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게 놓인 돌들, 흐트러짐 없이 이어진 계단들은 우리를 감싸는 세계, 즉 상징계를 닮았다. 이 세계는 견고한 질서와 규범으로 구축된 거대한 건축물이며, 그 완벽하고 잘 짜인 틀 속에서 대부분 안전감을 갖는다. 모든 것을 규정하고 통일하며, 주체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가르침은 필시 중요하다. 이 정연함 속에는 이탈도, 탈출도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이 완벽한 틀의 균열로부터 시작된다. 이 단단한 체제를 깨고 불쑥 솟아오른다. 그것이 바로 대상 a다. 대상 a는 상징계가 포획하지 못한 결여(manque), 주체가 언어의 세계로 진입하며 상실한 근원적인 만족의 잔여물이다. 이 대상 a의 출현은 곧 상징계가 실은 완벽하지 않으며, 그 심장부에 회복 불가능한 공백이 있음을 알려준다.
대상 a와의 대면은 주체를 불안감에 떨게 한다. 이 불안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구조화된 세계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명확한 징후임을 보여준다. 욕망의 원인으로서, 대상 a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결코 닫힌 전체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우리 내부와 외부를 향하는 응시와 시선은 그 세계의 공백을 투사하는 스크린이다. 응시는 주체가 '보이는 자'로 대상화되는 지점이며, 우리의 시야를 넘어선 곳에서 우리를 에워싸는 타자의 시선을 의미한다. 이 응시가 작동할 때, 세계의 틈, 곧 실재계(the Real)의 존재를 직면하게 된다. 응시는 이 세계가 불가능한 충족의 환상을 품고 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 불가능성이 바로 대상 a로 구체화되어 우리 앞에 현존함을 고지한다.
이러한 근원적인 균열의 경험은 안간의 삶과 역사를 관통한다. 성경 속에서도 이 공백과 대상 a는 명백히 드러난다. 여호사밧, 히스기야, 므낫세는 모두 유다의 왕이었으나, 그들의 통치와 삶은 질서와 법으로 예측 가능한 상징계의 영역만을 걷지 못했다. 그들이 직면한 거대한 전쟁, 생사를 가르는 질병, 혹은 내면의 부패는 삶의 안정된 틀을 깨고 침입한 실재의 충격이었다.
역대하는 이 왕들이 경험한 한계와 공백, 그리고 그 속에서 작동하는 궁극적이고 규정 불가능한 대상 a의 역설적인 힘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큰소리로 들려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아무리 견고한 성채를 쌓는다 해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 결여, 즉 대상 a가 자리하고 있음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