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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20. 2018

폴란드로 간 아이들

상처는 사랑으로 결국 아문다


북한에 관심이 있어요?


라는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내가 실제로 보고 만나는 북한의 여러 실상들 속에서 나의 형제와 자매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픈데 누가 관심이 없을까? 민족주의라고 해도 좋고, 너무 이상적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실제로 북한 친구들을 만나보면 우리의 언어가 하나를 이루고, 함께 걷는 길이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를 갈라놓은 역사의 갈래에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북한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 티자영상


상처, 사랑으로


누구가로부터 받은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 아물어도 계속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것이 작은 트라우마를 만들어내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너무 큰 트라우마를 만나면 우리는 넘지 못하고 그곳에 주저 앉고 만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우리의 입가에서 맴돌기 시작할 때 쯤, 영화는 상처입은 아우슈비츠의 그늘에서 조용하게 빛나는 사랑의 기운을 감지한다.


아이들에게 진짜 가족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프와코비체 양육원 원장이었던 요제프 보로비치 할아버지의 말이다. 가슴 속에 쌓아 두었던 국가주의의 상처와 학살이라는 집단 트라우마를 지우려는 시도는 이내 사랑의 새살이 돋게 만는다. 이열치열이라는 이해치애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상처를 사랑으로 회복한다. 우리의 살결에 남겨진 상처에 사랑이라는 새살이 돋우면서 이전것보다 더 새로운 살이 만들어지듯이. 영화를 보내는 내내 안에서 꾸물꾸물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민족이 겪었던 상처와 개인적으로 겪었던 상처 그 가운데서 나는 새로운 생명이 주는 사랑의 북돋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가슴이 뜨겁고 무엇인가가 말랑말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이내 눈물이 흐르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이 흘러넘쳤다. '그래! 이런게 인간이지, 우리가 바로 이런 거지, 인생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거지!'

상처는 사랑으로 회복된다. 단순히 반창고를 붙여 놓는다고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다. 온전한 회복은 사랑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1년안에 아이들의 상처가 사랑으로 바뀐고 비로소 양육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사랑, 언어


원래 사랑이라는 것은 소리가 없다. 사랑은 움직이고 포착하는 순간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랑을 사람의 체온을 통해서 느낀다. 그 체온은 어느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유지되는 보석이 된다. 사람들은 그 보석을 소중하게 기억하면서 추억처럼 꺼내서 아끼듯이 살펴보는 것이다. 양육원의 선생님들이 전해준 체온은 아이들에게 전해져서 곧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고, 아이들의 어두운 내면세계가 하나씩 하나씩 별이 반짝이듯 반짝이는 중이었다. 1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 별빛들이 환한게 어두움을 비추었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랑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걸으면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고 한다. 피었다고 한다.


사랑은 원래 언어가 없다. 언어로 표현되는 사랑은 생명을 잃은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해’ 한 단어에 자신을 모두 표현할 수 없음을 안다. 그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함께 걷고, 함께 울면서 삶을 여행하는 것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사랑의 여행’을 배운 것이었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들 안에 사랑의 길을 내고 돌아갔다.


사랑의 변증법이 있다. 그것은 상처가 있으면 사랑과 연합하여 더 나은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상처를 가지고 집단적 트라우마에 갖혀 있는 폴란드사람들에게 북한의 1500명의 아이들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 과정을 통해서 결국 더 깊고 넓은 사랑으로 성장하고 회복된다는 것이다. 상처는 사랑을 통해서 더 깊은 인간의 본성에 다가가게 하는 것임을.



역사, 뒤안길


역사의 뒤안길은 흙무더기가 툭툭 쌓여 있고, 깊은 고랑도 있고, 때론 강물이 넘쳐서 홍수가 되기도 한다. 한국사회가, 한반도가 경험한 근 100년의 역사는 언제나 눈물 투성이의 새까면 먼지가 날리는 안개 속 나라와 같았다. 구조가 만들어낸 아이들의 미래는 벌써부터 뒤안길이 되어서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천리마 운동과 경제개발계획은 방향은 각각 노동과 자본이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인간이 없다는 것, 사랑이 없다는 것,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직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니라, 씁씁한 악취가 나는 진흙밭길을 걸어야 하는 이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였다. 분단의 문제와 분단 이후 고착화된 두 도시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서로 엉켜서 결국 이념을 뛰어넘어서 하나가 되어야만 풀린다는 결론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영화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일단 영화를 한번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말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놀라운 플롯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믿음밖에는. 어찌되었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만들어가야 하고, 함께 둘려 앉아서 문제를 고심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수 밖에.


시사회에서 멀리서. 추상미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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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로 간 아이들_와디즈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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