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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 Jul 03. 2018

정말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해?


있잖아,
정말 시간이 약이 되기도 해?
그저 살다 보면 잊히는 것들이 있어?"







네 질문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어.

잊었다고 애써 등 돌리고 있던 것들과 갑자기 눈을 마주친 것 같았거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어. 넌 가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위험한 질문을 툭, 던지곤 한다니깐.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답은 분명한데 그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 넌 “맞아, 내가 더 살아보니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히더라. 다 지나가니까 걱정하지 마.”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물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보다 11년 더 걸어온 나의 대답이 지금 너의 마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이 너에게 절망이 될까 희망이 될까.


어떤 뇌 과학자의 말로는, 뇌는 강렬했던 기억은 또렷하게 남기고, 반복되는 일상의 잔잔함은 금세 사라지도록 처리를 한대. 나는 그 말에 좀 위안이 되었어. 계절을 한참 돌아온 것이 무색할 만큼 선명하게 기억하는 내가 좀 문제인가 싶었거든. 오히려 어제와 일주일 전, 최근의 일들은 잘 잊으면서 말이야.

저 이론은 나의 각인된 기억이 당연한 거라고 인정해주는 것 같았어. 아! 잊히지 않는 것이 당연하구나. 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또한 시간이 약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하는 셈이지.

맞아, 시간이 약이 되진 않지만 조금 무뎌지긴 해. 무뎌진다는 건 잊는다는 게 아니라 익숙해진다는 거야. 이전보다 덜 아프게 느껴져서 종종 시간이 약이라는 착각을 하는 거지.







시간이 데려갈 거라 믿었던 그 기억은 나와 인생을 함께 걸어갈, 애증 하는 벗이 되거든.

눈앞에 늘 있는 건 아니지만 주위를 항상 맴돌다가 이번처럼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날이면, 헐떡대며 부리나케 내 앞에 달려온다고.

짙은 밤, 비에 젖은 날, 노을이 선명한 시간, 바다 앞에서, 그때 그 노래를 듣다가 문득문득, 그리고 자주. 나는 얘를 또 저 멀리 떼어놓기 위해 몇 날을 소모하다가도 결국엔 끌어안고 말지.

혹시 내 이야기가 저주같이 들리는 건 아니겠지?

당장은 막막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돌아봤을 때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는 순간을 간직한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일지도 몰라. 살다 보니 잊힌다면, 그래서 모든 날이 정말 찰나일 뿐이라면 우리가 앞으로 쥐고 가

야 할 것이 더는 없잖아. 아무리 강렬한 마음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면 다가오는 날들도 좀 시시하지 않겠어?


너를 스치고 가는 것들, 기어이 각인되어버린 것들이 네 삶을 채우게 될 거야.

그것들을 너의 벗으로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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