마지막 연설에서 ‘왕의 치부와 실체를 고발하는 자’로 드러난다. 이발사의 마지막 연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이발사, 폭력과 억압과 고통을 몸소 체험한 그가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억압하는 자들의 불의함을 고발하고 악의 치부를 드러내는 그 부분이 예언자의 소리처럼 들려왔다. 본회퍼 목사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로 느껴졌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들어야 할 외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이 시대, 또 상실의 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 외침의 일부분을 이곳에 인용한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언젠가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인류로부터 빼앗아 간 힘 또한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17장 21절엔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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