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어떤 시절이 지나간 것 같은,
아무래도 그날 오후에 여름이 흘러가버린 것 같아.
한낮의 볕은 여전히 뜨거웠고, 쨍한 색감도 그대로였지만, 여름이 떠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여름의 끝은 언제나 갑작스럽지. 영원히 뜨거울 것처럼 들끓다가 갑자기 휙, 돌아서잖아.
뜨거웠던 만큼 잔열은 있지만 공기는 이미 여름의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어.
둔하게 퇴각하는 겨울, 힘없이 물러나는 봄, 가을과 달리 여름은 제 발로 돌아서는 느낌이 강해.
계절 중 떠나는 뒷모습이 가장 확실해서 '끝'이라는 단어가 유독 잘 어울리지.
치열하게 뜨겁고 요란하게 젖어서 그런가. 중앙에 서 있을 땐 도대체 언제 끝이 날지 지긋지긋하더니
어느새 끄트머리에 서서 흘러가는 여름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돼.
한 계절이 끝난 것뿐인데 커다란 어떤 시절이 지나간 것 같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