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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11. 2016

배제와 포용

하나의 관점을 초월하면 포용의 길이 열린다

가끔 현실을 직시한다고

현실을 비판하다가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고

삶의 즐거움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돈이 있고 상황이 좋으면

기쁘고 희망적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지금 힘을 얻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증이다.


현실을 비판하는 이유가

곧 자신이 바라보는 비판의 관점이 곧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내가 지금 바라보는 현실의 문제가 곧

내가 보고 있는 부분이다


내가 비판하는 그 비판이 안 보일 때 쯤

현실을 바꿀만한 힘이 생긴다


돈이 문제라고 하는 사람의 비판에는

돈이 있으면 바뀐다고 하는 대안에는

돈이 없어는 안된다는 흔한

자본주의 프레임 안에서 갖히 개구리 꼴이다


그래서 사실은

가장 힘든 것은 내가 비판하는 것의 해결로 부터

희망을 찾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엉뚱하게 이해하게 되면

현실을 부정하거나, 정신을 놓고 좋은 것을 마냥 바라보는

낙관주의, 초월적 긍정주의가 되겠지만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사실

같은 레벨에서 배제가 일어날 때이다

현실을 비판하지 않고

다른 방식에서 진리를 찾는 것은

그 레벨 이상의 관점을 가졌을 때

그 이상의 마음을 가졌을 때 일어나는

포용이다.


배제와 포용은 그래서

한끝차이다

내가 배제하는 것은 결국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 대해서 내가 반응한다는 것이다

내가 포용하는 것은 결국 내가 그것이

규정하는 프레임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리더십을 비판하는 것도

결국은 그 비판 속에는 같은 방법론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라고 하는게 나으리라

희망할 수 없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비판이 제대로

대상을 만날 때이다


하나의 답에

하나의 질문이 존재하는 것이

배제라고 한다면


여러개의 답에

한개의 질문이 존재하는 것을

포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부터

뻗쳐 나오는 화가 나를 넘어설 때는

항상 배제가 왕국을 이루는 세상이다


이제는 좀 희망을 할 때가 되었다

다른 질문에는 다른 길이 존재한다

이제는 좀 다른 질문을 할 때가 되었다


포용의 광장이 개방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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