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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만식 Jun 22. 2023

삶은 '광야'다

삶은 '광야'다.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광야를 만났다. 광야를 만날 때면 괴로움에 쉽게 무너지곤 했다. 쉽고 짧게 끝나지는 않았다. 견뎌야 했고 이겨내야 했다. 그 고통을 쉽게 표현하지 못했다. 생의 주기 때마다 만난 광야를 난 잊을 수가 없다.



   10대 때부터 50대인 지금까지 광야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떠난 즐 알았던 광야가 언제고 삶의 한복판에 찾아올 때면 두려운 마음도 든다. 견뎌냈지만 언제나 광야는 날 것의 세상이다. 그래서 삶은 광야다. 광야를 계속 지나왔고 경험해설까, 잘 안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비법도 말이다. 그 비법을 많이 알리고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확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법은 없다. 안다는 지식, 이해, 전제, 신념이 완벽한 답이 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광야 한복판에서 하게 됐다. 몇 가지 논리, 지식, 경험만으로 완벽한 답이 될 수 없음을 말이다. 광야는 신학적 지식만으로, 논리만으로, 문자에 갇혀 있는 구절만으로, 경험만으로, 답할 수 없는 곳이다.



     광야는 삶이고, 삶은 광야 한복판이다. 그 한복판은 카오스다. 혼돈이고 무질서다. 아무것도 없음의 자리다. 죽음의 자리다. 허무의 자리다. 날 것, 곧 야생의 자리다. 그 자리는 단순 지식이나 논리, 문자, 경험, 신념만으로 채울 수 없다. 그것으로 채우려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곳이 광야다. 그 광야 한복판에서 살아간다. 혹여 광야 한복판을 벗어나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우리)가 서 있는 곳은 엄연히 광야 한복판이다. 광야를 떠날 수 없다.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광야는 카오스다.  



      이 카오스인 광야 한복판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카오스에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 해답은 있기나 한 걸까?



    성경은 혼돈인 카오스에서 벗어나 코스모스에 이르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아무것도 없음에서 채워짐으로 말이다. 들뢰즈의 표현대로면, 탈출, 탈영토화, 재영토화다. 성경은 그 일을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셨다고 한다. 그분이 하셨고 전부가 되신다는 것, 그분이 ‘다’라고 말이다. 결국 답은 그분께 있다고 말한다. 광야 한복판에서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니 저 너머 피안의 세계에 계신 듯 하지만, 실상 광야 한복판에 그것도 우리와 함께 마물러 임재하고 계시다고 말한다. 초월과 내재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아무것도 없음의 자리인 광야 한복판을 충만의 자리로, 예배의 자리로 채우신다고 말한다.  



    광야 한복판에서 외로워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한다.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한다. 그분 곁에서 머무르고, 교제하고, 동거하고, 동행하고, 의존하고, 신뢰하고, 수용하고, 바라보라고 하신다. 주어진 자리를 사랑하고 감사하라고 말이다. 내 지식, 논리, 경험, 갇힌 구절, 확신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신다. 그거면 된다고 하신다. 다른 비법은 없다는 것. 다만 인내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기뻐할 뿐. 광야 한복판이 날 것의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투할 수 있는 이유랄까. 힘든 세상살이지만 하나님만으로, 그분의 임재로 충만하기를 두 손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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