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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망작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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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주 Mar 08. 2024

망작망, 서막

- 망한 작가가 망할 작가에게

'망한 작가의 변'이라고나 할까? 라는 문장을 떠올리자, 

재밌겠네? 라는 치기가 곧바로 올라왔다.

어느 날 문득 '이번 생은 망'이라는 짧은 한탄이 입밖으로 새어 나왔는데

놀랍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래! 이왕 망했으니 그냥 아무거나 써볼까? 싶은 뻔뻔함도 한 몫 거든다.

"너, 나처럼 이렇게 하면 망해!"라는 의미 정도는 있을까? 

하지만 꼭 '너'가 안 읽어도 되고, 읽어도 마음에 새길 필요도 없는 그런 글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내가 왜 망했는지 반성의 글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뿌리깊은 반성을 하기엔 또 그닥 깊이도 없을 것이다.  


2011년 제 16회 한겨레문학상은 장강명의 '표백'에 돌아갔다. 

해마다 다종다양한 공모전이 끊이지 않고 계속 올라왔지만

난 신기하게도 늘 마감 한달이나 몇 주를 남기고 소식을 접하곤 한다. 

그러면 당연히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자각의 근거는 

한달을 남겨 놓고는 제대로 된 소설 한편, 시나리오 한편이 나올 수 없다는 

절대적 통계의 사회적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꼭 이런 타임에 남이 노라고 외칠 때, 

예스를 외치고 마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른다. 

그건 어느 공모 당선자의 '일주일 동안 술술 써졌다'는 허세에 자극 받은 탓이고,

늘 '컵에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판단해야 할 순간에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판단하는 낙천적 단점이 부채질한다. 

그렇게 꽁무니에 불이 붙어 컴퓨터 앞에 앉으면 일주일 동안 뚝딱 글 한편이 나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의 최대의 단점인 너그러움이 발휘된다. 

"역시 잘 써!!"

수정하려고 몇 번을 다시 들여다 봐도 어느 씬 하나 들어낼 것 없이 다 제자리에 있다.

그래서 글은 공모가 제한한 총 분량을 넘기고 말지만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게 낫지, 암! 

이렇게 자족하며 마감 날 접수를 하고는 즐겁게 발표를 기다린다. 

이때의 심정이 로또 한 장을 사놓고 한없이 설레는 맘으로 

일주일을 보낼 때의 딱 그 기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로또처럼 천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절대로 뚝딱 글 한편을 쓰면 절대로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 없다는 

큰 가르침으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씁쓸한 패배자의 기분으로 당선자의 글을 읽게 되는 날을 맞고야 만다. 

그렇게 장강명의 '표백'을 읽다가 제대로 뜨끔한 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매사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바보였다.'(표백, 장강명) 


순간 얼굴이 화끈했지만 뭔지 모르게 문장 하나하나 마다 반론의 여지가 없지 않았다.  


난 생각이 전혀 없지 않았고

내 자신감은 근거가 있으며

난 바보가 아니다!

쩝…...

그러나 읽으면 읽을 수록 너무 공감이 되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형편없는 학점을 받으면서도 나는 항상 자신만만해 했다. 나의 자신감은 합당한 근거가 있다기 보다는 깡패나 자해 공갈단의 마음가짐과 비슷한 것이었다.(표백, 장강명) 


어려서부터 공부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 마음을 뺏기며 살았으며

주말의 명화나 명작극장에서 방영된 영화얘기를 듣고 싶어서

월요일 점심 때면 친구들은 내 주위로 몰려들곤 했다. 

그래도 공부에 집중해 치른 시험은 전교 1등이 되기도 했고

국영수 합친 순위가 상위권이 되기도 했지만

난 늘 시험공부를 다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내 자신감은 나름 근거가 있었다.  


그래! 내가 공부만 하면 니들은 다 내 밑이야!

내가 너같이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껄?

나도 너처럼 헬스를 열심히 갔으면 너보다 더 날씬했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세월이 가르쳐 준 자신감의 근거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고

(헬스를) 가야 하는 것이고

공모에 대비해 글 50편 쯤은 써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 인정하자! 


'이번 생은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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