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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 Jun 23. 2018

숨 쉬는 건 모두 변해

자주 흔들리고 변하는 너에게,





봄에 찍은 필름을 이제 현상했어.

꽤 오래 미룬 것 같은데 날짜로 계산하니 한 달도 되지 않았더라. 불과 며칠 차이로 저땐 봄이고 지금은 여름. 한 계절을 건넜기 때문에 오래전으로 느껴져. 저 날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도 계절만큼 확연히 달라져서 더 그런 것 같아. 그새 고민과 다짐의 자리엔 또 다른 것들로 바뀌었어. 나무같이 굳건할 것 같은 마음이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흩어지는가 하면, 곱게 간직될 것 같은 마음이 구겨져버리기도 했어.


 마음은 어찌 그리 잘 변할까.



사진 속 장소를 가보니 변한 것들이 눈에 들어와. 벤치 위 나뭇잎이 채운 모양도 전혀 다르고, 민들레 가득하던 노란 풀숲은 하얀 개망초로 넘실대고, 꽃 한 송이 자라지 않을 것 같은 축축한 하천은 코스모스 물결을 이뤘어. 난 코스모스는 가을의 꽃인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면 그 사이 변한 건 이것뿐이 아니지.

내 머리카락은 귀 밑으로 바싹, 더 짧아졌고 30km 정도 거리 차가 나는 곳으로 훌쩍 이사를 왔어. 작업실 옆 빈 공간에 카페가 들어온 건 알지? 맥주 거품을 잘 못 따르던 사장님은 이제 능숙하게 맥주를 따라줘. 벌써 우수고객이 되었지. 마당 뒤 상추가 자라던 텃밭엔 벌써 오이가 주렁주렁 달렸어. 한참을 앉아있어도 평온하던 마당 의자는 잠시도 앉아있기 힘들 만큼 뜨거운 고문의 자리가 되어버렸어. 내가 정말 좋아한 자리였잖아. 여름의 일이라 어쩔 수 없지 뭐. 가을엔 또다시 좋아지겠지.

누군가의 오랜 연인이 떠났고, 누군가는 엄마가 되었어. 그 사이에 당장 말할 수 있는 변화들이 이렇게 많네. 변하지 않은 것을 언뜻 떠올려보니 음.. 줄지 않는 땅콩과자..? 방부제로 만들어진 기한 없는 식품들. 생명이 없는 것들. 살아있는 것 중엔 당장 생각나는 게 없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변하는데, 겨우 내 마음 하나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어.


 




끊임없는 변화들을,
살아내고 있는 흔적으로 생각해도 될까.



지난 밤에 읽은 이병률 작가님의 문장이 떠올라.
'네 개의 계절이 있다는 것. 우리가 조금 변덕스럽다는 것. 감정이 많다는 것. 허물어지고 또 쌓는다는 것.' 

유약하게만 느껴졌던 마음의 변화에 동조를 얻은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돼. 쉼 없이 부는 변화 속에서 흔들려하는 너에게도 말해주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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